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대미문’ 역대급 조작 사건… 국민의당 ‘먹구름’ 민주당 ‘화창’

고개 숙이는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 <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국민의당이 창당된 지 2년도 안 돼 ‘폐당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 대선 당시 집중 공세를 펼쳤던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 씨의 취업 특혜 의혹 관련 증언이 조작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새 정치’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역대급 조작 사건이 터지자 호남을 중심으로 당 붕괴 조짐도 포착된다.

게다가 조작 사실을 주도했던 핵심 당사자가 안철수 전 대표의 최측근으로 밝혀지면서 당 ‘창업주’인 안 전 대표가 치명상을 입었다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검찰 수사에서 ‘윗선’ 개입이 드러날 경우 당의 공중분해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文대통령 아들 준용 씨 취업 특혜 의혹 근거 자료 ‘조작’ 실토
비난 여론 빗발, 민주당 “대선 공작 게이트”…국민의당 폐당 위기
호남 지역 중심으로 당 와해 조짐…정계 개편 촉발
국민의당, 원심력 커져 고심…민주당 몸집 불리기 호재

 
국민의당 박주선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26일 조작 사실에 대해 ‘선제 사과’를 했다. 그는 국민의당이 대선 사흘 전인 5월 5일 준용 씨의 미국 파슨스 디자인스쿨 재학 시절 동료의 증언을 근거로 취업 특혜 의혹을 제기했지만, 당시 당에 제보된 모바일 메신저 화면과 녹음파일이 조작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실토했다. 없는 사실을 직접 꾸며 자체 조작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충격을 던졌다.
 
꼬리를 무는 의혹
李→李→朴→安?

 
사과 발표 이후 당 관계자들의 일련의 행동과 연이어 드러난 사실들은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대선 당시 공명선거추진단장을 맡았던 이용주 의원이 지난달 28일 사건 핵심 당사자인 이유미 씨와 이준서 전 최고위원 간의 모바일 메신저 대화 내용(4월22일~5월6일까지)을 공개하면서 이유미 씨의 단독 범행임을 주장했으나, 최근 이들이 주고받은 내용이 새롭게 밝혀져 관련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공개된 대화(5월8일)에서 이 씨는 이 전 최고위원에게 “사실대로 모든 걸 말하면 국민의당은 망하는 거라고 하셔서 아무 말도 못하겠어요”, “지금이라도 밝히고 사과드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백번도 넘게 생각하는데 안 된다 하시니 미치겠어요”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조작 사실을 이 씨가 자백한 이후인 지난달 24일 처음 알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으나, 이 대화 내용에 비춰보면 본인의 주장보다 조작 사실을 먼저 알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게다가 처음 국민의당이 대화 내용을 밝힐 때 이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5월 7일 이후의 대화는 불리한 내용이어서 고의로 뺀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 전 최고위원은 또 조작된 음성 파일이 폭로되기 4일 전인 5월 1일 박지원 전 대표에게 이를 보내고 조언을 구하려 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 전 최고위원은 박 전 대표에게 메신저 대화 캡쳐 화면을 전송한 뒤 ‘박지원 대표님 어떻게 하면 좀 더 이슈를 만들 수 있을까요?’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자신이 쓰던 휴대전화를 바꾸고 기존의 휴대전화는 자신의 보좌관에게 맡겨 메시지를 못 봤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이 전 최고위원이 조작 사실이 알려지기 이틀 전인 지난달 24일 안철수 전 대표를 독대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국민의당은 조작 파문에 대해 이유미 씨 단독범행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이와 같은 사실이 새롭게 드러나면서 당 윗선이 조작에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시선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사과 발표 이후 취업 특혜 의혹에 대해 별도의 특검이 필요하다는 박지원 전 대표와 김동철 원내대표의 주장은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지적이다. 당내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놓고 “물타기”라며 쓴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게다가 조작 파문 초기 국민의당은 이유미 씨를 평범한 당원이나 자원봉사자라는 식으로 언급해 빈축을 샀다. 이 씨가 안철수 전 대표의 최측근인 점을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지점이다. 더욱이 대선 최고 책임자인 안 전 대표가 30일 현재까지 침묵을 이어가는 것도 여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당 도덕성 ‘치명타’
탈당 러시 이어져

 
윗선의 개입 여부는 검찰 수사에 따라 밝혀지겠지만 ▲당 차원에서 자체 제작한 조작으로 ▲민감한 시기에 ▲검증 없이 무차별 공세를 펼쳤다는 점에서 국민의당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혔다는 평가다. 최창렬 용인대 정치학부 교수는 “국민의당이 향후 당의 동력을 제대로 끌고 갈 수 있을까 의문”이라면서 국민의당의 미래를 어둡게 내다봤다. 국민의당 혁신위원회 역시 현재의 상황을 당의 신뢰 문제를 넘어선 ‘존폐 위기’라고 진단했다.
 
