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시민의 필수품 ‘자동차’ 얽힌 기막힌 사연

신용등급 낮으면 고금리 불구하고 대부업자 의존 
압류한 차를 되팔아도 원금 못 미치면 소송 당해


미국의 대형 할인점 체인 월마트는 미국 전역에서 매장 4만7000여 곳을 운영 중이며 종업원은 100만 명이 넘는다. 미국의 광대한 국토 면적은 대한민국의 약 100배다. 드넓은 미국 곳곳에 점포를 내고 영업하는 월마트는 미국 전체 인구의 90%가 월마트 매장으로부터 10마일(약 16㎞) 이내에 산다는 사실을 자랑삼아 내세운다. 이 홍보 문구를 뒤집으면 월마트 점포에서 최장 16㎞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도 월마트를 이용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16㎞는 꽤 먼 거리다. 경상남도 창원시의 13.8km 간선도로는 동양에서 가장 긴 직선도로인데, 이 길을 자동차로 달려보면 끝에서 끝까지 주파하는 데 꽤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16㎞는 생활인이 오가기에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영화 속에서 미국 사람들이 장 보러 갈 때나 자녀들을 등하교시킬 때나 거의 예외 없이 자동차를 사용하는 것은 미국 땅이 그만큼 넓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토가 광활한 미국에서 자동차는 시민의 필수품이다. 그런데 시민의 발인 자동차에 얽힌 기막힌 사연을 최근 뉴욕타임스(NYT) 신문이 전하고 있다. 고금리 할부를 끼고 중고차를 샀다가 할부금을 제때 못내 차를 빼앗겼고, 그 뒤 세월이 한참 흘렀는데도 여전히 할부금을 갚고 있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는 이야기다. 이 어찌 된 노릇인가?

1997년산 미쓰비시 승용차를 압류당한 지 10년이 넘었건만 이브트 해리스는 지금도 자동차 대출금을 갚고 있다. 그녀로서는 달리 선택할 방도가 없었다. 그녀에게 자동차 대금을 빌려준 대부업자가 그녀를 걸어 소송을 해서 이겼고 그 결과 그녀의 소득 중 일부를 차지할 권리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 대부업자는 지금까지 그녀의 봉급에서 4133달러(약 470만 원)를 차압해 갔다. 미국 뉴욕 시 브롱크스 구(區)에서 아들 둘을 혼자 키우며 사는 해리스는 그 바람에 한때 극도로 곤궁해져 공공지원에 의존하기도 했다. 

미국에 해리스 같은 사람, 즉 신용등급이 낮아서 이자가 매우 비싸고 수수료가 많이 붙는 것을 알면서도 자동차가 필요해 중고차를 사느라 서브프라임 자동차 대출을 받았다가 낭패를 보는 사람이 수백 만 명에 이른다고 NYT는 전한다. ‘서브프라임’이란 ‘대출 부적격’ 신용등급을 가리킨다. 2007년 12월 미국 주택시장 붕괴 사태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 바로 엄청나게 많았던 서브프라임 주택대출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서브프라임 자동차 대출이 미국 서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렇다면 대출금 갚기가 버거워 자동차를 넘기고 난 뒤에도 원래의 차 주인이 오랫동안 계속 대출금을 갚아나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돈을 제때 못 갚은 채무자에게서 자동차를 압류해 그것을 되팔아도 대출금을 전부 회수하지 못한 대부업자들이 못 다 받은 대출금을 받아 내려고 적극적으로 소송을 걸기 때문이다. 

중고차 판매상들과 손잡고 영업하는 대부업자들은 돈에 쪼들리는 미국인들에게 고금리 자동차 대출을 해 주고 엄청난 돈을 벌어 왔다. 이런 대부업자들의 배를 불려주며 최고 24%에 이르는 고금리 대출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앞에 설명했듯이 자동차 없이는 미국에서 출퇴근하기도, 장 보러 가기도, 심지어 의사를 만나러 가기도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낮고 손에 쥔 돈이 적은 서민은 새 차를 사거나 빌릴 수 없다. 

그래서 대출을 받아 중고차를 산다. 그런데 대출원금에다 대출금 이자와 수수료를 합치고, 구입한 중고차의 기계적 결함에 따른 수리비와 감가상각비를 보태면 결국 새 차를 사는 것보다 많은 돈이 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서브프라임 자동차 대부업자들은 신용도가 낮은 서브프라임 차주(借主) 겸 차주(車主)에게 선뜻 돈을 빌려준다. 나중에 대출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할 상황이 되면 일단 자동차부터 압류한 다음 미국 50개 주 가운데 46개 주의 판사들을 설득해 차주(借主)의 봉급을 차압하는 방식으로 남은 대출금을 마지막 한 푼까지 돌려받을 권리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가계대출 제도는 한국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예컨대 집값의 최고 90%까지 대출을 받아 집을 구입한 사람이 매월 갚게 돼 있는 대출 할부금을 감당하지 못해 집을 포기할 경우 설사 그 시점에 해당 집값이 대출 초기의 70%로까지 폭락해 은행 입장에서 그 집을 압류해도 남은 대출 원금을 건지지 못한다 하더라도 집 주인은 집만 은행에 넘겨주면 끝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이다. 주택담보대출이 잘못될 경우 그것에서 발생하는 손해는 집주인이 아니라 은행이 져야 한다는 것이 미국의 주택담보대출 관행이다. 그런데 자동차 대출의 경우에는 이런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대출을 받아 구입한 차를 타고 다니다 더 이상 대출을 감당할 형편이 아니어서 자동차를 대부업자에게 넘긴다고 하더라도 대부업자가 그 자동차를 재판매해서 얻는 대금이 대출 잔액에 못 미치면 대부업자는 빌려준 돈을 다 받아낼 때까지 채무자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수 있다. 

앞에서 소개한 이브트 해리스 씨처럼 차를 대부업자에게 넘기고도 계속 빚 독촉을 받았거나 지금도 받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이에 대한 전국 차원의 통계는 없다고 NYT는 말한다. 하지만 각 주(州)의 기록을 참조하면 미국 전역의 법원에 자동차 대부업자가 제기한 대출금 상환 촉구 소송이 봇물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미국의 대형 서브프라임 대부업체인 크레딧억셉턴스사(社)가 2010년 이래 뉴욕시 한 곳에서만 제기한 소송이 1만7000여 건이다. 이 회사가 고소한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은 나그함 자와드다. 

그는 아버지를 잃은 뒤 미국 뉴욕주 시러큐스로 건너간 이라크 난민이다. 2009년 미국에 정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와드는 5900달러를 대출받아 중고차를 샀다. 그런데 불과 몇 달 만에 10년 묵은 그 차의 트랜스미션이 망가졌다. 자동차 상태가 이토록 엉망이다 보니 자와드가 대출 할부금을 연체했는데도 대부업자가 자동차 압류를 서두르지 않았다고 한다. 심하게 낡은 중고차를 대출로 샀다가 나중에 이것저것 들어간 돈을 모두 합하면 신차 값을 능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만, 당장 신용이 낮은 데다 돈도 모자라 서브프라임 자동차 대출을 이용했다 낭패를 본 사례가 쌓이다 보면 이것이 언젠가 미국 경제에 큰 부담을 지우리라고 NYT는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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