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기반 ‘전무’, 배신자 ‘낙인’, 20석 ‘턱걸이’... 자강론 ‘글쎄’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유승민 단짝’ 이혜훈 의원이 지난달 26일 36.9%의 득표율로 바른정당 신임 당 대표에 선출됐다. 2위는 33.1%를 얻은 하태경 의원이었다. 자유한국당과의 연대 내지 통합에 분명한 선을 그은 두 사람의 득표율을 합치면 70%에 이른다. 바른정당의 당심이 ‘연대’나 ‘통합’이 아닌 ‘자강’ 임이 확인된 셈이다. 당분간 이 대표가 이끄는 바른정당이 한국당과는 거리를 두고, 정부 여당과는 다소 가까워지는 ‘포지셔닝’을 취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작은 당세와 뚜렷하지 않은 지지기반은 여전히 바른정당의 한계로 지적된다. 더욱이 이들은 원내교섭단체 최소 의석인 20석에 겨우 ‘턱걸이’ 중이다. 단 한 명의 이탈자라도 발생한다면 그 즉시 원내교섭단체의 지위를 잃고 만다. 이 대표로서는 자유한국당과의 보수 적자 경쟁뿐만 아니라 당의 양대 주주인 김무성 의원 측까지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그런데 이미 정치권 일각에선 바른정당 이종구 의원의 추가 탈당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막 출항한 이혜훈 호가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처지에 놓여 있다는 진단이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洪 ‘불명예 사퇴’ 앞당긴 이혜훈, “사무부총장까지 시켜줬는데…”
- 한국당, 이종구 의원 탈당 가능성 점쳐… 전대 후 ‘시너지 효과’ 노린다


바른정당 2기 지도부가 출범하자마자 자유한국당과의 보수 주도권 다툼을 선언했다. 친유승민계이자 당내 대표적인 자강론자인 이혜훈 신임 대표는 당선되자마자 자유한국당을 ‘낡은 보수’로 규정하며 대립각을 세웠다. 특히 자유한국당의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에 대한 견제구를 날리는 동시에 차별화한 보수 전략으로 당세를 확장할 것을 천명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6일 당선 직후 수락연설에서 “낡은 보수와의 (지지율) 골든 크로스가 바로 코앞”이라며 “국민이 납득하기 힘든 막말과 막장 정치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겠다”고 홍 전 지사에 날을 세웠다.

2011년, 이혜훈 劉에 ‘사퇴 제안’
洪과의 ‘악연’ 시작


홍 전 지사와 이 대표는 ‘물과 기름’과 같은 사이다. 이 둘의 악연은 지난 2011년 홍준표 전 지사가 한나라당 당 대표직을 내려놓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당시 홍 전 지사는 당 의원총회 자리에서 지도부 사퇴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논의 끝에 최종적으로 대표직 ‘유지’에 무게가 실렸었다.

그러나 당시 제1사무부총장이었던 이혜훈 대표는 유승민 당시 최고위원에 선도 사퇴를 제안했고 유 의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유 의원의 사퇴는 흔들리던 지도부에 첫 균열을 일으켰고 결국 홍 전 지사가 당 대표직에서 ‘불명예 퇴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야기하고 말았다.

이후 이혜훈 대표와 홍 전 지사는 정치권의 대표적인 앙숙이 됐다. 더욱이 이 대표를 제1사무부총장에 임명한 것이 홍 전 지사였다는 점에서 홍 전 지사가 이 대표에게 느끼는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전언이다. 

이로써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두 보수 정당이 어쩔 수 없이 통합 또는 연대를 할 것이라는 정치권의 예상도 바른정당이 이혜훈 대표 체제로 있는 한은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바른정당은 ‘자강론’을 통해 안으로 지지율을 끌어 모으고 밖으로는 내년 지방선거를 위해 자유한국당과 보수 주도권을 놓고 다툼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낮은 지지율의 원인을 한국당과의 차별화 실패로 보는 지도부 입장에서는 앞으로 차별화된 보수에 무게를 둔 행보를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바른정당이 한·미 정상회담에 응원을 보내고, 여권 성향의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을 공개 칭찬하더니 추경에 대한 전향적인 모습을 보인 것 역시 자유한국당과 차별화하겠다는 정치 실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보수 정당인 바른정당이 한국당과 현안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낸다면 국민의당도 바른정당과 같은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충격적인 제보 조작 사건에 휘말린 국민의당 입장에서는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계속 각을 세우기가 곤란한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여당 입장에서도 한국당보다 ‘상대적’으로 대화가 통하는 바른정당은 국정 파트너로서 매력적인 대상이다.

한국당 내 한 관계자는 “바른정당을 지렛대로 활용하면서 국민의당, 한국당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기 때문에 여권은 이 대표가 내민 카드를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가 이처럼 ‘우호적’ 대여관계 조성에 무게를 둔 것은 당이 처한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 지지도 80%를 웃도는 상태에서, 대치 구도에만 몰두할 경우 뚜렷한 지역 기반이 없는 바른정당 입장에선 한 자릿수 지지율을 극복하긴 더 어려울 것이라는 당 안팎의 우려가 있다.