실제 조작 파문 이후 당의 하부에서부터 붕괴 조짐이 보이는 상황이다. 특히 원외지역장 중심으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만큼 이들에겐 이번 조작 파문이 대형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광주·전남 등 호남 지역 기초의원과 당원들도 국민의당을 탈당해 무소속 유지 또는 탈당 후 민주당 복당을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인 숫자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조작 파문으로 실망한 당원들의 ‘탈당 러시’가 광주시당과 전남도당에 이어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당 홈페이지 내 소통 창구인 ‘국민광장’에도 시민들의 분노가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30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의 지지율은 원내 5당 중 꼴찌를 기록했다.
 
정계 개편 시동
민주당, 야권 흡수하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작 파문이 정계 개편의 단초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국민의당의 원내 당력(黨力)이 현저하게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여당에 각을 세울 수 있는 명분과 동력을 상실함에 따라 국민의당은 정부여당의 입장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사실상 준(準)여당의 포지션으로 내몰린 국민의당의 협조를 기대할 수 있어 향후 국정 운영에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 의석이 120석에 불과해 그간 야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지만 이번 사태로 수월한 여당 운영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조작 파문 사태가 엄중하면서도 민주당 입장에선 호재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최근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조작 파문에 대해 “국민의당 지도부와 대변인단이 총동원돼 조직적으로 사건에 개입했다”고 주장하는 등 국민의당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였다. 이에 대해 박주선 비대위원장은 “민주당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정략적으로 국민의당 죽이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고 맞받아치며 조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장기적으로 조작 파문은 정계 개편의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국민의당은 안철수계를 비롯해 호남계, 동교동계가 섞여 있어 종종 극심한 계파 갈등을 겪어 왔다. 대선 직후에는 서로 다른 계파에서 민주당과 바른정당과의 통합론이 나와 홍역을 치렀다. 지방선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호남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민주당과의 선거 연대나 통합론이 다시 터져 나올 수도 있다.
 
검찰 수사 ‘촉각’
安, 길어지는 침묵

 
민주당은 조작 파문을 ‘국민의당 대선 공작 게이트’로 규정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특혜 채용 의혹으로 공세에 시달렸던 만큼 사건의 실체 규명을 촉구하는 한편, 상대의 칼날을 꺾고 다시 호남 중심의 전통적 야권 세력을 흡수하려는 양수겸장 의도로 해석된다.
 
반면 존폐 위기에 직면한 국민의당은 당분간 낮은 자세를 취하며 사태 추이를 지켜볼 태세다. 당장 윗선을 향하고 있는 검찰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와 별도로 당 진상조사단 조사와 당 혁신위를 통해 나락으로 떨어진 당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런 가운데 조작 파문으로 ‘안철수 책임론’이 커지면서 이제는 ‘국민의당=안철수당’이라는 굴레는 벗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문병호 전 최고위원은 BBS라디오에 출연해 “국민의당은 깨끗한 정치, 새로운 정치를 내세운 정당이다. 그런 사람들이 (제보 조작을) 했다는 게 더 믿을 수 없다”면서 “다시 당의 뼈대를 바꾸고 환골탈태하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참신한 사람이 당 대표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라고 밝혔다. 그간 제기됐던 ‘사당화’ 비판에서 탈피해 당을 새롭게 이끌 참신한 인물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김태일 국민의당 혁신위원장은 침묵을 이어가고 있는 안철수 전 대표가 사과를 포함하는 입장 표명을 서두를 것을 촉구했다. 그는 tbs라디오에 나와 “현재 이 문제 때문에 국민의당이 거의 와해 상태라고 할 정도로 혼란 속에 있지 않나. 그러면 자신을 서포트해 줬던, 또 자신을 위해 뛰었던 집단과 세력에 대해 본인이, 장수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안 전 대표 측이) 법적 문제가 좀 정리되는 것을 봐 가면서 하겠다는 것이 이해는 간다. 불확실하니까 도대체 어디까지 얘기해야 될지, 무슨 얘기를 해 놨다가 일이 뒤집어지고 더 큰 의혹이 생겨날지 이런 것들이 걱정일 것”이라면서도 “저는 최고지도자는 그런 걱정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안 전 대표는 당초 이유미 씨의 구속(29일) 이후 입장 표명을 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지난달 30일 안 전 대표 측에 따르면 이날까지 별도의 입장 표명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 전 대표 측 관계자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안 전 대표는 이번 사건을 매우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면서도 “오늘 입장 표명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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