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가 19일 미국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를 통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한미동맹이 깨진다면 진정한 동맹이라 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중단을 전제로 미국의 한반도 전략자산 전개를 포함해 한·미 연합훈련의 규모 축소를 하는 방안을 미국과 협상할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 특보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 정부가 가장 민감해 하는 사드 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한·미 정부가 술렁이고 있다.

“나는 학자로서 갔을 뿐…나는 특보지만 교수가 내 직업”
송민순 회고록 폭로 당시 “문재인 비서실장, 끼어들 여지 별로 없었다”


문재인 정부 초대 외교안보특보로 임명된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햇볕정책과 평화번영 정책의 이론을 구축한 대표적인 국제정치학자다. 노무현 정부 외교정책을 구상한 핵심 인사로 꼽힌다.

그는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때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이후 동북아시대위원회 위원장, 한국평화학회 회장, 동아시아재단 이사 등을 역임했다. 참여정부 때부터 꾸준히 외교부 장관 후보로 거론돼왔다.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명예특임교수와 김대중도서관 관장을 맡고 있다.

문정인 특보는 지난해 10월 17일 SBS 라디오 ‘박진호 시사전망대’ 인터뷰에서 ‘송민순 회고록 폭로’와 관련,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정치권의 공격이 거세지자 “내통은 무슨 내통이냐. 정말 금도 없는 막가파정치”라고 지금의 자유한국당을 비난 했다. 또 “이런 것들은 정치적 악순환을 가져오고, 새누리당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당시 싸움은 사실상 외교통상부와 통일부, 그러니까 송 장관과 이재정 장관의 싸움이었다”며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은 거기에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었다. 문 실장이 대북정책이나 외교정책에 영향력을 크게 발휘한 것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문제될 게 하나도 없다”
선택은 대통령 몫


문정민 특보의 거침없는 발언에 한미 정부는 물론 국내외 정치판까지 요동치고 있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사견을 전제로 한 발언이었지만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라 파장이 크다.

문 특보는 2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자리에서 자신의 ‘워싱턴 발언’에 대해 “고심해서 한 이야기다. 문제될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학술 회의에 가서 한 이야기를 가지고 왜 이 모양들인가. 청와대가 무슨 이야기인가”라며 “나는 학자로서 갔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 가지 분명히 하자. 나는 특보지만 교수가 내 직업”이라며 “나는 대통령에게 자문을 해주는 것이고, 내 자문을 대통령이 택하는지 여부는 대통령의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문 특보는 이번 방미 기간 동안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 중단을 전제로 미국의 한반도 전략자산 전개를 포함해 한·미 연합훈련의 규모 축소를 하는 방안을 미국과 협상할 수 있다” “사드 배치 문제로 한미동맹이 깨진다면 진정한 동맹이라 할 수 없다”는 등의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청와대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통해 “문 특보의 해당 발언들은 앞으로 있을 여러 한미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엄중 경고했다.

“지극히 위험한 발상”
발칵 뒤집힌 야당

문정인 특보의 발언을 두고 국내 정치계는 발칵 뒤집혔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회의에서 “문 특보의 발언은 지난 50여 년간 피로 지켜온 한미동맹을 한 방에 깨트릴 수 있는 지극히 위험한 발상”이라며 “북한과 중국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자의적 핵개발 논리와 궤를 같이한다”고 주장했다.

정 원내대표는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통령 특보가 이런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것은 동맹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연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극히 위험하고 억지스러운 발언”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문 특보는 우리 외교안보의 폭탄이나 마찬가지”라며 “당장 국가 운명이 걸린 외교 안보의 상전 노릇이나 대통령의 멘토 역할을 하지 말고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선동 원내수석부대표는 “문 특보의 존재 자체가 한미동맹을 근저에서 흔드는 진앙, 국가적으로 큰 재앙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며 “부다 자중하고 한미동맹이 수십년 동안 대한민국을 이룬 근간이었다는 것을 통찰하라”고 공세를 취했다.

