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청구서’ 보내온 노동계, 文 대통령 “1년만 기다려 달라”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장관 임명 난항으로 어려움에 처한 문재인 정부에 노동계가 이른바 ‘촛불 청구서’를 보내며 총 파업을 예고하고 나섰다. ‘촛불 민심’으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에게 촛불을 함께 들었던 노동자들이 대가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는 문 대통령 취임 50일에 즈음해 오는 30일 전후로 전국 각지에서 노동자, 농민, 대학생 등이 서울로 집결해 총파업에 나설계획이다. 이들의 요구는 최저임금 1만 원, 비정규직 철폐 등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비정규직 제로 정책 등을 비롯한 친 노조 정책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취임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노동계의 전면적인 총파업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제 갓 내각을 구성하며 문재인표 정책에 시동을 거는 입장에서는 이들이 야속할 수밖에 없다.

노동계·경영계·정부 18년 만에 한자리에 모였지만
만원행동 “정부 지침으로만 우리의 생존을 지킬 수 없다” 

 
지난 21일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전국여성노조가 연대한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서울 중구 정동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총파업을 선언했다.

주로 학교 영양사, 사서, 전문상담사, 행정실무사 등으로 일하는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는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20일까지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실시해 조합원 89%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총파업 투쟁을 가결했다. 근속수당 5만 원 인상을 포함한 임금교섭의 핵심과제와 학교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임금교섭을 시작했지만 모든 교육청에서 기본급 3.5% 인상안 이외에 노조의 요구안 중 단 한 가지도 수용하지 않고 있다”며 “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화 선언 이후 연일 정부부처,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곳곳에서 비정규직 대책 마련 일정을 쏟아내고 있지만 정작 교육부와 교육청은 뒷짐만 진 채 가만히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오후 ‘최저임금 만원 비정규직 철폐 공동행동(만원행동)’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총파업 투쟁에 나선다는 입장을 밝혔다.

만원행동은 “최저임금 1만 원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요구이며 비정규직 철폐는 고용불안으로 미래를 잃게 만드는 현실을 바꾸는 목소리다. 노조할 권리는 누군가의 시혜가 아니라 우리의 힘으로 권리를 찾도록 하겠다는 선언”이라면서 “정부의 지침으로만 우리의 생존을 지킬 수 없다. 재벌대기업은 정부정책에 반대하고 있다”고 총파업에 함께 참여해 달라고 호소했다.

앞서 정부기관의 비정규직 노동자 모임인 공공비정규직노조는 지난 20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갖고 무기계약직과 정규직 간 차별 개선 등을 요구했다. 21일까지 이틀간 내국인 건설노동자 고용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상경집회를 가진 건설노조도 총파업 투표에 돌입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총파업에 돌입한 화물연대는 다음달 1일 결의대회를 갖고 표준운임제 도입,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이 밖에 사회적 총파업을 앞두고 최저임금 노동자와 마트 노동자들이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알바노조는 최저임금 1만 원을 요구하는 농성을 준비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최저임금 1만 원 선언운동을 진행할 예정이다.
 
“문재인 정부는 다르다”
부탁까지 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 청와대 본과 회의실에서 위원장으로서 일자리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했다.

일자리위원회는 위원장인 문 대통령을 중심으로 이용섭 부위원장, 이호승 일자리기획단장, 장신철 일자리기획단 부단장과 한훈 총괄기획관, 본위원회인 당연직 위원과 위촉직 위원, 전문위원회, 특별위원회, 시도별 지역위원회 등 30여 명으로 구성된다. 이날은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가 18년 만에 한 자리에 모인 자리였다.

위촉직 위원은 한국노총, 민주노총,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 노사단체 대표 6명과 한국YWCA 연합회, 한국여성단체연합회,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농협경제지주, 벤처기업협회, 이스타 항공그룹 대표, 수원시장 등 7명의 각계 민간 대표로 구성된다.

첫 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노동계에 대해 “특별히 좀 당부 말씀을 드리면 노동계는 지난 두 정부에서 배제되고 소외되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다르다. 경영계와 마찬가지로 국정의 주요 파트너로 인정하고 대접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노동계는 지난 두 정부에 워낙 억눌려 왔기 때문에 아마도 새 정부에 요구하고 싶은 내용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필요하다. 적어도 1년 정도는 시간을 주면서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매달 한 차례 정례회의를 열어 일자리 정책과 추진 상황 등을 점검하고, 오는 8월 말까지 일자리 로드맵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이 같은 문 대통령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총파업을 선언하고 나섰다.
 
