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자리에 모여 ‘안철수 성토장’

<사진=정대웅 기자>
지난 3일 위원장협의회 창립총회서 쓴소리 ‘봇물’
“광주 가보니 딴 나라 온 듯”…“혁신 못 하면 당 망한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문준용 의혹 제보 조작’ 사건으로 국민의당의 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당 지지율은 창당 이래 최저치를 보였으며, 당 핵심 기반인 호남에서는 자유한국당보다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당장 1년도 안 남은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당 해체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내년 지방선거, 나아가서는 다음 총선에 국민의당 간판을 걸고 나서야 하는 전국 원외 지역위원장들은 비상이 걸렸다.
 
최근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당원들의 집단 탈당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 국민의당 붕괴가 기정사실화 되는 듯했다. 광주를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이자 광주시당 위원장인 권은희 의원은 지난 4일 통화에서 “탈당 움직임과 관련된 건 전혀 없다”며 이를 일축했다.
 
하지만 권 의원은 탈당과 관련해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판단한 듯 이튿날인 5일 보도자료를 내어 “호남지역 당원들을 중심으로 탈당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는 소문은 명백히 사실무근”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그는 파문 전후를 비교하면 당원 수 변화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통화에서 “(조작 파문에 대해) 비난과 질책받을 정도의 잘못을 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면서 “(지역 분위기는) 지지율 그대로라고 보면 된다. 모든 말이 다 아팠다”며 성난 민심을 전했다.
 
실망·분노 곳곳 분출
고성 터져 나오기도

 
아직 대규모 탈당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지역 민심은 심상치 않은 것이 분명하다. 조작 파문이 터진지 일주일이 흐른 지난 3일 전국에서 모인 원외지역위원장들의 목소리에서 이를 또렷이 읽을 수 있었다.
 
이날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원외지역위원장협의회 창립총회에서 이들은 조작 파문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지역 곳곳의 나빠진 민심을 여과 없이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당을 성토하며 고성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현역 천정배 의원은 “광주 지역에 가보니 딴 나라 온 것 같은 느낌 들었다”면서 “차라리 욕을 해주면 좋을 텐데. 저에게 애정을 가진 분들은 눈물 흘리며 불쌍하다고 했다”라고 침통해 했다.
 
안철수 전 대표에 대한 실망감도 터져 나왔다. 수도권 지역 모 위원장은 “(아들이) 과거 안철수 대표의 강력한 지지자였는데 지금은 돌아서서 설득조차 안 된다. ‘뭔가 보여주지 않는다.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날은 전국 지역위원장들이 모여 원외지역위원장협의회 창립과 회장 선출을 통해 앞으로 국민의당 미래를 주요하게 논의해야 될 자리였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당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거침없이 표출됐다.
 
제주 지역 모 위원장은 내년 지방선거 참패를 우려하면서 “앞으로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우리 당이 지방의회 의석을 갖지 못하고 단체장을 내지 못하면 어떤 힘으로 다음 총선을 맞을 건가”라며 “국회의원은 혼자 뛰는 것이냐”라고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충북 청주 지역 안창현 위원장은 행사 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당의 ‘구태 정치’에 대해 일침을 날렸다. 새 정치를 표방한 국민의당에 막상 들어와 보니 곳곳에 기존의 구태 정치가 있었고 오히려 더 심한 측면도 있었다고 쓴소리를 한 것이다.
 
안 위원장은 “당이 당원들의 컨센서스(총의, 합의)를 모아서 가는 것보다 밀실에서 이뤄지는 결정이 많은 것 같다”며 “예컨대 다른 위원장들이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인사들이 아무런 설명 없이 들어가 최고위원회나 당무위원회 들어가는 등 전체가 수긍하지 못하는 인선이 있었다”고 꼬집었다.
 
이날 회장 후보 중 하나였던 김기옥 서울 강북갑 위원장도 후보 연설에서 “(지난 대선에서) 자존감이 무너졌던 사건은 유세본부가 와서 지역위원장들을 단상에 세우지 않을뿐더러 후보 옆에 가까이도 오지 못하게 했던 것”이라며 “이에 대해 많은 지역위원장들이 분노와 좌절감을 표했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 같은 발언이 나오자 자리 곳곳에서 “옳소”라는 함성이 나오기도 했다.
 
혁신의 ‘골든타임’
“안철수당 꼬리표 떼야”

 
원외지역위원장들은 국회 바깥에서 당을 견인하고 당의 미래를 책임지는 핵심 인물들이다. 보통 지역구에 국회의원이 있는 경우 의원이 당연직으로 맡고, 없는 경우는 지난 선거 낙선자나 차기 선거 출마자가 맡는다. 자유한국당에서는 당협위원장, 나머지 정당은 지역위원장이라고 칭한다.
 
지역위원장들은 창립총회 행사에서 지난 대선때 느꼈던 당에 대한 불만과 조작 파문에 대해 성토하면서도 이번 기회를 혁신의 ‘골든타임’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천 지역 모 위원장은 “하나가 돼 혁신으로 에너지를 모우지 않으면 당은 망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안창현 청주 지역 위원장도 “(지금처럼)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는 정당처럼 하면 안 된다”면서 “예전에 이건희 회장이 ‘마누라 빼고 다 바꿔야 한다’고 했듯, 당도 뼈를 깎는 심정으로 도려낼 거 도려내고 새롭게 가야 한다. 원외위원장 인재 풀을 잘 활용해 새 인물을 포진시켜 당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장으로 당선된 김기옥 위원장은 ▲‘안철수당·호남당’ 꼬리표 떼기 ▲공당으로서의 시스템 확립 ▲시도당 중심의 지역위원회 살리기 ▲인재 발굴 및 교육 훈련 ▲정책연구회 설치 및 지역 공약 만들기 ▲상향식 민주적 공천제 확립 등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당은 정체성 논란에다 이번 조작 사건으로 창당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당 공식 홈페이지 소통 게시판에는 하루에도 수십 개에 달하는 비난성 글이 올라오고 있다. 국민의당이 현재 처한 당 안팎의 위기를 극복하고 ‘제3의 정당’의로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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