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청와대 근무할 수 없는 인사인지 ‘따지는’ 논란 가능
- 文 대통령의 정무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
 

그래봐야 일개 청와대 행정관이다. 그런데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실 선임행정관의 상황이다. 탁 행정관은 지난 몇 달간 과거 저술에서 부적절한 성의식을 표출했다는 이유로 비판받았다.
 
그는 SNS상에서 짧은 사과를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문제제기에 대한 응대를 하지는 않았고, 모든 논란을 청와대에 부담으로 넘겼다. 그렇기에 여당 주변 인사들조차 비판을 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부터 탁현민 해임을 건의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탁현민은 절대로 청와대 행정관이 될 수 없는 것인가? 이렇게 질문을 던져보면 그 답이 확고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한들 탁현민을 해임시켜 달라고 서명을 한 사람들을 모두 무녀리로 몰 수는 없다.

사회운동이란 것은 다소 비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기 마련이다. 가장 좋은 상황은 탁현민이 페미니즘적인 여성들에게도 납득이 갈 만한 사과를 하고 업무를 계속 수행하는 것일 수 있다.
 
운동의 측면에서 봐도 정치의 측면에서 봐도 가장 좋다. 운동은 탁현민의 사과를 성과로 남길 것이고, 정치는 그러한 조율 과정을 학습할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해임을 요구하는 사람들 중 일부도 이런 그림을 바랄 것이다. 그러니까 해임 요구 자체를 비난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논란이 이어지면서 페미니즘 진영 일각에서도 이런 사안으로 해임을 요구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논쟁이 있을 정도다. 이런 종류의 논쟁은 그 내용과 결과가 어떨지언정 한국 사회의 무언가를 바꾸고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영역 밖에 있다. 요즘 페미니즘의 조류가 강성하다고는 하지만, 탁현민 논란이 페미니즘 운동의 역할만으로 이렇게 커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남성 상당수가 탁현민을 비토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이 지점은 페미니즘 이슈와는 다른 지점에서 별도로 존재하는 정치적인 영역이다. 청와대와 탁현민이 이 영역을 외면한다면 문제가 누적될 것이다.
 
‘탁현민=최순실’이라는 프레임을 돌파가 문제
 
그래봐야 일개 청와대 행정관이다. 옹호파들은 그런데 왜 쓰면 안 되냐고 말한다. 하지만 반대파들은 바로 그 이유로, ‘일개 청와대 행정관을 대체 왜 이토록 비호하느냐. 이 정도로 논란이 생기면 경질하는 게 맞지 않느냐’라고 말한다. 이러한 반응의 이면을 생각해 봐야만 한다.
 
탁현민이 논란이 된 것은 청와대 일개 행정관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거듭 호명된 세월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저 최측근이 아니었다. 대통령의 부담이 되기 싫어 외유를 시작한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과 함께 묶일 정도였다. ‘양정철과 탁현민이 문재인의 최측근이다’라는 말은 어느 경우 반박되기도 하지만 여의도 정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양정철의 외유 선언이 얼마나 좋은 평가를 받았는가? 양정철에게 드러난 무슨 크나큰 흠결이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권력을 사유화한 세력에게 분노한 민심이반의 결과로 수월하게 집권했다. 우리 사회의 기준은 예전과는 달라야 한다. 그 기준을 새로 정립하는 과정에선 훨씬 더 조심해야 한다.
 
촛불을 지지했지만 문재인은 싫어했던 세력들에게 양정철은 최순실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졌다. 사실이든 아니든 이것이 ‘반문세력’의 정치적 프로파간다였다. 그런데 양정철은 떠났다. 이제 그들은 그 프로파간다의 핵심에 탁현민을 세우려고 한다.
 
터놓고 말해 현재 탁현민은 ‘촛불지지 반문’, 즉 지난 총선에서 안철수나 유승민이나 심상정을 지지했던 사람들 중 정치고관심층에게 ‘탁순실’이 되어 있다. 혹은 양정철이 문재인을 조종하려는 조종관, 즉 박근혜 청와대의 ‘문고리 3인방’의 위상이 되어 있다. 이 부분을 간과할 것인가?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이 절실하다

 
여당이다. 정권 교체에 기여한 이들에게 일정 부분 합리적인 보상을 챙겨주려고 한다면 다른 방식도 얼마든지 있다. 일개 청와대 행정관이라고 말하는 건 탁현민조차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기여하고 싶을 뿐 개인 영달을 위해 그러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을 위한 효율적인 역할이 무엇인지 따져야 한다.
 
취임 후 문재인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은 언론이 만들어낸 ‘친문 세력’ 최측근들에게만 휘둘리는 꼭두각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평가에 호불호가 있지만 이전에 연이 없었던 임종석 비서실장을 중용하는 모습에서부터 그랬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내각의 인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개인과의 예전 인연이 중시되고 있다는 흔적은 찾기 어렵다.
 
그런데 탁현민만 예외다. 이 지점이 호사가들에게 계속 입방아를 찧게 한다. 탁현민을 대체할 인력이 없다는 건 핑계다. 야당 후보 시절엔 그랬을지 몰라도, 이젠 가장 전문적인 인력이 대통령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
 
그런 이들 중 더 능력있는 이들을 발탁하고 그들을 우대하는 것이 행정부 수반의 가장 핵심적인 임무는 아닐 수 있어도 주요한 임무이며 보람이기도 할 것이다. 친분과 과거 공적을 이유로 탁현민만이 대체 불가능한 인사로 취급되는 것은 인사 공정성 문제로 봐도 다소 납득하기 어렵다.
 
지금 반문은 “문재인은 탁현민을 결코 경질할 수 없다. 왜냐하면 꼭두각시니까”라고 마타도어를 하는 중이다. 물론 다수 산적한 일들에 비하면 사소한 이슈라 볼 수 있고, 이 정도 흠결을 돌파하지 못하느냐는 판단도 가능하다.
 
그런데 그러러면 청와대에 문제를 떠넘기지 말고 탁현민 본인이 진정성 있는 해명을 해야 한다. 본인의 과거 발언이 문재인 정부의 여성정책 기조와 충돌하며, 본인은 더 배우겠다고, 다만 내가 맡은 직무가 여성정책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것이지만 행사 기획 과정에서도 더 배우고 조심하겠다고 진솔하게 말하면 돌파가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 과정도 없이 강행 돌파한다면, 거기에 박수치는 것은 문재인 극렬 지지자뿐이 아닐 것이다. 반문이 없으면 못 사는 어떤 이들이 함께 박수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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