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공약 5대 비리 인사 배제 원칙 버리고 셀프 임명
- 원전도 시민이 결정, “국민만 믿고 간다” 국정지지율 다 걸기


“진보는 결코 미래와 싸우지 않았다. 무지하고 생각이 짧은 진보 반대론자들과 싸웠다.”

미국의 사회비평가 크리스토퍼 래시는 <진보의 착각>에서 진보의 엘리트주의를 이렇게 비판했다. “대한민국의 진보는 끝없이 과거의 권위주의와 독재 시절을 문제 삼는다. 진보가 진보적이지 못하고 비합리적인 경우다.” 송호근 교수 등은 <좌?우파에서 보수와 진보로>에서 진보의 독선 행태를 꼬집은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의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강경화 외교부장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국민의 뜻 따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국민의 뜻”은 80%를 넘나드는 국정지지율, 반대보다 찬성이 더 많은 강 장관 임명 여론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대선공약인 5대 비리 인사 배제 원칙(병역 면탈, 세금 탈루, 부동산 투기, 논문 표절, 위장 전입)을 걷어차고 5대 비리로 얼룩진 장관 후보자들의 임명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 관계자의 “인사청문회는 참고자료일 뿐”이라는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여론조사 노출 빈도 순간 포착…거품도 많아

문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갔다. 신고리 원전 5, 6호기의 건설을 중단하고 재개 여부를 시민배심원단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탈원전이 세계적인 흐름이고 이제는 대한민국도 그를 좇아야 한다는 주장에는 백번 동의할 수 있다. 신재생 에너지를 확충하고 친환경 에너지정책을 추진한다는 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문제는 시기와 방식이다. 새 정부는 출범한 지 두 달도 되지 않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없었고 조각(組閣)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어떻게 에너지 정책을 새로 결정하는가. 하루아침에 수조 원이 투입된 원전 건설을 중단한다는 것인가. 또한 대안으로서 중장기 에너지정책은 무엇인가.

시민배심원단은 뜬금없다. 그것의 정체도 도무지 모르겠다. 에너지 산업은 주요 국가 기간산업으로 부처간 심도 깊은 협의를 통해서 수립되고 집행된다. 원전건설은 정책수립에서 부지 선정, 지방자치단체 협의와 주민 설득, 건설까지 수십 년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정권은 유한하지만 에너지 정책은 무한하다. 시민배심원단을 어찌 구성할 수 알 수 없지만 얼렁뚱땅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결국 키(Key)는 ‘국민 뜻’에 있다. 문 대통령이 장관 임명을 강행하고 시민배심원단의 결정으로 원전 건설을 재검토하겠다는 것은 ‘국민 뜻’ 때문이다. 야당과 일부 국민이 반대한다고 해도 국민이 원하기 때문에 강행하고 재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자칫 ‘여론정치’ 또는 ‘국민정치’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말 그런가? 국민 다수가 문 대통령의 주장에 동의하는가?

SNS 활용? 국정지지율 떨어지면 큰 위기

문 대통령은 광장 민주주의, 촛불혁명으로 당선됐다. 당연히 고도의 공공성과 청렴성이 요구된다, 실질적 민주주의의 진전도 기대된다. 그래서 5대 비리 인사 배제 원칙도 논란이 되는 것이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20석 남짓 차지한다. 여소야대 정부다. 문 대통령은 대선에서 협치를 목이 쉬도록 부르짖었다. 그래서 협치는 옵션이 아닐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평범한 대통령, 평범한 정권이 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흠결 있는 인사를 내정해 놓고 반대하는 야당을 되레 힐난한다. 청와대 관계자의 청문회 무용론은 진보의 독선을 넘어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온갖 절차를 생략한 시민배원단에 이르면 정부 무용론마저 생각날 지경이다.

문 대통령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정지지율은 80% 전후를 오간다. 그러나 80%에는 함정이 있다. 출범한 지 두 달된 정부가 도대체 무엇을 잘했을까. 장관을 임명하고 정책을 재검토하는 수준이다. 80%에는 잘할 것이라는 기대가 담겨있을 뿐이다.(이하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www.nesdc.go.kr 참조)

어느 정부나 초기에는 인사가 거의 국정의 전부다. 지난 30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국정 부정평가 이유로 ‘인사 문제’라는 응답이 42%나 됐다. 여론조사는 노출 빈도를 순간 포착하는 기능도 있다. 특히 전화면접조사, 무선ARS조사는 노출 빈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새 대통령 취임 초기에는 긍정적인 뉴스가 쏟아진다. 언론은 시시각각 대통령 동정과 긍정적인 면을 클로즈업한다. 이런 시기에 이루어지는 여론조사는 국민의 기대치를 한껏 끌어올리기 마련이다.

문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국정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중요한 원인이다. SNS는 ‘댓글폭탄’으로 주요 쟁점 사안에 대해서 문 대통령을 지원하고 있다. 마치 SNS와 협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엄경영(시대정신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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