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를 포함한 약물 남용 원인, ‘40.2%’로 가장 높아

지난해 8월 경기도 안양에서 벌어진 ‘묻지마 칼부림’ 사건의 피의자.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화를 참지 못하고 폭행과 살인, 연쇄 방화 등 분노조절장애(충동조절장애)로 인한 ‘묻지마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묻지마 범죄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아 ‘분노 범죄’로 불리기도 한다. 특정 대상이 없이 무차별로 행해지는 범죄의 특성으로 너도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대학 사제폭발물’‧‘밧줄 절단’‧‘수리기사 살해’ 등 잇따른 분노성 범죄
검‧경 묻지마 범죄 예방 위해 노력···전문가 “어렸을 때부터 훈육해야”


지난 13일 지도교수의 질책에 반감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대학원생 A씨가 구속됐다. A씨는 경찰에서 “평소 교수로부터 연구 지도를 받는 과정에서 질책이나 꾸중을 받은 일이 있었다”며 교수를 상대로 사제폭탄물을 제작해 부상을 입힌 것으로 드러났다.

또 지난 14일에는 아파트 외벽에서 작업하던 작업자의 밧줄을 잘라 숨지게 한 아파트 주민 B씨가 살인 혐의로 구속됐다.

B씨는 지난 8일 오후 8시 13분경 양산시에 위치한 한 아파트 옥상에서 외줄을 타고 12층 외부로 내려와 외벽 공사 작업을 하던 C씨의 밧줄을 공업용 커터칼로 잘라 추락시켜 숨지게 하고 또 다른 작업자 D씨의 밧줄을 일부 자른 혐의다. 다행히 D씨는 사고 직후 1층으로 급히 내려와 화를 면했다.

경찰 조사 결과 B씨는 당일 오전 술을 마신 뒤 잠을 자려고 하는데 창 밖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자 D씨 등에게 “휴대폰을 끄라”고 항의했으나 멀리서 작업을 하던 C씨가 이를 듣지 못하고 음악을 튼 채 작업을 하자 옥상에 올라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6일에는 충북 충주에서 인터넷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출동한 수리기사를 흉기로 살해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에 따르면 피의자 E씨는 이날 오전 10시 인터넷 수리를 위해 자신의 원룸을 방문한 F씨에게 “당신도 갑질 하려고 하는 것 아니냐”며 시비를 걸었으며 E씨는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집안에 있던 흉기로 F씨를 공격했다. 흉기에 찔린 F씨는 가까스로 집 안에서 탈출해 행인의 신고로 현장에 출동한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분노’ 아닌
‘차별’ 망상?

 
E씨의 범행은 앞서 밝힌 두 사건보다는 정신적으로 특이한 성향을 보였다. 경찰은 E씨가 분노보다 차별을 받고 있다는 피해 망상이 컸다고 말한다.

충북지방경찰청 과학수사대는 지난 19일 E씨를 상대로 범죄 심리 분석 수사를 진행했다고 20일 밝혔다.

이 과정에서 E씨가 일반인과는 달리 인터넷 사용과 관련한 부분에서 현실에 맞지 않은 잘못된 생각을 실제 사실로 판단하는 망상 장애요소가 드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경우 교육 정도나 문화적인 환경에 걸맞지 않은 잘못된 믿음, 생각을 사실로 받아들여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확하게 그것이 분노가 아니라고 정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의료계는 이 증상이 심각하면 정신병적 질환으로 분류하지만 조현병과 달리 일부 문제를 제외하고는 체계적이며 괴이하지 않아 살면서 인지하지도 못할 가능성이 큰 것을 특징으로 보고 있다. 결과적으로 세 사건 모두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범죄로 관측되는 상황이다.
 
5년간 ‘231건’ 발생
 
대검찰청이 지난해 발표한 ‘묻지마 범죄 발생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5년간 매년 50건 이상, 총 231건의 묻지마 범죄가 발생했다. 범죄 유형으로는 상해 54.1%, 살인 24.2%순이었다. 원인별로는 음주를 포함한 약물 남용이 40.2%, 정신질환 31.2%, 현실불만 22.5%로 집계됐다.

분노조절장애는 화를 내는 것 외에 언어폭력, 적대적 행동, 폭력 행동, 충동성, 비행 등 파괴적 행동과 방화, 도둑질 등 내적 긴장을 해소하기 위한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경우로도 나타난다.

따라서 ‘병적 도박’, ‘발모광’, ‘인터넷 중독’, ‘충동적‧강박적 성행위’, ‘소아기 품행장애’, ‘폭식장애’, ‘B형 인격장애(자기애성 인격장애, 히스테리 인격장애, 반사회적 인격장애) 등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8월 묻지마 범죄 예방을 위해 경찰과 검찰 인력을 관련 부서에 각각 1441명, 70명을 증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국민 불안감 해소를 위해 현장치안에 역량을 집중하고 CCTV설치 등 현장영상시스템 구축에 11억 원을 투자할 방침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 밖에 검찰은 묻지마 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에게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형량을 특별 가중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묻지마 범죄가 지속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관망한다. 현대인이 술과 같은 독성 물질을 만성적으로 흡수하기 때문에 뇌의 기능을 저하시키면서 분노조절장애의 유발인자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분노조절장애와 이로 인한 범죄는 특별한 동기 없이 일어나고 생물학적, 환경적 등 다양한 원인으로 인해 나타난다는 점에서 어렸을 때부터 적절한 훈육을 통한 조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선미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분노조절장애(충동조절장애)에 대해 “공통적으로 유전적, 생물학적, 환경적, 사회심리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생물학적으로는 뇌의 변연계와 안와전두엽 부위의 기능장애, 세로토닌 신경전달이 감소된 경우가 흔히 원인으로 거론된다”며 “과거의 뇌손상, 두부손상, 뇌염등과도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경적, 사회 심리적으로 아동기에 알코올중독, 학대와 방임, 부모간의 불화 등이 많았던 환경에서 성장한 경우 더 흔하게 일어난다”며 “참았을 때 보상을 적절히 해주고 가족이 옆에서 가르쳐줌으로써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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