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알 턱이 없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경찰은 과거부터 용산참사, 세월호 참사 범국민대회 최루액 살포, 백남기 농민 사망 등의 사건으로 여론의 신랄한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새 정부는 ‘인권경찰’ 주문했고 경찰은 인권특별보좌관을 두거나 인권보호국 신설을 검토하겠다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권 조직 강화 방안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경찰은 그동안 내부에 인권 전담조직인 ‘인권센터’를 두고 약 12년간 운영했지만 조직 내 위상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데다 홍보 및 관리도 소홀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남영동 대공분실 개조해 만든 인권센터, ‘보여주기 식’ 시책?
경찰 내 인권센터 힘 없나···새 기구 도입 시 같은 일 반복 우려


서울 남영역 인근에 위치한 경찰청 인권센터(이하 인권센터) 청사는 1976년 지상 5층 규모로 신축돼 치안본부 대공과 대공분실로 사용된 곳이다. 건축가 김수근에 의해 건축됐으며 1983년 12월 지상 7층으로 증축되면서 현재와 같은 규모를 갖게 됐다.

이 곳은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사회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경찰은 당시 서울대학교 재학생이던 박 군의 사망 이유를 단순 쇼크사로 발표했으나 물고문과 전기고문의 심증을 굳히게 하는 부검의의 증언으로 사건 발생 5일 만에 물고문 사실을 공식 인정했다. 또 수사경관 조한경과 강진규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사건 진상의 일부가 공개되자 재야 단체들은 규탄성명을 발표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갔으며 각계 인사 9천 명으로 구성된 ‘박종철 군 국민추도회’ 등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조한경 등 5명의 경찰관은 징역 15년에서 5년까지 선고된 바 있다.

경찰은 지난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인권경찰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2005년 10월 당시 허준영 경찰청장은 고문 등 인권침해로 악명 높았던 남영동 대공분실에 인권센터를 설치했다.2005년 10월 4일에는 ‘1004! 인권경찰 선포식’을 개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권경찰 선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농민시위 진압 현장에서 농민 2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직접 사과했으며 허 전 청장은 옷을 벗게 됐다.

아울러 경찰은 인권탄압의 어두운 과거를 반성하자는 의미로 상당한 예산을 들여 인권센터를 설립했으나 청와대 코드에 맞춰 백화점식 방안을 나열하는 데 급급했다는 비판을 듣고 있다. 또 현 정부에서도 ‘인권경찰’ 슬로건이 보여주기 식 연출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한다.
 
경찰청 인권센터 홈페이지
  홈페이지 ‘폐쇄’
 
경찰에 따르면 지난 2005년부터 인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인권센터는 경찰 내부의 인권 정책 수립, 인권 관련 관계법령 정비, 경찰관 인권교육, 인권침해 관련 조사 활동, 시민 대상 홍보활동 등 인권보호 업무를 하고 있다.

 
5층 (구)조사실
   또 경찰은 대공분실을 개조해 사무실로 사용했으며 1‧4‧5층을 ‘박종철 기념관’, ‘구 조사실’ 등 시민 대상 전시관으로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나머지 2‧3‧6‧7층과 별관 등은 고객만족모니터센터, 성희롱 상담‧신고센터, 인권보호담당관실, 경찰청 인권위원회 회의실, 인권교육장, 아동‧여성‧장애인 경찰지원센터로 이뤄져있다.

기자가 방문한 시간은 오후 2시경, 관람객이 한 명도 없었으며 전시관의 불마저 꺼져 있었다. 전시장 내 테이블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인권센터 홍보물에는 관람순서로 환영과 환송을 기입해 놨으나 전시장 곳곳에는 ‘에너지 절약으로 최소한의 등만 켜고 있습니다. 견학 시 필요하신 전등은 켜시고 나가실 때는 소등해주십시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홍보물을 나눠주거나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었으며 심지어 기자가 습득한 홍보물은 하나밖에 비치해 놓지 않았다.

문제는 인권센터가 정작 시민들에게는 거의 인식이 안 될 정도로 소극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은 인권센터를 통해 시민 대상 활동으로 ‘인권영화제’와 ‘인권아카데미’, ‘인권 로드 탐방’등을 운영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일반 시민단체들이 하는 행사와 비교해 큰 차이점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부실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또 인권센터의 주요 시책과 장소 등을 쉽게 알 수 있었던 공식 홈페이지마저 폐쇄돼 시민들이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더욱 커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마찬가지다. 기존 게시물의 주기도 길었을뿐더러 6월초중순 이후로는 올라오지 않고 있다.

경찰은 인권센터 홈페이지에서 다루던 내용들이 현재 사이버경찰청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결과 관련 정보는 적었다.

경찰청 홈페이지 내부에는 갈월동에서 운영하는 인권센터 관련별로 항목이 존재하지 않았다.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직접 검색을 해야 했으며 별도의 파일을 내려받아야한다. 인권센터의 연혁, 활동, 주요 시책 등에 관한 정보도 찾기 힘든 상황이다.

경찰은 “사이버경찰청 홈페이지로 통합되면서 개별적으로 운영되던 홈페이지가 폐지됐던 것”이라며 “인권센터 홈페이지 또는 블로그 등 소통 창구를 다시 만들 예정”이라고 전했다.

인권센터 전시관이 명목상으로만 운영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경찰 홍보관인 ‘경찰 박물관’과 인권센터 전시관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경희궁에 인접한 경찰 박물관에는 각종 장비와 복식, 유물 등 홍보물들이 6층 규모로 전시돼 있다. 그러나 인권센터는 시민공간으로 소규모로 두고 있다.

경찰 박물관은 월요일과 명절을 제외하고는 시민들에게 상시 개방돼 있으나 인권센터는 별도 신청을 거치지 않을 경우 주말이나 휴일을 제외하고 평일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사이에만 출입이 가능했다. 경찰은 최근 인권센터 전시관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감돌자 토요일에도 개방하기로 결정했으나 정권 교체에 따른 명분상의 조치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개편했지만 개선은 ‘글쎄’
 
경찰의 인권 침해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점으로 부각될 때마다 경찰은 인권 조직에 변화를 주면서 방안을 모색했으나 ‘여론 달래기’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경찰은 2010년 10월 인권보호센터 이름을 인권보호담당관으로 바꿨고 소속을 수사국에서 감사관으로 변경했다.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3월까지 서울 양천경찰서에서 이뤄진 이른바 ‘날개꺾기’ 등 고문수사 의혹으로 논란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 소속 변경은 감사의 주요 기준 가운데 하나를 ‘인권’으로 두겠다는 뜻의 해석이 잇따랐다. 보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인권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변화로 평가 받은 바 있다.

그러나 경찰의 시도가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민간인 통신기록 사찰 의혹, 집회 참가자‧대학가‧노동조합 감시 의혹, 백남기 사망 사건 등이 경찰의 2010년 조치 이후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인권센터에 대해 일각에서는 조직 내 영향력이 약하고 취한 조치에 강제성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견해도 있다. 최근 인권 침해가 주로 일어나는 경비‧보안‧정보부서와 인권센터 사이의 조직 내 역학관계가 개선을 방해하는 주된 요인이라 해석된다.

따라서 무늬만 다른 새로운 기구를 도입하고 조직을 신설하기보다는 인권센터를 개편 또는 강화해서 운영하는 방안이 긍정적 측면을 불러올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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