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지난 11일 김제시의 한 갈대밭에서 60대 남성이 숨져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했다. 실종 신고가 접수된 지 이틀 만이다. 

이 남성은 1980년대 벌어진 ‘김제 가족 간첩단 사건’의 희생자 최을호 씨의 장남으로, 최근 재심을 통해 아버지가 누명을 벗자 이를 알리기 위해 부친의 산소를 찾았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살아서는 전할 수 없었던 까닭일까. 원통한 죽음을 위로하기 위해 아버지를 찾은 아들마저 죽음에 이른, 국가 권력이 만든 비극인 셈이다.
 
경찰에 따르면 11일 오후 3시경 김제시 진봉면 고사마을 인근 새만금간척지 갈대밭에서 최모(61·지적장애 3급)씨가 숨져있는 것을 경찰 헬기가 발견했다. 최 씨는 이틀 전 실종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수색 중이었다. 경찰은 특별한 외상이나 타살 혐의는 없는 점으로 미뤄 사고로 사망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 씨가 실종된 날은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의 피해자인 아버지가 34년 만에 누명을 벗은 지 10일째 된 날이었다. 최 씨는 앞서 9일 낮 12시경 형제들과 뒷산 부친의 산소를 찾았다. 누명을 벗은 사실을 알리는 제를 올리기 위해서다.

이후 최 씨는 “담배를 사러 다녀오겠다”며 형제들과 떨어져 홀로 산을 내려왔다. 경찰은 최 씨가 길을 잘못 들어 갈대밭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길을 찾지 못하고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은 최을호 씨가 북한에 나포됐다 돌아온 뒤, 조카인 최낙전·최낙교 씨를 간첩으로 포섭해 국가기밀을 수집해 북한에 보고하는 등 간첩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시킨 사건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2년 8월의 일이다.
 
1983 3월 1심 재판부는 최을호 씨에게 사형을, 최낙전 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최낙교 씨는 1982년 12월 검찰 조사를 받던 도중 구치소에서 사망해 공소기각 처분됐다.
 
서대문구치소에서 복역하던 최을호 씨의 사형 집행은 1985년 10월 31일 이뤄졌다. 최낙전 씨는 9년을 복역한 뒤 가석방됐지만 보안관찰에 괴로워하다 4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14년 7월 유가족 측은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지난해 9월 30일 재심이 결정됐다.
 
서울중앙지법 제23형사부는 지난달 29일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여러 자료와 증언을 살펴보면 당시 수사과정에서 고문과 가혹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할 수 있고 고문에 의한 경찰 진술조서와 검찰 피의자신문조서는 최 씨 등이 간첩활동을 했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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