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대한상공회의소(회장 박용만, 이하 대한상의)가 정치권, 재계와의 소통에 적극 나서면서 단체의 위상이 재조명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전국경제인연합회(회장 허장수, 이하 전경련)가 정권교체 때마다 추진하던 대통령과의 만남 주선 일정까지 직접 소화하면서 달라진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렇다 보니 ‘최순실게이트’로 와해 위기에 몰린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자연스레 비교된다. 일각에서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최근 새 정부와 냉랭한 관계를 보이면서, 대한상의의 역할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박용만 회장 “대통령-기업 총수 만남, 청와대에 요청할 것”
새 정부 경제파트너로 ‘우뚝’…경제 단체 존재감 달라진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11일 15대 그룹 임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대기업 간의 만남을 추진한다는 게 그 이유다.

이 회의에는 주은기 삼성전자 부사장, 박광식 현대차 부사장, 박영춘 SK 부사장, 조갑호 LG 부사장, 오성엽 롯데 부사장, 유병옥 포스코 전무, 정찬수 GS 부사장, 여승주 한화 부사장, 조영철 현대중공업 부사장, 양춘만 신세계 부사장, 최영익 KT 전무, 최성우 두산 사장, 석태수 한진 사장, 조영석 CJ 부사장, 최양환 부영 사장 등 주요 대기업그룹 임원 15명이 참석했다. 지난해 기준 재계 1위부터 15위까지의 대기업 집단이다.

박용만 회장은 “대한상의가 조만간 대통령께 대기업과의 간담회를 요청드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방미기간 중 경제계와의 차담회 자리에서 “기업하는 분들을 가장 먼저 뵙고 싶었는데 경제팀 인선이 늦어져 이제야 뵙게 됐다”며 “돌아가면 다시 제대로 이런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언급한 데 따른 조치다.

양 방향 소통 힘쏟아

앞서도 대한상의는 지난 10일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초청 조찬 간담회를 시작으로, 17일에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초청 최고경영자(CEO) 조찬 간담회를 개최한다. 이어 오는 19일에는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제주에서 열리는 ‘제42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 참석해 개막스피치를 한다.

대한상의는 지난달 23일에도 김 공정거래위원장과 4대 그룹과의 상견례도 주선한 바 있다. 당시 만남에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박정호 SK텔레콤 사장, 하현회 ㈜LG 사장 등 주요 그룹의 고위 경영인들이 참석했다.
재계 안팎에서는는 이번 일련의 행보가 기업들이 당면한 과제는 물론 기업 간 소통과 정부와 소통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그동안 새 정부 방침이나 사회적 요구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며 “각 그룹사별, 계열사별로 형편에 맞게 자발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솔선해 나가기로 하자”고 제안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경제부총리와 공정거래위원장 등을 한 달에 모두 만나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라면서 “일단 정부와 기업이 서로 잘해 보려는 의지는 확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재계는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서밋’에서 문 대통령과 같은 헤드테이블에서도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수시로 이야기를 나눈 사실에도 주목한다. 문 대통령은 당시 ‘친노동’과 ‘친기업’임을 동시에 자처하며 “새 정부 경제정책을 믿으시고 더 본격적으로 투자하고 일자리를 늘려 달라”고 당부했다.

재계 맏형 자리 넘보나

다만 전경련 눈치가 보인다는 지적도 있다.
한 재계 인사는 “새 정부 들어 대한상의만 재계를 대표하는 것처럼 비춰지고 있다”며 “4대 그룹 등 일부 탈퇴가 있었지만, 전경련은 여전히 우리나라의 대기업과 재벌들을 대표하는 경제단체다”고 말했다. 재계의 대표성이 인위적으로 대한상의에 집중되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그는 이어 “(재계에선) 이번 한미정상회담에서 방미 경제 사절단에 대한상의가 주도를 한 것은 이해하나, 높은 수준의 민간외교 네트워크를 지닌 전경련의 배제를 아쉬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실제 우리나라의 민간 경제외교는 국가별로 나눠 전경련과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등이 담당해 왔다. 전경련은 그동안 중요 국가인 미국, 일본, 중국, EU 등을 상대해 왔다.

특히 미국과의 민간외교 경험에서 한미 FTA, 비자 면제프로그램, 한미 통화 스왑 협정 등에 기여하는 등 경험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전경련은 그동안 미국 상공회의소(암참)와 공동으로 한미 재계회의를 주관하며 탄탄한 한미 경제 네트워크를 쌓아온 경험이 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경제사절단 구성에서 대한상의만 주도를 하고, 전경련은 간접적 참여를 이어 나가고 있어 그 영향력은 미미한 수준이다.

한편 대통령과 경제인의 간담회는 7월 말 예정된 경제 정책 발표 후 대통령 휴가 기간을 고려해 8월 중순께 추진키로 했다. 당장 문 대통령부터 북핵문제 등 정치외교 현안이 산적해 있는는 상황이고 주요 그룹 총수들이나 CEO들도 해외 출장이나 휴가 등이 대부분 잡혀 있어 일정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