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경시 풍조’ 날이 갈수록 심해져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지난 3월, 인천에서 초등학교 2학년생이 유괴돼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놀랍게도 10대의 A양으로 밝혀졌다. 특히 시신을 유기했고 유괴에서 살인, 시신유기에까지 걸린 시간이 2시간 30분 남짓으로 범행을 미리 치밀히 준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지난달 24일에는 창원 시내 한 골프연습장 주차장에서 중년의 여성이 납치돼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3인조 범인들은 피해자의 카드로 고작 400만 원가량을 인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네티즌들은 “고작 그 돈 때문에 사람을 죽였냐”고 허탈해했다. 최근 발생한 두 강력범죄의 공통점은 ‘인명경시’ 풍조가 만연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이 그대로 드러난 범죄라는 사실이다. 두 사건을 통해 생명존중의 가치를 다시 곱씹어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7월 4일 진행된, 인천초등생유괴살해사건의 주범 A양의 재판에서는 평소 법정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사체손괴 유기 당시뿐 아니라 살인 범행을 저지를 때도 A양이 심신미약 상태였으며 범행 후 서울에 있다가 모친의 연락을 받고 집으로 와서 경찰에 자수한 점도 양형에 참작해 달라”는 내용의 변론을 마친 A양 측 변호인. 잠시 뜸을 들인 그는 뜬금없이 피고인에 대해 “사형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변호인으로서 해줄 게 없다”고 말했다. 법정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변호인이 자신의 의뢰인을 향해 이같이 발언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느닷없는 변호인의 발언에 재판장도 놀라 “그런 얘기 하지 말라”며 수차례 주의를 주기도 했다. 또 피고인 A양은 자신에 대해 불리한 발언을 한 변호인의 손을 잡으며 발언을 제지하는 진풍경도 연출했다.

A양의 변호인이 법정에서 그와 같은 발언을 한 것은 이 사건이 갖는 사회적 파장과 충격파가 얼마나 크고 강력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였다. “오죽 했으면 변호인조차 그런 발언을 했겠느냐?” 등 네티즌도 변호인과 비슷한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처럼 변호인조차도 자포자기하게 만든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안전망 구축에 대한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특히 피의자들이 17세와 19세 고교 자퇴생과 입시 준비생으로 ‘캐릭터 커뮤니티’를 즐기는 사용자였던 만큼 미성년자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는 한편 양형 기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인천사건의 피의자 A양은 지난 3월 29일, 인천의 한 아파트 부근 공원에서 초등학교 2학년 여학생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몇 푼 안 되는
돈 때문에 살인

 
지난 6월 24일 창원에서 발생한 골프연습장 주부납치살해사건은, 인천초등생납치살해사건과는 조금 다른 차원에서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혼성3인조로 이뤄진 피의자들은 경찰수사 결과 주범인 B씨가 무직에 신용불량자이면서 카드빚이 4000만 원에 달하자 상호 공모해 금품을 노리고 범행을 벌인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났다.

더욱이 이들이 피해자로부터 갈취한 신용카드로 인출한 금액이 410만 원 남짓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온 국민이 경악했다. 고작 돈 몇 푼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데 대한 충격 때문이었다.

또 수사과정에서 납치 장소인 골프연습장에 사전 답사를 했던 사실이 드러났고 납치에 이용한 차량에는 스스로 위조한 번호판을 달고 있었으며, 범행 이후 광주로 이동하던 중 전남 순천에서 미리 훔쳐놨던 차량 번호판을 바꿔 달아 경찰의 추적을 피하는 등 치밀한 사전준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금을 인출하는 과정에서도 주범인 B씨가 긴 머리의 가발을 쓰고 C씨에게 화장을 받아 여성으로 변장하는 등 사전에 계획한 것으로 나타나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강력범죄 예방 위한
근본적 대책 마련 절실

 
위의 두 사건은 최근 점차 엽기화 하고 있는 강력사건들의 양상을 극명하게 대변해주고 있는 사례다.

특히, 정신분열증으로 알려진 조현병 환자이거나 환자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이들에 의한 소위 ‘묻지마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불특정 다수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상황에 시민들은 충격과 공포를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5월 서울 서초구에 있는 한 주점에서 발생한 이른바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였다. 당시 경찰은 피의자가 조현병을 앓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인천초등생납치살해사건도 그 연장선상에 위치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의 피의자 역시 우울증과 조현병 등으로 오랜 기간 주기적인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입원한 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강남역 살인사건 발생 당시 정신질환자에 대한 공포가 확산됨과 동시에 이들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철저한 관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결국 인천사건처럼 정신질환자에 의한 강력범죄가 또다시 발생한 것.

이와 관련해 한 정신과 전문의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 뒤 “일반 건강검진의 수준에 버금가게 정신질환 검사도 수시로 이뤄져야 하며 그 폭도 넓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상시검사를 통해 정신질환자를 파악함으로써 잠재적인 범죄를 사전에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더불어 청소년 강력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현행 소년법 및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의 경우 18세 이하 미성년자가 살인을 저질렀을 때 받을 수 있는 최대 형량은 20년으로 성인보다 비교적 낮은 수준이다.

더욱이 피의자 측이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리고 조현병을 앓았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등 근신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형량을 낮추기 위해 힘을 쏟으면서 범국민적 공분을 쌓고 있는 만큼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편, 인천초등생납치살해사건과 창원골프장납치살해사건 등 최근의 두 강력범죄는 아동과 여성이 피해자였던 범죄였다. 최근의 강력범죄 양상이 상대적 약자로 꼽히는 아동과 여성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은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상황이 그러한 만큼 두 사건이 우리 사회가 아동과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 예방에 이전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 준 사례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시각이다.

인천초등생납치살해사건과 창원골프장납치살해사건 등 두 사건은 우발적인 일과성 사건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관측이 많다.

어쩌면 ‘생명경시’ 풍조에 더해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태가 잉태하고 있던, 예고된 비극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리 공동체에 내려지는 엄중한 경고음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하루 빨리 이런 강력범죄 예방을 위한 근본적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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