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일기 시작한 가성비 트렌드가 여전히 국내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가성비 트렌드를 넘어서 가격파괴 업종도 많이 등장하고 있는 추세다. 두 마리 치킨이 치킨시장의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고, 무한리필 고깃집들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제품의 품질을 중시하는 새로운 트렌드도 감지되고 있다.

대중제품에 고객이 인정할 만한 충분한 가치가 더해진 상품과 서비스가 인기를 끄는 트렌드다.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차별화된 서비스로 합리적 가격에 판매한다는 콘셉트다. 가격 경쟁을 하는 대신 품질을 높여 고객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이 포인트다. 이는 점포의 수익성도 높이면서 고객 만족도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기술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창업시장 역시 이러한 소비 트렌드의 변화에 맞춰 신규 업종들이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다.

일본식 선술집인 이자카야는 이미 국내 소비자들의 폭 넓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음식점이다. 여전히 치킨호프가 대세를 이루고 있지만 일본식 주점 역시 꾸준히 주점 시장을 파고들어 그 수요층이 크게 확대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이자카야는 가격대가 높은 고급 이자카야와 가격대가 아주 낮은 퓨전식 이자카야로 양분돼 있었다. 그러다 보니 프랜차이즈로서 전국적인 브랜드로 자리를 잡은 이자카야 전문점은 별로 없었다.

고급 이자카야는 가격대가 높아서 대중화되기 힘들고, 퓨전식 이자카야는 메뉴와 인테리어의 차별화에 실패해 장기적으로 시장에 안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가격과 품질, 인테리어 등을 모두 만족시킨 브랜드가 없었던 것이다. 이미 일본식 주류 문화가 한국인의 주류 문화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현실에서 고객들은 여전히 더 만족스러운 이자카야 전문점을 갈망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이 열릴 수 있는 틈새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서울 교대 근처에 있는 이자카야 전문점 ‘이주사 목로청’은 바로 이러한 이자카야 트렌드를 잘 간파하고 등장했다. 메뉴의 품질은 높이고, 가격 거품을 빼 젊은 층 고객을 유인하고 있다. 이주사목록청은 가격 부담으로 특히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은 젊은 층을 유인하기 위해 메뉴의 최소 가격을 5900원부터 시작해 1만 원 이하 메뉴도 다양하고, 주 메뉴 가격대가 일반 호프집과 비슷한 1만5000~2만 원 내외에 판매한다. 대신 메뉴의 품질은 결코 고급 이자카야에 뒤지지 않게 높였다.

66㎡(약 30평) 규모에서 일평균 매출이 200만 원 넘을 정도로 연일 만원이다. 특히 여성 고객들이 많고, 실속형 소비를 즐기려는 40·50 중장년층도 많이 찾는다. 이주사목로청은 인테리어 컨셉트도 특징이 있다. 마치 일본의 번화가 거리에서 길거리 음식을 먹는 분위기를 연출했다. 일종의 스트리트 카페형 이자카야 전문점인 셈이다. 가격, 품질, 인테리어 등 점포의 성공요소를 모두 충족시키고 있는 것이다.
 
무한리필 돌풍
 
한우 등심 1등급 이상의 고기를 무한리필 하는 소고기 전문점이 서울 청담동에 등장해 돌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학동사거리에 있는 프리미엄 무한리필 소고기 전문점 ‘소도둑’이 그 주인공이다. 148㎡(약 45평) 규모의 매장에서 일평균 매출 600만 원 이상 올리고 있다. 지난 6월 중 일요일 매출이 750만 원까지 오르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처럼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큼 고객 반응이 좋은 것은 한우 등심 1등급 이상의 신선한 냉장육 소고기를 신선한 야채와 함께 일인당 1만9800원의 적절한 가격에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점이다. 한우 투뿔(1++) 등급과 동일한 등급에 해당하는 프라임급 미국산 블랙앵거스 토시살도 마음대로 즐길 수 있다.

소도둑은 신선한 생고기로 고품질을 유지하는 데 점포 운영 시스템을 맞췄다. 보통 무한리필 고깃집들이 채택하는 미리 준비된 고기를 고객이 직접 가져가는 컨셉 대신, 고객이 주문하면 바로 썰어주는 ‘고기바’ 시스템을 구축했다.

고기바에서는 생고기 포장 판매도 하면서 부가적인 수익도 많이 일어난다. 농장 직거래를 통해서 구매한 신선하고 다양한 야채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셀프바’도 준비돼 있다. 소고기의 제맛을 내기 위해 참숯불에 구워 먹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또한 소도둑은 인테리어 컨셉도 품격 있게 완성했다. 인테리어와 익스테리어 디자인 수준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창업시장의 성공 포인트다.

합리적 가격
 
서울 지하철 2호선 교대역 인근에 있는 캐주얼 다이닝 일식 전문점 ‘미타니야’도 가격과 품질을 모두 만족시키고 있다. 2007년 오픈한 이 점포는 현재 이 지역의 명소로 자리 잡을 정도로 장사가 잘된다. 특히 주말이나 휴일은 가족 외식 장소로 인기가 높아 사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를 잡기 힘들 정도다.

이 점포의 인기 요인은 특급 호텔급의 최고급 일식을 합리적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식자재는 가장 좋은 것만을 사용한다. 모든 사시미 재료와 기타 대부분의 식자재는 매일 아침 배송받아 당일 소진한다. 대신 소비자 가격은 특급호텔 대비 절반 이하로 저렴하다. 4인 가족이 저녁 외식으로 푸짐하게 먹어도 10만 원 정도면 된다. 특급 호텔 못지않은 맛과 품질로 호텔 식사로 치면 가격대가 20~30만 원을 훌쩍 넘는다고 보면 된다. 이 점포는 일시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아니라 10년간이나 줄곧 잘 되고 있어 프리미엄 고객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대표적인 점포다.

이처럼 가격과 품질을 모두 만족시키는 매장이 시장의 틈새를 비집고 속속 생겨나고 있다. 브랜드 유명세를 타는 소비자 중 많은 수는 결국 내실을 따지게 될 것이기 때문에 럭셔리 제품의 가격 거품을 뺀 합리적인 가격대, 즉 김난도 서울대 교수가 말한 B+프리미엄 브랜드를 선호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러한 점포들은 단순히 ‘싼맛’에 몰려오는 고객이 아니라, 저렴하지만 제대로 된 음식을 즐기고자 하는 자존심 강한 현대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어필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창업시장은 창업자도 고객도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는 느낌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