“노동계, 안하무인
태도 보이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에 노동계가 총 파업을 예고하자 정치권은 비판에 나섰다.

자유한국당은 22일 정준길 대변인을 통해 ‘촛불 청구서, 이제 시작일 뿐이다’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정 대변인은 “북한으로부터 괴뢰라는 모욕적 호칭을 들으며 10.4 남북공동성명 등에 근거한 청구서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노동계의 ‘촛불 청구서’마저 날아든 것”이라며 우려를 표명했다.

이어 “이미 노동계는 ‘촛불 덕 본 문재인 정부에 요구할 권리가 있다’며 평일 출근길에 3개 차로를 막고 행진을 하고, 집회 현장에서 술판을 벌이는 등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더 큰 문제는 촛불 청구서는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촛불 집회에 앞장섰던 각종 단체들이) 촛불 민심이라는 명목 하에 사드 배치 철회 등 국방, 안보 문제까지 관여하려 하고 있다”며 “‘촛불 민심’이 떼법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된다면 사회적 혼란과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정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은 1년 뒤 지방선거만 무사히 넘기고 보자는 안일한 생각을 버리고, 촛불청구서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정병국 바른정당 의원도 같은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전체회의를 통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진보진영·노동계 등의 ‘촛불청구서’에 대해 “법치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무법적 요구들”이라고 비판했다.

정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이같은 촛불청구서에 응한다면 이것은 혁명정부라고 할 수밖에 없다”며 “민주노총은 사회적 총파업을 앞세워 대대적인 집회시위를 예고하고 있고 한상균 위원장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전교조는 법외노조를 합법화시켜 달라고 요구서를 내고 있고, 참여연대는 천안함 침몰을 미제사건으로 규정하며 진상조사를 주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일부 시민단체들은 내란음모죄로 구속된 이석기 전 의원의 석방까지 요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
노동계에 발목 잡힐라

 
문재인 대통령은 새 정부는 출범과 함께 혁신·개혁 인사 임명을 통해 강력한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걸 예정이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장관 인사 난항으로 시작부터 삐걱이고 있는 상황이다.

취임 이후 빼들었던 검찰 개혁도 안경환 법무무 장관 후보자 낙마로 답보 상태에 빠졌다. 추경예산도 사실상 물 건너간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노동계마저 총파업을 예고하고 나서자 사면초가에 빠졌다.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각종 시위와 집회에 최대한 자율권을 부여해 왔다. 심지어 청와대 사랑채 인근의 민주노총 소속 투쟁사업장 공동투쟁단의 그늘막 농성도 제지하지 않고 있다. 경찰도 이에 맞춰 시위와 집회 현장에서 질서 유지에 주안점을 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노동계는 이러한 문 대통령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투쟁에 나서고 있다.

여권 내부에서는 자칫 노동계가 적폐청산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야권에서는 한발 더 나아가 정권에 상관없이 자신들의 요구만을 관철시키기 위해 나서는 일부 노동단체들이야 말로 적폐청산의 대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총파업 독려 나선
한상균 위원장

 
노동계가 총파업을 예고하고 나선 가운데 수감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옥중 서신을 통해 총파업을 독려하고 나서 논란이 되고 있다.

한 위원장은 20일 민주노총 홈페이지에 올라온 서신을 통해 “중요한 시기인 만큼 지혜도 모아주고 연대와 투쟁의 깃발도 드높게 휘날려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자”고 강조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노동이 존중받고 노동자가 행복한 나라를 핵심 국정기조로 선정하고 후속조치도 약속하고 있다”며 “정경유착의 공범 재벌, 개혁의 대상 권력기관과 기득권 집단이 코너에 몰려 있는 지금이야말로 칭기즈칸의 속도전으로 개혁을 밀어붙일 적기인데 주춤하고 있어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노동자가 헌법이 보장한 대로 노동3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며 “문재인 정부는 기득권 세력의 눈치를 보지 말고 책임 있는 조치를 하라는 것이 6·30 총파업의 요구이고 구호이다”라고 설명했다.

한 위원장은 “6·30 사회적 총파업은 일부의 우려처럼 새 정부의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다”며 “광장의 촛불을 이어받은 내 삶을 바꾸는 투쟁이고,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개혁추진을 위한 강력한 동력”이라고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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