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등장한 단일팀 제안…현 정부 대선공약이자 화해 물꼬 기대
-북측 난색 뒤에 숨겨진 실력 차이와 정치적 갈등, 해법 찾기 어려워
문재인 대통령 장웅 북한 IOC위원과 악수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2018 평창동계올림픽이 7개월여 남은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단일팀 제안으로 체육계가 뒤숭숭하다. 과거 스포츠 행사가 남북 관계의 소통 창구로 작용했던 만큼 경직된 현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계기로 기대를 모으고 있지만 실현 가능성을 놓고 여전히 물음표를 남기고 있다. 또 단일팀이 성사되기까지 다각도의 입장 차를 줄이는 노력도 필요해 이번 제안이 태풍이 될지 잠시 소동으로 끝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4일 무주 WTF(세계태권도연맹)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 참석해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의 출전을 제안하며 사실상 남북단일팀 구성안을 내놨다.

이날 문 대통령은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참여한다면 인류 화합과 세계 평화 증진이라는 올림픽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바라건대 최초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최고의 성적을 거뒀던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대회의 영광을 다시 보고 싶다. 남북 선수단 동시 입장으로 세계인의 박수갈채를 받았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감동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 응원단도 참가해 남북 화해의 전기를 마련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제안은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강조해 온 공약으로 평창에 북한 선수단을 참가시켜 평화올림픽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이를 통해 남북 화합의 장으로 활용하겠다는 게 문 대통령의 의지다.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지만 여권을 중심으로는 남북 화해의 장이 될 수 있다는 데에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축사
    이날 정세균 국회의장 역시 축사를 통해 “이번 대회를 계기로 남북관계에도 물꼬가 트이리라 믿는다. 장 위원과 리 총재, 북한 선수단에 환영의 뜻을 전하며 비록 지금은 남북관계가 살얼음판이지만 여러분의 발걸음이 훗날 남북 긴장 완화와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날이 오리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지난 29일 방한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역시 환영의 뜻을 전했다. 그는 제23회 동계올림픽 남복 단일팀이 구성되면 북한 선수가 출전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전했다.

바흐 위원장은 이날 인천공항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24일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막식에서의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은 평화를 추구하는 올림픽 정신에 부합한다. 곧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남북 단일팀 구성과 관련한 협의를 진행할 것”이라며 “IOC 차원에서 이미 북한올림픽위원회(NOC)에 평창올림픽 참가를 권유하고 종목별 와일드카드 제도 등을 활용해 북한 선수들이 올림픽 출전 자격을 갖출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는 의사를 전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그간의 IOC의 행보에서 찾아볼 수 있다. IOC는 원칙적으로 분단국가의 단일팀 구성을 지지하고 권장해 왔다. 앞서 분단 독일의 사례에서도 동·서독은 1956년 이래로 총 6번의 단일팀을 꾸렸고 이 과정에서 IOC는 단 한 번도 반대한 적이 없다.

하지만 이 같은 제안에 대해 북 측은 수용하기 힘들다는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바흐 위원장과 만난 장웅(북한) IOC 위원은 올림픽 남북 단일팀은 현실적으로 대단히 어렵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 위원은 “바흐 위원장이 단일팀 제안을 북측에 전했다고 했는데 내가 받은 것이 아니며 그건 NOC 소관이다. 양측 NOC가 문제를 푸는 게 쉽지가 않다”고 답했다. 특히 그는 과거 남북 단일팀 구성 협상에는 2년이 소요됐지만 현재 남북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고 전제하며 와일드카드 제도에 대해서도 “가정에 불과하다. 실질적으로 가능한 것만 말하자”고 선을 그었다.

특히 장 위원은 “의지와 실행은 다르다”며 부정적인 의견을 고수했다.
 
합의 못한 입장 차,
현실 문제에 발목

 
이번 안을 놓고 여러 입장차가 교차하면서 단일팀 합의까지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더욱이 단일팀을 구성하기까지는 양측의 합의 외에도 현실적인 어려움이 남아 있다.

우선 평창동계올림픽에 동시 입장, 공동 응원단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에 한 명이라도 출전할 수 있는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은 아직 올림픽 출전권을 단 1장도 확보하지 못했다. 그나마 지난 2월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딴 피겨스케이팅 페어 종목(렴대옥-김주식 조·세계 29위)이 희망적이지만 그 외 종목에서는 국제수준에 따라가지 못하는 북한의 실력이 발목을 잡고 있다.
장웅 북한 IOC 위원
    이 때문에 여자 아이스하키가 단일팀 구성에 수월한 종목으로 언급되고 있다. 여자 아이스하키의 경우 한국은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권을 획득해 IOC와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의 승인과 출전국들의 동의가 이뤄진다면 북한 선수들을 포함시켜 단일팀 구성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대표팀 선수구성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또 분산 개최 제안도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앞서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을 비롯해 북한 마식령 스키장을 올림픽 경기장으로 활용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2014년 개장한 마식령 스키장은 IOC가 요구하는 눈두께(1m20cm), 표고차(800m ), 설질 등의 요건을 충족할지 점검해야 한다. 또 통상 올림픽 경기장은 최소 1년 전 테스트 이벤트를 열고 시설 점검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경기장의 활용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1월 개장한 정선 알파인 스키장 등 평창 올림픽 코스는 이미 테스트 이벤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상태다. 이에 마식령 스키장을 훈련장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거론되고는 있지만 김정은 정권 체제 선전으로 이용되는 마식령 스키장을 전 세계에 홍보하는 기회를 주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뿐만 아니라 외국 선수들의 안전이 보장될지에 의문을 주고 있는 북한에서 경기를 치러야 한다면 참가국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정치적 희생 강요받는
선수단 흔들


