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올바른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지난 4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덕분에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성공적인 한미정상회담 여흥은 산산조각이 났다. 김정은의 ICBM 발사는 ‘대화하자’는 문 대통령의 구애를 발로 걷어찬 격이다. 문 대통령은 G20 참가차 방문한 베를린에서 ‘베를린 구상’을 통해 북한에 끊임없이 대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핵 협상에서 남한 정부를 배제하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당분간 계속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과 직거래를 통해 실익을 챙기겠다는 전략이다. 한반도 평화를 둘러싼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의 手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통미봉남 전략 내세운 北, 트럼프 대통령과 직거래?
文 대통령 ‘한반도 평화 협정 체결’, 북한의 대답은? 

 
북한은 도발의 마지노선으로 여겼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과감하게 감행했다. 미국의 제재 위협을 감수하면서 어떠한 환경에서도 핵 무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실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ICBM 화성-14 시험발사 성공 다음 날인 지난 5일 관영매체를 통해 “미국의 대 조선 적대 시 정책과 핵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켓을 협상탁(협상테이블)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핵 무력 강화의 길에서 단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주도권 싸움에서 미국의 양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의 막무가내식 행보에 문재인 대통령이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끊임없이 대화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북한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다. 오히려 김정은 위원장은 문 대통령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끼어들 틈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핵무력은 미국과의 협상카드다. 핵을 통해 자신들의 체제를 보장받고, 정권 생존을 담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북한이 우리 정부를 배제하려 한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쥐겠다고 트럼프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등과 정상회담을 통해 지지를 이끌어 내고 있지만 정작 북한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한마디로 끼어들 틈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관영매체를 통해 “(핵은) 우리(북한)와 미국 사이에 논할 문제로, (남한) 괴뢰들이 끼어들 바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ICBM 시험발사 성공 이후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은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 그들은 ‘남조선’을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지난 6일(현지시간)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 10·4 남북 정상선언 10주년과 남북 공통의 명절인 추석을 엮어 이산가족상봉행사를 제안했다. 또 문 대통령은 ‘군사분계선(MDL) 일대 긴장상태 완화 실천’ 의지를 표명해 군사회담까지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7일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회담과 지금 말씀하신 적대행위 중단을 위한 군사실무회담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권은 부정적인 입장이다. 정우택 한국당 원내대표는 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현 정부의 여권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실험 발사로 대표되는 현재의 안보 국면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정말 심각성을 아는지 걱정된다”며 “현재 북한의 ICBM발사는 수십 년간 일관되게 지속돼온 핵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이 최종 단계에 이르렀다는 걸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은 이제 유엔 안보리석상에서 공공연히 대북군사적 옵션을 거론하고 있고 트럼프도 혹독한 조치를 언급한 바 있고 국제사회에선 이미 한반도에 전쟁가능성이 광범위하게 회자되고 있다고 한다”며 “그런데도 이 정부의 수뇌부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아직도 북 핵미사일위협을 남의일 대하듯 대수롭지 않단 식으로 우기는 무책임하고 위험한 안보관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도 같은 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문 대통령의 독일 쾨르베 재단 연설을 통해 우리는 평소에 우려했던 것처럼 대통령의 대북인식이 많이 안이하고 심각성을 모른다는 우려를 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미정상회담에서 우리가 대화주도권을 잡았다고 이야기한 지 4일 만에 ICBM이라는 도발을 당했는데도 대화를 통한 해결만을 강조하고 있다”며 “북한은 통미봉남이라고 하는데 문 대통령은 언제든지 김정은을 만날 수 있다는 정상회담 제안을 했다”고 비판했다.
<뉴시스>
   북한, 미국에 추가도발 호언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화성-14형 시험발사 성공을 미국에 주는 ‘선물보따리’라고 표현하며, 앞으로도 ‘크고 작은 선물보따리’를 보내주겠다는 등 추가적인 도발을 이어가겠다고 호언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행정부도 이러한 북한에 밀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발사 대응과 관련해 당장은 외교와 경제적 압박을 확대할 방침을 밝혔다고 미국의 소리 방송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매티스 장관은 이날 국방부에서 기자들에게 “(북한의 ICBM 관련) 능력이 우리를 전쟁과 더 가까워지게 한 것으로 믿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외교적, 경제적 (압박) 노력을 계속 경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매티스 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렉슨 틸러슨 국무장관도 북한에 대해 이 같은 외교적, 경제적 압력을 가하는 방침을 명확히 지적했다고 전했다. 다만 매티스 장관은 필요할 경우 군사력으로도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며 북한의 ICBM 발사를 강력히 규탄했다.

