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홍준표의 ‘한 수’. ‘묘수’일까 ‘악수’일까. 홍 대표로부터 당 혁신의 전권을 이양받은 류석춘 혁신위원장 얘기다. 류 위원장은 취임 직후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정치 탄핵’이라고 힐난했다. 이후에는 친박계 대다수가 제외된 일명 ‘류석춘 살생부’가 공개됐다. 마치 홍 대표가 하고 싶지만 하지 못했던 일들을 대신해 주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외연 확장’과 ‘집토끼 사수’라는 두 가지 숙제를 모두 풀어야 할 홍 대표에게 박 전 대통령과 친박계는 품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존재다. 바로 이 지점을 풀기 위해 홍 대표가 류석춘이라는 칼을 빌렸다는 분석이다. 이른바 ‘차도살인(借刀殺人)’ 전략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홍 대표의 ‘한 수’가 ‘악수’가 됐다는 정 반대의 분석이 제기됐다. 홍 대표는 ‘환상의 콤비’를 기대하며 자신의 색깔과 닮은 류 교수를 영입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류 위원장이 홍 대표 자신의 독자적 성향마저 그대로 닮아 ‘마이 웨이’ 식 ‘혁신’에 몰두하고 있다는 것이다. 홍준표의 ‘한 수’가 ‘묘수’가 될지 ‘악수’가 될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된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브레이크’·‘액셀’?... ‘환상의 팀워크’로 집토끼 산토끼 다 잡는다!
- 洪 측근 ‘살생부’?... 柳는 ‘마이 웨이’식 ‘혁신’ 중


자유한국당 류석춘 혁신위원장이 지난해 4·13 총선 참패 직후인 5월 2일 ‘철학 없는 국회의원’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발표한 발체문이 ‘살생부’ 논란에 휩싸였다. 류 위원장이 최근 한국당 ‘혁신’의 전권을 위임받으면서 ‘류석춘 리스트’가 인적 쇄신의 밑그림이 될 것이란 관측에서다.

‘살생부’, 자유한국당 18명... 친박 핵심 인사 빠져

당시 류 위원장은 “명단에 오른 의원들이야말로 당을 이념의 무정부주의, 이념적 백치로 몰아간 주범이자 공모자들”이라며 “이들은 19대 국회를 무능력, 무책임의 불임 국회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고 맹비난했다.

그러자 해당 의원들은 ‘리스트=살생부’는 부적절하다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철학 없는 국회의원’으로 지목된 김태흠 최고위원은 13일 보도자료를 내고 “당시 류 교수 등이 분석한 자료는 국회 법안 제출 관례나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반박했다.

나경원 의원 역시 같은 날 오전 SBS 라디오 ‘박진호의 시사 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 류 위원장이 자신을 ‘철학 없는 국회의원’ 명단에 포함시킨 데 대해 “기준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며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류 위원장이 ‘철학이 없다’고 규정한 잣대는 네 가지다. 과거 새누리당 의원들이 동료 의원의 어떤 법안 발의에 동의했는지를 기준으로 ▲야당 의원에 협조 ▲운동권 출신으로 야당 의원에 협조 ▲새누리당 쟁점 법안 비협조 ▲야당 쟁점 법안 협조 등의 유형을 정했다.

각 유형에 해당하는 의원들에 1점씩을 부여해 4점이 가장 나쁜 의원이 되고, 0점이 좋은 의원이 되는 식이다. 이 기준에 의해 ‘문제 의원’으로 지목된 의원은 59명이었고, 이중 7명은 지방선거 출마, 청와대 차출 등으로 제외됐다. 결과적으로 52명이 지목된 셈인데, 이들 중 20대 국회에서 당선된 사람은 26명이며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김종태 의원을 제외하면 현역 의원은 총 25명이다.

정당별로 보면 자유한국당 18명(경대수·김성태·김태흠·나경원·박덕흠·박맹우·서청원·신상진·안상수·염동열·이군현·이명수·이완영·이우현·이종배·정우택·한선교·홍문표 의원), 바른정당 7명(김세연·박인숙·오신환·유승민·이학재·홍철호·황영철 의원)이다.

이 중 지난해 12월 분당 사태를 촉발한 비박계의 ‘친박 살생부’인 ‘친박 8적(이정현·조원진·이장우·서청원·최경환·홍문종·윤상현·김진태)’ 명단 중에선 친박계 맏형 격인 서청원 의원만 ‘살생부’에 올랐다. 최경환·윤상현·홍문종 의원 등 핵심 친박은 명단에서 빠졌으며, 친박계로 분류할 수 있는 인사로는 서청원 의원을 포함해 김태흠·박맹우·이완영·이우현·한선교 의원 정도다.

이처럼 친박계가 다수 제외됐고, 현 지도부·비박계·바른정당 인사들까지 두루 거론된 점,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선도했던 유승민 의원이 포함된 반면, 김무성 의원은 빠진 점 등은 홍준표 대표가 류 위원장을 영입한 속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홍 대표는 ‘외연 확대’와 ‘인적 청산’이라는 두 가지 숙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외연 확대는 정당체제의 변화와 문재인 정부의 성패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고, 인적 청산 역시 ‘친박계 청산’이라는 국민적 요구를 따를 수도, 그렇다고 거부할 수도 없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홍 대표가 바로 이 지점에서 ‘묘수’를 택한 것이다. 자신의 색깔과 닮은 류석춘 교수를 혁신위원장으로 불러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혁신’이라는 감투를 쓰고 두 가지 숙제를 풀겠다는 속내인 것이다.

