급박하게 굴러가는 국제정세

<뉴시스>
유럽연합 탈퇴 협상에서 재량권 확대 노렸지만 실패
2년 안에 협상 끝내도록 돼 있지만 가능할지 의문


홍콩 시간으로 지난 8일 오전 4시 3분(한국 시간 같은 날 오전 5시 3분) 미국 CNN방송은 ‘한국이 사드(고(高)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중단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는 첫머리에서 “한국의 새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를 긴장시키고 북한을 화나게 한 미국 미사일 방어 체계의 배치를 중단했다. 한 관리는, 이미 가동에 들어간 사드 발사대 2기를 철거하지는 않겠지만 추가 발사대 4기는 ‘전면적인 환경영향평가가 완료될 때까지’ 배치되지 않을 것이라고 CNN에 말했다”라고 보도했다.

한국의 새 정부가 사드 배치를 놓고 미국과 줄다리기하고 있는 사이 대서양을 가운데 둔 미국과 영국에서 같은 날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킨 두 사건이 있었다.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의해 지난 달 해임된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전 국장이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트럼프 대통령이 (트럼프 선거캠프가 러시아와 짜고 미국 대통령 선거 국면을 트럼프에게 유리하게 몰고 가려고 했던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더 이상 확대하지 말라고) 나를 압박했다”라고 폭로했다.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날 증언은 미국 지상파 텔레비전 3사가 생중계했는데, 청문회가 끝난 뒤 나온 미국과 서방 언론의 대체적인 반응은 “코미가 트럼프를 낙마시킬 수 있을 결정적 ‘한 방’을 터뜨리지 못했다”였던 반면, 별다른 이유 없이 트럼프를 미워하는 것으로 보이는 한국 언론의 주된 반응은 “트럼프가 이번 청문회를 계기로 탄핵 당할 수도 있다”였다. 당사자인 미국 언론과 국외자인 한국 언론의 이처럼 상반된 상황 인식은 객관적 진실을 중시하는 서방 언론과 주관을 객관과 뒤섞는 데 익숙한 한국 언론의 차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워싱턴에서 코미 청문회가 실시된 날 대서양 건너편 영국에서 테리사 메이 총리가 야심적으로 단행한 조기 총선이 치러졌다. 집권 보수당의 대표인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협상을 EU와 더 순조롭게 진행하려면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그러자면 총선거를 앞당겨 치러 보수당의 의석을 더 늘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서 조기 총선 카드를 사용했다. 그런데 선거 결과는 어긋났다. 영국 하원에서 보수당은 전체 650석 가운데 330석으로 과반 이상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8일의 선거를 거치면서 과반이 허물어져 319석으로 오히려 줄었다. 그러자 당장 야권에서 “메이 물러가라”는 성화가 빗발쳤다. 메이 총리는 이런 요구를 일축하고 이번 선거에서 10석을 얻은 중도 우파 민주연합당(DUP)과 연정해 브렉시트 협상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영국은 지난해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통과돼 EU 탈퇴가 확정됐다. 이제 남은 과제는 EU와의 원활한 협상을 통해 ‘웃으면서 EU와 이혼하는’ 것이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협상을 EU와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 영국 언론에 따르면 앞으로의 협상과정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메이 총리는 지난 3월 29일 리스본조약 제50조를 발동했다. 리스본조약은 EU의 ‘미니헌법’이다. 리스본조약 제50조는 회원국들이 자발적으로 EU를 탈퇴할 수 있도록 공식적인 탈퇴 메커니즘을 제공한다. 탈퇴를 원하는 회원국은 EU 정상회의에 이를 정식으로 통고해야 하며 그 시점으로부터 2년 안에 협상을 마쳐야 한다. 제50조에 따른 영국과 EU 간의 첫 협상은 6월 19일 또는 20일 열린다. 그런데 정작 메이 총리의 집권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한 것이다. 한 EU 외교관은 “보수당 내부에서 압력이 있을 수 있고, 그녀는 힘이 약해질 것이며, 협상팀을 바꿔야 할지 모른다. 그 모든 것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말했다. 집권당의 의석이 줄었으므로 협상 시작부터가 어려워질 것이다. 브렉시트에 대해 제각기 다른 접근법을 주장하는 정당들이 브렉시트 협상 방침을 새로 정하자고 나설 것이 뻔하다. 리스본조약 50조 시계가 똑딱거리고 있는 가운데 협상 개시 연기는 영국을 철저하게 어려운 처지로 내몰 수 있다.

메이 총리는 지난달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로” 영국에 대해 “협박을 발하고 있다”고 EU본부와 EU 27개 회원국(EU27)을 비난했다. 사실 EU27은 영국 정부가 강력한 과반수를 확보하기를 바랐다. 그래야만 영국이 EU에 양보를 하더라도 자신 있게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런던에 주재하는 한 베네룩스(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외교관은, 영국의회 내 과반수의 규모가 작을수록 “정부가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어려움에 빠질 확률이 높다”며 “협상가들은 끊임없이 등 뒤를 살필 것이다. 그것은 좋은 협상을 위한 비결이 아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명백한 논쟁점이 여럿 있다. 

EU는 영국-EU 간 미래 무역거래 논의를 시작하기 이전에 이혼 협상에서 “충분한 진전”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고 공식화했다. 이혼 협상의 최대 쟁점은 영국이 EU에 지불할 탈퇴 합의금의 규모다. “여름의 의견 대립”을 예견하면서, 데이비드 데이비스 영국 브렉시트 장관은 영국은 “모든 것이 한데 꾸러미 지어지는 것을 보기 원하며 그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주장해 왔으며, 또 EU가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지는 합의금 1000억 유로(약 125조 원)에 직면한다면 영국은 “떠나 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관대한 제안”을 내놓겠다고 약속하기는 했지만, 영국 정부는 영국에 거주하는 EU 국민 350만 명, 그리고 유럽대륙에 정착한 영국국민 120만 명의 권리를 놓고 EU27과 충돌로 치달을 수 있다. EU는 지난달 펴낸 상세한 정책방침서에서 시민의 권리에 관한 분쟁은 어떤 것이든 유럽재판소가 전적으로 관할권을 행사하고, EU집행위원회가 영국의 법 준수 여부를 감독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는 둘 다 브렉시트 강경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규정이다. 

EU 각국에는, 다가오는 탈퇴 협상의 복잡성, 그리고 EU의 가장 중요한 우선사항은 EU 단일시장의 전면적 통합의 보전이어야 함을 보장하는 회원국들 사이의 결의를 영국이 모두 과소평가했다는 광범한 믿음이 있다. 한 남유럽 외교관은 “영국은 매우 강한 언어를 일부 사용했으며, EU27이 영국을 처벌하려 한다는 견해를 제기하고 있는 것처럼 가끔 보이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영국이 협상 결렬의 원인으로 아마 유럽을 탓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더라도 당신은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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