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 따기 입시교육기관 ’vs ‘아이들 실험용 생쥐 아니다’

자사고 폐지 반대를 주장하며 108배를 드리는 한 학부모 모습.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교육공약인 자사고·외고 등의 일반고 전환을 두고 해당 학교와 학부모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시교육청도 정부의 정책에 발 맞춰 폐지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겠다는 방침이어서 마찰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오는 28일에는 서울시교육청이 4개 자사고·외고의 재지정평가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어서 결과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에는 전국 자사고 46곳 중 절반이 밀집해 있다. 이와 함께 새롭게 임명될 교육부 장관의 행보에 따라 자사고·외고 폐지 정책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어 초미의 관심사다.
 
김상곤 후보자, 교육감 시절 ‘유지’ 최근엔 ‘폐지’
서울시교육청, 일반고 전환 방법·시기 등 28일 발표 

 
지난 21일 서울 중구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에서는 서울지역 23개 자사고가 모인 서울자율형사립고등학교연합회(이하 자교연)가 “자사고 폐지 정책은 진영 논리에 입각한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며 정부와 서울시교육청에 일반고 전환 정책 중단을 촉구했다.

오세목 자교연 회장(중동고 교장)은 “교육부의 ‘사교육 영향평가’가 입증하고 있듯 서울 자사고 전형에는 사교육 유발 요소가 전혀 없다”며 “성적과 상관없이 신입생을 선발하는 서울 자사고가 고교서열화를 이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2일에는 자사고 자녀를 둔 자율형사립고학부모연합회(이하 자학연)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이화여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송수민 자학연 회장은 “우리 아이들은 실험용 생쥐가 아니다”라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이 정치적 논리에 휘말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교육청이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면 고교교육의 하향평준화와 강남 학군 부활, 지역 격차 확대 등의 부작용이 쏟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교연 측은 “사회적 합의 없이 획일적 평등교육을 몰아붙인다면 자율성 수호에 맞서 제도적, 법적 노력을 전개하겠다”며 법정다툼을 예고했다. 재지정 평가결과 발표를 앞둔 자사고 3곳 중 1곳만 지정취소 결정이 나도 교육청을 상대로 손해배상 등 소송을 감행한다는 계획이다.

자교연·외고협의회
법정 다툼 예고

 
전국외국어고등학교 교장협의회도 지난 22일 서울역 지하 회의실에서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협의회는 외고 등 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과거 (외고의) 일면을 침소봉대하는 광경”이라며 중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외고 설립 취지에 맞는 선발과 진학지도가 이미 정착된 시점에서 외고의 일방적인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지난 30년간 외고가 기여한 순기능과 자정 노력, 현실적 교육문화의 변화를 보지 못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회의에는 전국 31개 외고 교장 중 28명이 참석했다.

협의회는 과도한 경쟁으로 인한 사교육 부담 가중, 설립취지에 반하는 입시 위주 교육, 고교서열화로 인한 일반고 황폐화 등 외고 일반고 전환 이유로 제시된 근거들에 대해 반박했다.

최진관 협의회장(부일외고 교장)은 “전국 외고는 이미 2010년 이후 자체 선발고사 폐지, 정원 외 40% 감축, 정원외 20% 사회통합전형선발·지역단위전형 선발 등으로 선발 방식을 개선해 부작용을 해소했다”면서 “재학생 남녀 비율이 25 대 75로 어학관련 진로 적성이 높은 여학생 인원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입시 환경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외고 폐지 정책 논의가 정치적 포퓰리즘이 되지 않기를 강력하게 희망한다”며 “검증적이고 발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외고에 대한 여론몰이식 폐지 정책은 즉각 중지돼야 한다”고 거듭 요구했다.
 
서울시교육청
“분리교육 안 된다”

 
자사고·외고 교장 및 학부모들의 반발이 심상치 않지만 폐지 정책을 내세운 서울시교육청의 입장도 확고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서울 지역 자사고와 관련 “사이비 다양성, 사이비 자율성이란 이름으로 분리교육으로 간 지점이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조 교육감은 지난 20일 서울시교육청에서 열린 새 정부 교육공약 이행 방안 기자회견에서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교육의 다양성을 훼손할 것’이란 일부 주장에 대해 이같이 반박했다.

그는 “다양성과 자율성이라는 가치가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인 한편 공공성과 평등성도 중요한 가치”라고 전제한 뒤 “한국처럼 동질성이 강한 사회에선 통합교육 틀 내에서 다양성과 자율성을 실현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분리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가 우수한 교육을 받게 한다는 방식으로 가선 안 된다”며 “지금 (서울 지역 자사고는) 분리교육 수준으로까지 가고 있어 일반 국민들이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 지역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방법이나 시기 등은 오는 28일 경문고, 세화여고, 장훈고, 서울외고, 영훈국제중 5개 학교에 대한 재지정 평가결과를 발표하면서 밝히기로 했다.

조 교육감은 이날 교육공약 이행방안 가운데 새 정부의 ‘외고·자사고 일반고 전환’공약 실행을 위한 개선 과제로 ‘자사고 지정 고시 및 취소절차 개선’을 제시하기도 했다.

‘초·중교육법 시행령’ 제91조 3항에서 교육부 장관의 동의를 받도록 돼 있는 자사고 지정 및 지정취소 권한을 교육감에게 이양하고 사전 동의 조항을 삭제해 달라는 것이다.
 
한국교총·전교조
찬반 엇갈려

 
외고와 자사고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교총)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은 상반된 입장이다.

한국교총은 “이(재정) 교육감과 조 교육감이 일반고로의 전환을 기정사실로 언급하면서 논란이 심화되고 있다”며 “아직 교육부 차원의 구체적 공약 실현 방안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일괄적으로 재지정하지 않겠다고 밝혀 학교와 학생, 학부모에게 커다란 혼란을 주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일반고의 교육이 획일화된 상황에서 외고·국제고·자사고 폐지는 다양한 교육과 수준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교육 기회를 박탈하는 조치”라며 “필연적으로 일반고의 교육에 만족하지 못하는 학생의 사교육비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전교조는 환영하는 입장이다. 송재혁 전교조 대변인은 “학교들이 나름대로 설립 취지를 강변하지만 ‘점수 따기 입시교육기관’으로 전락했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특권학교를 해소하고 일반학교에 다니는 모든 학생들이 질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방향을 전환하려는 정부와 교육감의 정책은 평등교육을 지향해온 전교조로서 환영할 조치”라고 말했다.

한편 김상곤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입장에도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후보자는 2009년 경기도교육감 선거 당시 10대 공약 중 하나로 "특목고와 자사고는 원래 취지대로 엄격히 규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폐지가 아니라 규제를 강조한 것이다.

당시 김 후보자는 “자사고나 특목고를 일거에 폐지하는 것은 교육 현장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강화할 것”이라며 특목고·자사고 유지·동결을 주장했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공교육 강화로 특목고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정책을 펴 나가겠다”고 밝혀 향후 축소 및 폐지 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임명된 김상곤 후보자는 현재 외고·자사고 폐지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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