매티스 장관이 대북 외교적, 경제적 압박 지속을 강조한 것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무력 대응으로 인한 전쟁 우려를 완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방송은 분석했다.

앞서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5일 북한 김정은 정권의 ICBM 발사를 비난하며 미국은 모든 역량을 동원할 준비가 돼 있으며 그중 하나가 상당한 군사력이라고 경고해 트럼프 행정부가 그간 공언한 대로 북한에 군사적 조치를 감행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낳게 했다.

실제 미국 정치권에 정통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이 북한을 정밀 타격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워낙 예측불허 스타일인 만큼 실현가능성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등 대북 진용 인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당초 인선 작업이 올 7월께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더 늦어질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에게 기회가 찾아 올 수도 있다. 북한의 통미봉남 전략을 극복할 수 있는 반전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북한과 미국이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가 중립적인 입장으로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외교 시험대 올랐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치고 빠지는 게릴라식 전략에 능하다. ICBM 시험 발사일도 절묘했다. 미국 내에서는 북한의 이번 도발로 트럼프 대통령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북핵 위협은 G20 정상회의 등 국제사회에서 최대 의제로 떠올랐다. 스스로 ‘세계 경찰’이라 주장하는 미국 입장에서는 국제사회의 대북 규탄 목소리를 모으고 미국의 새로운 안보 전략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다.

북한의 ICBM 발사 성공으로 미국은 다시 한번 자국 주도의 국제 연합을 짜고 더욱더 강력한 외교안보 정책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트럼프가 추구해 온 고립주의 기조와는 정반대 방향이다.

하지만 사업가 출신인 데다 정치 외교 경험이 많지도 않고 예측불허 스타일에 막무가내 언행 탓에 연륜있는 국제 정상들이 얼마나 그에게 호감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북한의 ICBM 발사라는 상황 자체도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겪어 보지 못한 일이다.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의 미국 본토 핵미사일 공격 임박이라는 위험을 마주하게 됐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미국이 취할 수 있는 대북 옵션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짐 월시 매사추세츠공과대학 안보연구소의 월시는 “오늘의 옵션은 어제의 옵션과 다를 게 없고, 어제의 옵션도 썩 좋지가 않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북한 핵시설을 공격할 경우 한반도 전쟁 위험이 도사리는 만큼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든 외교적 해법을 강구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안책이 없다.

미 싱크탱크 국가이익센터의 해리 카지아니스 국방연구 담당 국장은 “이번은 트럼프 대통령이 리더십을 발휘하며 자신이 어떤 성향의 지도자인지 보여줄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월시는 트럼프가 어떤 선택을 하든 강경 발언과 트위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진짜 위험은 북한의 갑작스런 미국 공격이 아니라 오해로 인해 전쟁이 발발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이러니하게 이런 상황은 앞서 밝혔듯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북한과 미국 사이 메신저 역할을 주도적인 역할로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뉴시스>
   文 “대화 필요성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일 베를린 쾨르버 재단에서 밝힌 한반도 평화 협정체결 주장은 의미가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베를린 쾨르버 재단에서 가진 연설에서 “평화를 제도화해야 한다. 안으로는 남북 합의의 법제화를 추진하겠다. 모든 남북 합의는 정권이 바뀌어도 계승돼야 하는 한반도의 기본자산임을 분명히 할 것”이라며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종전과 함께 관련국이 참여하는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북핵문제와 평화체제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 무모하다고 지적하면서 “나는 바로 지금이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고, 가장 좋은 시기라는 점을 강조한다”며 “점점 더 높아지는 군사적 긴장의 악순환이 한계점에 이른 지금, 대화의 필요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제 북한이 결정할 일만 남았다. 대화의 장으로 나오는 것도, 어렵게 마련된 대화의 기회를 걷어차는 것도 오직 북한이 선택할 일”이라며 “그러나 만일 북한이 핵 도발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더욱 강한 제재와 압박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의 머리싸움은 이미 시작됐다. 그 결과에 따라 한반도의 운명과 각 나라의 국운이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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