주호영 바른정당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도 같은 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눈앞에 두고 외교안보 특보가 이렇게 민감한 문제를 불쑥 꺼내서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개인 자격이 아니라 특보 자격으로 한 말이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 대통령의 의중으로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어 “북한에서 혼수상태로 돌아온 오토 웜비어 사건으로 북한에 대한 미국 여론이 매우 안 좋은 상황에서 특보가 좌충우돌,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며 “응당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세연 사무총장은 “’사드 때문에 깨진다면 그것이 무슨 동맹이냐’는 문 특보의 말에 ‘방어체계 배치도 못 하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라는 말로 돌려주겠다”며 “이 순간 흐뭇하게 웃을 김정은을 떠올려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문 특보의 발언을 옹호하고 나섰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20일 오전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 문 특보의 발언에 대해 미국이 불편해 한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에 대해 “국내 언론의 지나친 호들갑”이라며 “미국인들은 어느 정도 논거를 가지고 얘기하는 얘기는 굉장히 경청을 한다”고 일축했다.

그는 “미국 조야가 한국이 겪고 있는 문제를 잘 모른다”며 “(문 특보의 발언이) 오히려 북미대화의 필요성을 만들어주고, 남북대화도 하게끔 미국을 이해시키고 그래야 남북관계가 풀리고 북미관계가 풀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도 이날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문 특보의 발언에 대해 “그런 얘기하라고 특보로 임명된 것”이라며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동결하면 전략자산 배치를 줄이거나 군사훈련을 축소하겠다고 한 것은 한국과 미국의 옵션 리스트에 들어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핵 동결하라, 핵 폐기하라는 우리 요구가 있는데 요구가 협상을 통해서 얻어지려면 그걸 위해서 주는 것이 있어야 한다”며 “이제 뭘 줄 것인가 하는 것은 굉장히 섬세하고 미묘한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못 주고, 바로 제시하지 못하고 비공식적으로 또는 비공개리에 애드벌룬을 띄우거나, 민간인이 얘기를 해 버리거나 하는 과정을 거치게 돼 있고 그중의 한 스텝을 이번에 밟은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국내에서는 큰 논란이 되고 있지만 정작 미국 분위기는 차분하다. 앨리시아 에드워즈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대변인은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를 통해 “문 특보의 해당 발언은 개인 견해로 이해하고 있다”면서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하지만 문 특보는 사견임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기는 했지만 문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외교안보 특보라는 점에서 공식적인 자리에서 드러낸 생각은 어느 정도 대표성을 띨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외교가 안팎의 시각이다.

미국이 즉각 반응을 보인 것도 정상회담 전에 미국 조야의 분위기를 협상 쪽으로 이끌기 위한 사전 여론전을 펼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문 특보가 이슈를 제기하고, 한국 정부는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일종의 ‘화전양면 전술’을 펼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역설적 표현’ ‘동맹 악화’
전문가들 평가 엇갈려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도 문 특보의 발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문 특보에게 우호적인 전문가들은 학자로서 충분히 낼 수 있는 의견이며 한국 정부 공식 입장도 아닌 특보 개인 의견을 놓고 한미동맹의 균열까지 우려하는 것은 호들갑에 지나지 않는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김관옥 계명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 특보가 사드 배치 문제로 한미동맹이 깨진다면 진정한 동맹이라 할 수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에 대해 “한미동맹은 굳건하고 사드 문제에 의해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는데 확대 해석이 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난 63년간 한미동맹이 얼마나 단단하고 굳건했냐. 이런 상황에서 사드가 깨진다고 한미동맹이 깨진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역설적으로 (문 특보의 이야기는) 한미동맹이 굳건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전문가가 그런 이야기도 못 하면 전문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문 특보에게 비판적인 전문가들은 한·미 정상회담 준비를 하러 간 특보의 발언으로 보기에는 부적절하며 한미동맹을 악화시킬 수 있는 발언이었다고 비판했다.

장성호 건국대학교 국가정보학과 교수는 “시기적으로 한·미 정상회담 준비차 방문한 특보가 한미상호방위조약 기조에 파열음을 일으킨 말이라 부적절하다”며 “교수 개인의 신분이 아니고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된 공직자이기 때문에 사견으로 얘기했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비상식적인 언사”라고 일갈했다.

이상휘 세명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는 “국제정세가 초불확실성의 시대와 미국 우선주의로 가고 있어서 대북 정책도 제재를 원칙으로 삼고 있는 상황인데 여기에 유화적인 스탠스를 갖고 정반대 입장으로 간 것”이라며 “조율적 장치 없이 툭 던지는 것은 한미동맹을 악화시킬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발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사드 문제가 별것 아니라는 식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묵살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두환 기자  od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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