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세종의 둘째 아들 수양대군은 계유정란을 일으킨 후 형인 문종의 아들 단종을 내쫓고 왕이 되었다. 말이 좋아 선위(禪位)이지 왕위 찬탈이었다. 이에 일부 신하들이 세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쫓겨난 단종의 복위를 계획했으나 김질의 배신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이 일로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 등이 절개로 생명을 바쳤다. 이른바 ‘사육신’이다. 또 살아 있으면서 귀머거리나 소경인 체, 또는 방성통곡하거나 두문불출하며 단종을 추모한 신하들도 있었다.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온 등 ‘생육신’이 그들이다.
 
  사육신’이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단종의 복위를 꾀한 까닭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권력 다툼이 그 원인이었지만, 그보다 왕권의 정통성을 갖고 있는 단종이 권력욕에 사로잡인 삼촌 수양대군에 의해 강제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계유정란이라는 명분 없는 쿠데타에 의해서. 사육신은 그래서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 세조를 ‘전하’라 하지 않고 ‘나으리’라고 불렀다. 
 
 ‘사육신’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세종대왕이 아꼈던 집현전학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종에 이어 문종의 총애도 받았다. 문종은 죽기 전 이들에게 어린 단종을 잘 보필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런 왕명을 충실히 받들기 위해서라도 이들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용인할 수 없었다. 세조와 같은 하늘 아래서 숨쉬기를 거부했다. 
 
   ‘생육신’ 중 김시습은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소식을 듣고는 머리를 깎고 절에 들어갔다.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을 옹호한 것으로 알려진 세종대왕의 형 양녕대군과 서거정 등이 그를 세조에게 천거했으나 그 때마다 김시습은 거절했다. 세조 체제 하에서는 그 어떤 벼슬도 기지지 않겠다는 결연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집현전 출신 중 수양대군 편에 섰던 자들을 만나서는 “선왕의 신신당부를 어긴 못난 놈”이라고 호통을 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집권 시절 호가호위(狐假虎威)했던 이른바 ‘친박’들은 어떨까? 미안하지만 ‘사육신’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생육신’마저 없어 보인다. “박근혜는 끝까지 우리가 지킨다”라고 그렇게 큰소리쳤던 사람들 지금 다 어디에 있나.  

   박 전 대통령은 탄핵 후 구속까지 당했건만 이들은 겉으로는 납작 엎드려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누릴 것 다 누리고 있다. 박 전 대통령과 끝까지 운명을 같이 하겠다고 말한 인사가 있는가. 의원직 버리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인사가 있는가. 모두들 숨죽이며 자기 살 길 찾기 위해 여기저기 눈치만 살피고 있을 뿐이다. 왕조 때였으면 죽거나 유배, 또는 모든 관직을 내려놓고 낙향해야 할 상황인데도 말이다. 
 
  이들의 행동은 예수가 세상을 바꿔보지도 못한 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자 그를 따랐던 제자 들이 혼비백산한 모습을 그대로 닮았다. 오해하지 마시라. 필자는 지금 박 전 대통령이 예수라는 말이 아니다. 박 전 대통령을 따르던 ‘친박’들이나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 대부분 일신의 영달만 추구한 ‘오합지졸’이었다는 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최근 당과 내각에서 요직을 맡는 등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던 인사가 내년에 실시되는 경북도지사 선거에 유력한 후보자로 거명되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본인은 가만있는데 주위 사람들이 그를 부추기는 듯하다. 최 의원이 출마하든 말든 그것은 순전히 본인이 결정할 일이다. 누구도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다만, 그에게 출마를 권유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알아둬야 할 것이 있다. 최 의원의 정치적 부활이 박 전 대통령의 부활이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이는 큰 오산이다. 오히려 그의 출마가 자신의 정치생명 연장으로 비칠 수 있다.

  최 의원은 박 전 대통령과 끝까지 운명을 같이 하는 게 마땅하다. 그렇게 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이 박 전 대통령의 우산 아래서 모든 것을 누렸던 사람이 취해야 할 인간적, 도의적, 정치적 책무이다. 그런 사람을 왜 부추기는지 알 수가 없다. 박 전 대통령이 정치적 회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자체 수장이 돼 혼자 명예를 회복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특검 조사를 받을 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제가 모시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받고 구속까지 됐는데, 잘 보좌했더라면 이런 일이 있었겠느냐는 점에서 정치적 책임을 통감한다. 과거 왕조 시대 같으면 망한 왕조에서 도승지를 했으면 사약을 받지 않겠느냐. 백 번 죽어도 마땅하다. 독배를 내리면 깨끗이 마시고 끝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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