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발신자 고발하고 TF팀 구성…‘문자폭탄’ 대상에 여야 구분 없어져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최근 ‘문자폭탄’ 현상이 심화되면서 정치권이 뜨겁다. 지난달 22일 자유한국당은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153건의 ‘문자폭탄’을 보낸 발신번호 44개를 추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협박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국민의당도 ‘문자폭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발송자를 처벌하는 별도의 입법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정치적 호오가 담긴 대량 문자 메시지를 두고 한 진영에서는 ‘폭탄’이라 부르고 다른 진영에서는 ‘국민들의 정치참여’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정치적 의사 표현”이라는 여권의 주장과 “정당한 의정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야권의 항의로 여야 공방이 치열하다.
 
 
‘문자폭탄’은 지난해 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의 국회 표결을 앞두고 일부 의원들의 번호가 한 인터넷 사이트에 집단 공개되면서 시작됐다.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가 열렸던 당시엔 시민의 문자 메시지가 국민이 직접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등장으로 여겨진 바 있다.
 
친문 계열의
조직적인 행동?

 
그러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문자폭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수많은 문자를 받은 야당 의원들이 이는 명백한 ‘문자폭탄 테러’라며 문재인 대통령의 일부 지지층으로부터 조직적인 문자를 받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가 시작이었다. 청문회 과정에서 후보자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야당 의원들이 주로 많은 문자 세례를 받았다.

밀려드는 문자 메시지에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는 착신을 정지했고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과 정우택 자유한국당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번호를 바꾸기도 했다.

특히 이낙연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 아들의 병역 특혜 의혹을 제기한 경대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당신 아들도 군대 안 가지 않았느냐’는 문자 세례를 받고 이를 공개 해명하기도 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청문회에서 세금 탈루 의혹을 제기했던 정태옥 자유한국당 의원 역시 “엄청난 ‘문자폭탄’을 받고 있다. 자료 확인은 제대로 하고 질문하는 거냐는 내용이 상당수”라고 밝힌 바 있다.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허위 혼인신고 판결문을 공개한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은 “안 전 후보자 판결문을 공개한 후 ‘문자폭탄’이 폭주해 전화기를 쓸 수가 없다”며 “단순히 인신공격이 아니라 신변 위협, 욕설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악성 문자메시지를 1만 통 가량 받았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문자 세례 대상에 여야 구분이 없어졌다.

이미 정의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심상정 상임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을 TV 토론회에서 비판한 후 ‘문자폭탄’과 항의 전화를 받아 곤욕을 치렀던 바 있다. 민주당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민주당 내부에서도 ‘문자폭탄’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다.

6월 22일 백혜련 의원을 비롯한 몇몇 여성 의원이 청와대에 탁현민 행정관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전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무실에 항의 전화가 빗발쳤고 비난 내용의 문자가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민주당 대변인으로 의견 전달을 주도한 백혜련 의원에게 집중적인 항의가 들어왔다.
 
김인원 변호사
“문자행동 개념은 궤변”

 
이에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이 자신에게 문자를 보낸 발신자의 실명을 적어 답장을 보내자 다른 발신자가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게 사실이냐”, “내 이름은 뭐 같나”는 식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민 의원은 “놀랍나? 문자 폭탄 보내는데 1초도 안 돼서 이름을 맞추는 게?”라는 내용의 답장을 보냈다고 한다. 민 의원은 “지금은 익명성의 세상에 숨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이는 민간인 사찰이 아니라 앱을 이용한 것”이라고 답했다.

국민의당은 가족에 대한 협박, 표현의 자유를 넘어선 문자 등의 이유로 지난 5월, 문자피해대책 테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소속 의원들에 대한 ‘문자폭탄’에 대해 법적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김인원 변호사(전 서울북부지검 형사부장)가 TF단장을 맡았다.

김 단장은 “이런 문자에 대해서는 디지털 홍위병이 보내는 SNS 테러단체라고 본다. 모택동 시절에 홍위병들이 자신들의 이념과 반대되는 지식인들에 대해 얼마나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가했는지 다 알 것”이라며 “민주당에서 이번에 새로 들여온 ‘문자행동’이라는 개념은 궤변에 불과하고 실제로는 문자 폭력”이라는 생각을 나타냈다.

그러나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6월 26일 일부 친문(친문재인) 계열·클럽 등의 ‘문자폭탄’에 대해 ‘국민들의 의사표현’이라고 옹호하고 나섰다. 표 의원은 이날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문자폭탄’은) 대의민주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국민들의 의사표현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욕설, 협박 등은 결코 권장돼서도 안 되고 허용돼서도 안 된다”면서도 자유한국당이 ‘문자폭탄’ 발신자들을 고발조치한 것에 대해 “주인으로 모셔야 할 국민들께서 다소간의 불만과 분노를 노출했다고 형사고발한다는 것은 정치적 선택으로 최악”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문자 보낸 국민 고소 등 법적 조치한다면 저도 제게 욕설 협박문자 보낸 자유한국당 당원 및 지지자들에게 동일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6월 28일 여야 의원이 한자리에 모일 예정이었던 표현의 자유 관련 토론회도 돌연 무산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의 불참으로 취소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 지지세력에 각을 세우는 데 부담을 느낀 조치가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자칫 잘못하면 새 정부 ‘발목 잡기’로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태규 국민의당 사무총장은 6월 25일 “요즘 ‘문자폭탄’ 관련 여론이 민감한 상황에서 주최 의도가 왜곡되고 정쟁 문제가 비화할 가능성이 있어 토론회를 연기하자는 의견이 나와 6월 23일 토론회를 미루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정치인에게 직접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행위에 대해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치 참여는 정치를 발전시키고 공감대를 높이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며 상대방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폭력에 불과하다”며 “합리적이고 건강한 사유체계를 뒤흔드는 ‘문자폭탄’은 지양돼야 할 정치문화의 폐단”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를 넘은 ‘문자폭탄’은 인사 검증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의 정상적인 의정 활동을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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