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면책 특권 포기 못해!”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드라이브에 맞춰 일요서울은 ‘대한민국 적폐청산 정치 5敵’을 연재한다. 주제는 ▲철새 정치 ▲계파 정치 ▲세습 정치 ▲지역 주의 ▲묻지마 폭로 총 다섯 가지다. 지난 호에서 지역 주의의 폐해를 짚어본 데 이어 이번 호에선 마지막 주제인 묻지마 폭로의 심각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묻지마 폭로의 대부분은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허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같은 무책임한 폭로를 한 당사자들은 대부분 책임에서 자유롭다. ‘면책 특권’이라는 그들만의 견고한 방패가 있기 때문이다. ‘면책 특권’은 국회의원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의정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헌법이 보장하는 특권이다. 그러나 일부 의원들이 이를 음해나 비방, 묻지마 폭로의 방패막이로 악용하고 있어 정치권에 자성의 목소리가 요구된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국감 스타’·‘청문회 스타’ 되기 위한 폭로 경쟁 ‘가관’
- 우상호 “작은 실수 빌미로 큰 제도 손봐선 안 돼” 특권 ‘사수’


국정감사, 청문회 등은 국회의원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이때 초선의원은 물론 다선의원들까지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를 위해 고군분투한다. ‘묻지마 폭로’는 소위 ‘국감 스타’, ‘청문회 스타’를 꿈꾸는 의원들이 명확한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무리수’를 두는 데서 발생한다.

조응천, ‘묻지마 폭로의 아이콘’ 오명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지난 2016년 6월 30일 엉뚱한 사람을 성추행범으로 몰았다가 하루 만에 정정 자료를 내는 촌극을 빚으며 일약 ‘묻지마 폭로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날 대법원의 업무보고 과정에서 조 의원은 “성추행으로 정직 처분을 받았던 MBC 고위 간부가 대법원 양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를 하며 실명과 직위까지 공개했다.

MBC는 곧바로 “조 의원이 지목한 본사 간부가 성추행 전력이 있거나 회사의 징계를 받았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조 의원에 대한 민형사상의 책임을 철저히 물을 예정”이라고 반박했고 이에 조 의원은 “사실관계를 잘못 알았다”라며 동명이인임을 파악하지 못한 실수를 인정했다.

그러나 조 의원의 묻지마 폭로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지난해 9월 20일 대정부질문에서는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착용하고 있던 브로치와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최순실 씨가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구입해 제공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으나 이를 입증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조 의원뿐만 아니라 같은 당 박범계 의원의 묻지마 폭로도 가관이었다. 박 의원은 2016년 11월 22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 씨가 지난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공천에 관여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박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최 씨가 새누리당 20대 총선 공천과 관련해 현역 비례대표 3명의 공천에 관여했다는 구체적 제보를 받았다”며 “당장 이름을 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정치권에서는 문제 의원 3명의 이름을 놓고 4,5개의 서로  다른 명단이 회자됐지만 이 역시 입증할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김재수 농림축산부 장관이 하루아침에 부도덕한 기득권자라는 비판을 받게 된 것 역시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의 묻지마 폭로의 힘이 컸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김 의원은 김 장관을 향해 “농림부 국장이던 2001년 평균 금리가 8%대였음에도 농협에서 1%대 대출을 받았다”, “대한민국 국민 중에 1.4%로 4억 5000만 원을 은행에서 빌려서 집을 구입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된다고 생각합니까?”라고 꾸짖었다.

좋은 먹잇감을 문 언론은 일제히 김 장관 때리기에 열을 올렸고 김 장관은 하루아침에 뻔뻔한 고위공직자가 되고 말았다. 이후 이 같은 사실이 모두 허위로 드러났음에도 언론은 침묵했고 김 의원은 “질의 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다”는 말 한마디로 넘겼다.

허위 폭로 피해자인 김 장관에겐 ‘황제 대출’, ‘별나라 이자’ 등의 낙인이 찍혔지만 정작 무책임한 국회의원 갑질을 선보였던 묻지마 폭로의 당사자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단숨에 이름을 알리게 됐다.

이같은 ‘묻지마 폭로’는 대선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간의 네거티브 전쟁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문재인 후보의 ‘차떼기’ 공세에 안철수 후보 측은 ‘폰떼기’ 의혹으로 맞불을 놓았다.

포털에서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이름을 검색하면 ‘부인’·‘조폭’·‘아들’·‘딸’ 등이 연관 검색어로 뜰 정도였다. 대선마저도 정책 선전을 통해 ‘나를 찍어 달라’는 선거가 아닌 상대 후보 비방을 통해 ‘상대를 찍지 말라’는 선거판이 됐다는 지적이다.

대법원 “모든 발언이 면책 특권 대상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국회의원들이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묻지마 폭로’를 할 수 있는 결정적 이유로 헌법 45조가 정하고 있는 ‘국회의원 면책 특권’을 꼽는다. 헌법 45조에는 “국회의원은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에 대해 국회 외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이 ‘정략적 판단’에 따라 명확한 근거 없이 ‘명예훼손’ 내지는 ‘허위 사실 유포’에 해당하는 수준의 발언을 국감장에서 해도 헌법상 면책특권에 따라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권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소신껏 의정활동을 하라고 헌법이 보장한 특권이 음해나 비방, 묻지마 폭로의 방패막이로 오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대법원은 지난 2007년 ‘국회에서 한 발언이라도 모든 발언에 면책 특권이 부여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이후 조응천 의원 폭로 사건을 계기로 정치권에서도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의원들은 여전히 ‘면책 특권’의 편안함을 포기하기 힘든 모습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과거 조응천 의원의 ‘묻지마 폭로’ 당시 “작은 실수를 가지고 큰 제도를 손보려는 자체는 옳지 않다”고 조 의원을 감쌌다. 

그는 “초선 의원의 실수를 빌미로 국회가 권력을 견제하는 기능과 권한까지 제압하는 시도에 과감히 맞서 싸우겠다”며 “기본적으로 면책특권은 행정부와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해 헌법이 부여한 권한이다. 이런 권한을 약화시키면 사법부가 두려워 어떻게 제대로 견제를 할 수 있겠느냐”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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