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뒤늦게 재심 결정·진범 나타나 결국 범행 자백
박준영 변호사, “폭력 휘둘러 경찰 직무상 범죄 확실”


“열 명의 죄인을 놓친다 하더라도 죄(罪) 없는 한 사람을 벌하지 말지어다.”(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중)

10여 년 전 4명의 소년에게 영화와 같은 일이 생겼다. 우연히 각자 다른 사건에 연루되면서 살인자와 강도치사범으로 몰린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살인의 기억’이 없다. 경찰의 폭행과 억압, 거짓 진술 강요만이 뇌리에 남아 있을 뿐이다.

지난해 재심(再審)이 결정된 2000년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과 최근 재심에서 무죄(無罪)가 확정된 1999년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은 소년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불우한 10대 용의자, 강압수사, 진범 추정인물 등장, 만기복역, 재심 절차 등 두 사건은 매우 닮은 요소가 많다. 누명을 쓰고 청춘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연과 피해자들의 아픔을 세밀하게 들여다봤다.

2000년 8월 우연히 살인사건을 목격한 최모(32)씨는 한순간 청춘을 송두리째 잃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최 씨는 10대 초반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다방의 배달일을 했다.

최 씨는 2000년 8월 10일 새벽 2시께 전북 익산시 영등동 약촌오거리 부근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 끔찍한 현장을 목격했다. 길가의 한 택시 운전석에서 기사 유모(당시 42)씨가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었다. 예리한 흉기로 12차례나 찔린 유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날 새벽 숨을 거뒀다.

당시 최초 목격자인 최 씨는 경찰의 참고인 조사에서 “현장에서 남자 2명이 뛰어가는 모습을 봤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경찰은 자꾸 그를 범인으로 몰았다.

경찰은 최 씨가 택시 앞을 지나가다가 운전기사와 시비가 붙었고, 이 과정에서 오토바이 공구함에 있던 흉기로 유씨를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경찰의 강압에 못 이겨 한 거짓 자백이 자신의 인생에 독(毒)이 됐다. 하지만 경찰 발표와는 달리 최 씨가 사건 당시 입은 옷과 신발에서는 어떤 혈흔(血痕)도 발견되지 않았다. 재판은 정황증거와 진술만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범인으로 전락한 최 씨는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지난 2010년 만기출소했다. 수감 생활 중에는 진범(眞犯)이 잡혔다는 소식도 접했다. 경찰은 사건 발생 2년 8개월이 지난 2003년 3월 이 사건의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정보를 확보했다. 당시 용의자로 지목된 김모(당시 22)씨는 경찰에 붙잡히자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그의 친구 임모(당시 22)씨로부터는 “사건 당일 친구가 범행에 대해 말했으며 한동안 내 집에서 숨어 지냈다”는 진술까지 확보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물증(物證)이 발견되지 않은 데다, 김씨와 그의 친구가 진술을 번복하면서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직접 증거가 없자 검찰은 기소조차 못 했다.

대법원은 2015년 12월 이 사건에 대해 재심 결정을 내려 최 씨는 실낱같은 희망을 걸었다. 최 씨는 2013년 재심을 청구해 광주고법에서 재심 개시 결정을 받았으나 검찰의 항고로 대법원 판단을 받았다. 광주고법은 최 씨가 불법 체포·감금돼 가혹행위를 당한 점, 확정판결 이후 자신이 유 씨를 살해했다는 다른 피의자의 진술 등 새로운 증거가 확보된 사실 등을 재심 사유로 들었다.

이른바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옥살이를 한 30대 청년 세 명도 무죄를 주장했다. 임모(38)씨, 최모(37)씨 등 동네 선후배 3명은 1999년 2월 6일 오전 4시께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서 발생한 3인조 강도치사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했다. 당시 강도들은 주인 유모(당시 76) 할머니를 질식사시킨 뒤 현금과 패물 등을 훔쳐 달아났다는 게 경찰의 발표였다.

경찰에 붙잡힌 ‘삼례 3인조’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지적장애인 데다가 많이 배우지도 못한 19∼20세의 청소년이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범행을 자백한 이들은 각자 징역 6년에서 4년을 선고받고 만기출소했다.

그런데 같은 해 11월 이 사건의 다른 용의자 3명이 부산지검에 검거돼 범행 일체를 자백했지만, 전주지검에 이첩된 뒤 자백을 번복해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사건이 발생한 지 17년이 지나 공소시효는 지났고 사건 기록도 모두 폐기됐다.

이들을 무료 변호했던 박준영(43·사법연수원 34기) 변호사는 지난해 3월 유가족이 보관 중인 현장검증 동영상과 진범으로 지목됐던 인물들의 사건기록을 근거로 전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이들 중 한 명은 “흐릿한 기억이지만 현장검증 때 한 경찰관은 ‘너희는 배우고 나는 감독이다’란 말까지 했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 와중에 또다시 사건 결과를 뒤엎을만한 반전(反轉)이 생겼다. 진범으로 지목됐던 이모(49)씨가 지난달 말 자신이 범인이라며 자백하고 피해자의 묘소를 찾아가 참회했다.

이 씨는 지난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당시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죄를 인정하고 자백했지만, 검찰은 우리가 범인이 아니라고 했다. 당시 제대로 처벌받았다면 이런 마음의 짐은 없었을 것이며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을 마음속에 얹고 살다 보니 죄책감으로 스스로 위축됐다”라고 고백했다.

이씨는 ‘삼례 3인조’에게도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유족도 이들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피해자의 사위인 박성우(58)씨는 이들의 앞날을 안타까워했고 열 일을 마다치 않고 도왔다.

박 변호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찰관들이 이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인 폭력을 휘둘러 경찰관의 직무상 범죄가 확실하며 진범들이 범인이 아니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진술을 한 점 등을 근거로 재심 청구를 했다”며 “여러 증거를 보면 이들은 결코 범인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씨는 “정말 누명을 벗고 억울함을 풀고 싶다”며 “저희를 폭행한 형사들에게 똑같은 세월을 살게 해 주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윤광제 작가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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