위 명단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서청원 의원을 제외하면 핵심 친박계는 모두 빠져 있다. 이렇게 되면 친박계가 물론 입지야 예전만 못하겠지만 살아남을 수는 있고, 홍 대표 역시 당내 입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뿐만 아니라 친박계의 ‘몰살’이 아닌 ‘분별 있는 청산’이 실행되면 자유한국당은 외연 확장 가능성을 살리면서 기존의 지지층까지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보수의 심장’ TK로 대표되는 기존의 보수층에는 여전히 박근혜 전 대통령과 친박계에 대한 연민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홍 대표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바른정당 탈당파의 한국당 재입당을 승인한 이후 지지율이 곤두박질친 사실은 이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더욱이 지난 3일 뽑힌 지도부 6명 중에 TK 출신인 홍 대표와 이철우, 이재만 최고위원 등 3명이 선출됨에 따라 자유한국당 내 TK의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게 입증됐다. 이런 상황에서 친박계를 모조리 내치는 것은 ‘자살 행위’와도 같다는 평가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지금도 한국당 내외에는 당 혁신이 박근혜와의 절연(絶緣)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은데, 그것이야말로 패착이다”라며 “탄핵이란 정치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박근혜는 보수 우파의 아이콘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 정체성에 등 돌린 채 코앞의 인기에 따르려 하다간 원하는 지지층을 놓치고 민심을 얻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이를 잘 알고 있을 류 위원장도 최근 “당장 박근혜가 한국당의 정치적 자산은 아니지만, 박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의 안타까운 심정은 한국당이 안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정치권에선 홍 대표가 ‘류석춘 살생부’를 당내 강경 친박계와 바른정당의 비박 의원들 간 중간의 위치에서 ‘보수 대통합’을 중재하는 도구로 이용할 것이라는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홍 대표와 류 위원장은 연일 ‘환상의 콤비’를 선보이고 있다. 류 위원장이 첫 기자 간담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너무 과한 정치적 보복을 당한 것”이라는 등 논란성 발언을 내놓자 홍 대표 측근 그룹은 “그와 같은 공개된 발언은, 개혁을 하자고 하는 우리 한국당이 가야 할 목표에 자기 개인적 의견이 표출됐다면 그건 바로잡아야 된다고 본다”며 제동에 나섰다.

‘외연 확장’과 ‘집토끼 사수’라는 숙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홍 대표다. 그로서는 류 위원장의 박 전 대통령 옹호 발언으로 ‘집토끼’를 사수한 셈이고, 이를 제동하는 척하면서 동시에 외연 확장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는 것이다. ‘액셀’과 ‘브레이크’의 절묘한 조화라는 평가다.

기세를 탄 한국당 내부에선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최경환 의원을 살리고 김무성 의원의 복당을 허용하는 대신, 서청원 의원을 죽이고 유승민 의원의 복당은 불허하는 식으로 바른정당을 흡수 통합하는 협상안까지 논의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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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정치권 일각에선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고 있는 홍준표 대표와 류석춘 위원장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당초 홍 대표가 자신과 비슷한 성향인 류석춘 교수를 영입했으나 막상 위원장 자리에 앉혀 놓으니 홍 대표는 안중에도 없는 ‘마이웨이’식 ‘혁신’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 ‘류석춘 살생부’에 홍 대표의 최측근인 홍문표 사무총장의 이름이 올라 있음이 드러남에 따라 둘 사이의 관계는 더욱 틀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홍 의원은 바른정당에 있다가 대선후보였던 홍 대표 지지를 선언하며 복당 한 13인의 의원 중 한 명이다.

최근 홍 총장은 ‘류석춘 살생부’가 공개된 이후 류 위원장에게 잔뜩 날을 세우고 있다. 그는 “많은 의원들이 이런저런 경로로 저한테도 찾아와서 논의하고 얘기했지만, 그분께서는 제가 볼 때 국회의 사정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홍 총장은 또 “예를 들면 의원들 몇 분 말씀 중 하나”라며 “대부분 국회에서 농업 부문과 국방 문제는 여야의 첨예한 대결이 그렇게 많지는 않고, 그래서 야당 의원이 여당에 와서 ‘그런 법안을 함께 발의하자’고 해서 사인을 해 줬다(는 것인데) 그 (‘류석춘 리스트’ 내용을 보면 그것을 ‘소신 없다’고 표현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건 국회를 전혀 모르는 그분의 발상 중 하나인 것 같다”고 비판하며 “또 하나, 국회라는 것이 여야가 함께 생산하는 것이 진짜 법안인데, 여야를 넘나들면서 법안을 많이 (발의)한 것들을 쭉 정리했더라. 그걸 놓고 아마 그분이 그런 잣대를 댄 것 같은데 그건 이 분께서 국회를 잘 모르시고 자기 잣대로 한 것을 지금 혁신위원장이 돼서 그전에 나왔던 얘기가 현실적으로 대두된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홍 대표의 최 측근인 홍 총장이 류 위원장에 잔뜩 날을 세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와는 별개로 지금까지 보여준 홍 대표와 류 위원장의 ‘호흡’만으로도 최악의 위기에 빠져있는 자유한국당에 한가닥 ‘희망’의 불씨가 생겨났음은 부인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고정현 기자  jh0704@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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