야당으로서의 ‘선명성’이냐,
한국당과의 ‘차별화’냐


다만 바른정당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국당과 보수 적자 경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방적으로 민주당 편만 서길 기대하긴 무리라는 지적도 공존한다. 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을 보이기 위한 선명성 강화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보수 정당을 표방하는 바른정당으로서는 당장 주요 현안으로 떠오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DD) 등 주요 안보이슈에 대해 한국당과 마찬가지로 정부여당과 대립각을 세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도 한국당과 달리 뚜렷한 지역기반이 없는 바른정당의 지지율이 반등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은 현실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역기반이 없는 정당은 절대 클 수가 없다”며 “호남 민심을 얻지 못한 국민의당과 TK 민심을 얻지 못한 바른정당이 설 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보수의 심장’ TK에서 바른정당 특히 유승민 의원은 ‘배신자’로 낙인 찍힌 지 오래다”라며 “그런 유승민 의원의 최측근이 이혜훈 대표다. 이 둘은 ‘원박(元朴·원조 친박)’이었다가 ‘탈박(脫朴·친박에서 이탈)’으로 분류되더니 이젠 둘 다 ‘배신의 아이콘’이 됐다. 절대 TK에서 이들의 지지율이 오를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지역기반이 전무한 바른정당은 현재 ‘미니 정당’의 한계를 여실히 체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인사청문회 정국에 이어 일자리 추경과 정부 조직개편안을 두고 국회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지만 1·2당 혹은 ‘캐스팅 보트’ 역할도 갖지 못한 바른정당의 목소리는 영향력이 미비하다.

설상가상으로 이 같은 외부 상황을 제쳐두고라도 당장 이혜훈 호의 여정이 순풍을 타려면 당 소속 의원 20명 중 단 한 사람도 이탈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따라붙는다. 원내 교섭단체 20석에 ‘턱걸이’ 하고 있는 ‘현실의 벽’ 앞에 마주해 있는 바른정당이다.

한 사람이라도 여당에 가까운 스탠스를 반대하는 의원들이 생긴다면 곧바로 교섭단체의 지위가 무너지게 된다. ‘한 사람’의 이탈이 곧바로 당의 ‘공멸’로 이어지는 풍전등화의 처지에 놓인 실정이다. 이 신임 대표로서는 당의 양대 주주인 김무성 의원 측까지 함께 아우르고 가야 하는 큰 ‘숙제’도 풀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당 내 불협화음은 이미 시작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바른정당 내에서 일부 의원들이 추가 탈당을 조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당 일각에 따르면 이종구 바른정당 의원이 최근 옛 바른정당 탈당파와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의 7·3 전당대회가 치러진 시점에 만약 보수 적자 경쟁을 벌이고 있는 바른정당에서 추가 탈당 의원이 생겨난다면 한국당이 얻는 ‘시너지 효과’는 기대 이상일 것으로 정치권은 평가한다.

‘다자 구도=보수 필패’ 등식,
지방선거에도 유효


한편 바른정당이 ‘자강론’을 계속해서 고집한다면 1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는 진보 진영 단일후보와 보수 진영 복수 후보 구도로 치러질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보수 진영에선 1년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의 필승 전략 중 하나로 보수 양당의 연대 내지는 통합을 통한 ‘보수 후보 단일화’를 꼽고 있다.

현재의 흐름으로 볼 때 국민의당 ‘조작 파문’은 진보 양당 간 통합의 불쏘시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졌다. 반면 이혜훈 체제 하에서 보수 양당은 ‘합당’ 또는 ‘연대’ 가능성이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대선에서와 마찬가지로 보수가 분열돼서 지방선거를 치를 것으로 보인다. ‘다자 구도=보수 필패’라는 공식이 대선에 이어 지방선거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지적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수 지지층에선 바른정당이 자유한국당과 함께하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다. 기자가 만난 자칭 보수 지지자라는 한 시민은 “안철수의 등장으로 진보 진영이 분열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안철수와 국민의당으로 인해 보수 진영이 철저히 분열되는 꼴이 됐다”며 “국민의당이 내홍에 휩싸인 바로 지금 보수가 통합한다면 시너지 효과는 대단할 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개혁 드라이브가 날로 강해지는 시점에 안 그래도 힘든 보수가 분열까지 해서야 되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준표 전 지사도 최근 “나는 바른정당을 별개의 정당으로 보지 않는다”며 “한국당에서 떨어져 나온 기생 정당인데 우리끼리 쇄신만 제대로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돌아올 것”이라고 ‘흡수 통합’에 방점을 뒀다.

이처럼 한국당의 새 지도부가 바른정당의 요구대로 이른바 ‘친박 패권’과 결별하고 강도 높은 쇄신을 이뤄 바른정당에 함께할 수 있는 명분을 준다면 바른정당 입장에서도 마냥 거부할 수는 없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자칫 분열된 상태로 지방선거를 치렀다 참패할 경우 ‘역풍’이 두려워서라도 통합 또는 연대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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