 
이 같은 절차상의 문제를 떠나서 단일팀이 추진 경우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는 혹평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제안으로 당장 해당 종목의 협회와 선수들의 반응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한국 대표팀 입장에서는 이미 짜놓은 해외 전지훈련 스케줄 등 평창 올림픽 로드맵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부담이 발생한다. 또 선수들이 가질 박탈감에 대해 우려를 내놓고 있다. 단일팀 구성을 위해서는 몇몇 선수들이 올림픽 꿈을 접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 정책 때문에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모양새가 된다.
한국 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
    실제 여자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자아이스하키팀을 이끌고 있는 새러 머리 감독(캐나다)은 당초 8월 프랑스(세계 12위), 스위스(세계 6위)와의 국내 평가전에 이어 9월 미국 전지훈련을 통해 대표팀의 경기력을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북단일팀이 변수로 등장하면서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 관계자는 “협회도 뉴스를 통해 남북단일팀과 관련된 내용을 접했을 뿐이다. 정부 차원에서 어떻게 준비하라는 지침이나 명령, 문의도 없는 상황”이라며 난간함 표정을 지었다. 선수들 사이에서는 불만과 불평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에는 여자아이스하키 대학팀이나 실업팀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선수들은 짧게는 3년, 길게는 10년 넘게 하루 6만 원의 국가대표 훈련 수당만을 받으며 올림픽 출전을 위해 버텨왔다. 더욱이 주말엔 수당이 없기에 한 달에 고작 100만 원 정도 받을 뿐이다.

오직 선수들은 올림픽 무대 오르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을 만큼 간절한 상황에서 북한 선수들의 무임승차가 이뤄질 경우 후유증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역대 남북 단일팀은 남북 선수를 비슷한 숫자로 나눠 구성한 전례가 있다. 이럴 경우 23명의 엔트리에서 절반에 가까운 11~12명의 선수가 자리를 내줘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이를 수 있다.

또 현재 아이스하키팀에는 이번 올림픽에서 뛰기 위해 한국인으로 귀화한 선수들도 있다. 이 때문에 23명의 엔트리를 확대하는 방안도 나오지만 IOC와 IIHF가 출전국들 간의 형평성 문제로 인해 승인에 난색을 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여기에 확대가 되도 경기에는 22명만이 출전해야 해 일부 선수들의 출전이 불발될 수 있다.

단일팀의 최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남북이 합쳤을 경우 경기력이 크게 떨어질 수 있어 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북한은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10위권을 유지했으나 최근 경제 사정이 나빠져 훈련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어 세계 25위권으로 추락한 지 오래다.

반면 한국은 지난 4월 세계 4부 리그에서 3부 리그(디비전1B)로 승격했고 북한을 상대로 4전 4패를 기록하다가 최근 2경기 모두 이기면서 실력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결국 단일팀을 만들 경우 코칭스태프 구성을 비롯해 훈련 장소 선정 문제, 선수들 간의 호흡 등으로 인해 팀 조직력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우려다.

대표팀 공격수 한수진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선수들이 평창만 바라보고 6~8년 동안 준비했는데 전력 강화도 아닌 정치적 이유로 단일팀을 추진한다니 화가 나고 안타깝다”고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공 넘긴 청와대,
IOC 눈치보기 급급


 
결국 남북단일팀을 강행하기에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북측이 합의한다면 동시 입장·공동응원단 선에서 실현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남북은 2000년 시드니 하계올림픽을 시작으로 2007 장춘 동계아시안게임까지 총 9차례 국제대회 개막식에 동시 입장한 전례가 있다. 

청와대도 장 위원이 단일화 제안에 난색을 표했고 곳곳에서 우려가 쏟아지자 선수단 동시 입장 정도로 선회할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대통령은) 과거 우리가 (남북)단일팀을 이뤘을 때 좋은 성과를 거둔 정도에 대한 기대를 표한 것이고 실제적으로 여러 단계와 난관이 있는 것 아니겠나”라며 “IOC 측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 결심하고 결단할 문제도 있어 저희가 희망은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저희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동시 입장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북한 선수들의 출전이 전제돼야 한다. 출전권이 없는 상황에서 IOC 차원의 와일드카드 제도를 적용할 경우 특별초정선수 명목으로 북한 선수들의 출전을 보장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북한 선수들의 성적을 고려할 때 극히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나와 IOC와 국제 종목 단체들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남북단일팀은 최근 악화된 남북관계의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기회임은 틀림없다. 또 아직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냉랭한 국민들의 관심과 세계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시의적절한 요소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같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넘어야할 과제가 산적하고 그 이면에는 정치적 판단으로 인해 선수들의 의도치 않은 희생이 강요된다는 점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2018 평창올림픽 강릉 스피드스케이트경기장
   한 체육계 관계자는 지난 25일 “단일팀 구성은 체육계와도 긴밀한 협의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아직 아무 얘기도 듣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는 더 세밀한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1991년 탁구와 축구의 선수권 단일팀이 꾸려졌고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시 입장이 이뤄진 것은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닌 정치적인 맥락이 있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당시 1991년에는 곧바로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됐고 2000년에는 남북정상회담 직후, 2004년에는 개성공단 시범 운영, 2007년에도 정상회담이 있었던 만큼 남북관계가 좋아진 뒤 진행됐다는 점에서 지금과는 또 다른 상황임을 참고해야 한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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