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윤석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지검장이 방산비리 수사에 착수했다. 적폐청산을 내건 문재인 정부의 대형 사정수사가 본격적으로 개막한 셈이다. 윤 지검장이 총 지휘하는 이번 수사는 ‘검찰 조직의 정상화’와 맥을 같이 한다. 평검사 출신인 윤 지검장은 검찰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있다. 서울지검장에 임명된 후 그가 보이는 행보에는 이 같은 고민이 무겁게 작용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는 지난 14일 원가조작을 통해 개발비를 편취한 혐의(사기)와 관련해 KAI의 경남 사천 본사와 서울사무소를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이명박 정권의 대표적 문제로 지목되던 방산비리를 처음으로 정조준했다는 점에서 수사 확대가 어디까지 이뤄질지 관심이 쏠린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이명박 정부에서의 ‘4대강·자원외교·방산 비리(사자방)’도 다시 조사해 부정축재 재산이 있다면 환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법조계는 이들 세 가지 비리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이 이뤄질 것으로 봤다.
 
실제로 지난 5월 22일 문 대통령은 ‘5호 업무지시’로 일부 4대강 보의 상시 개방과 정책감사를 지시하는 ‘신호탄’을 쐈고, 검찰이 이번 KAI 압수수색으로 방산비리 혐의를 본격적으로 파헤치기 시작했다.
 
총 지휘자는 지난 5월 임명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다. 지검장으로서 총괄하는 첫 번째 대형 비리 사건인 셈이다. 그는 이전 정부에서 수뇌부와 갈등 끝에 좌천됐다가 이번 정부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는데, 윤 지검장의 임명 자체가 이런 대대적인 사정을 염두에 둔 인사라는 시각이 많다.
 
특히 이번 방산비리 수사는 검찰 조직의 이미지 쇄신에 큰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를 불러 모은다. 방산비리는 ‘국방 3대 과제(강군육성·전작권 전환·방산비리 척결)’ 가운데 이견이 없이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히며, 이를 바로잡는 데 검찰의 임무가 막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인 여론 때문에 자칫 검찰 조직에 힘이 실리지 않을 우려가 있다. 그동안 ‘정치 검찰’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던 만큼 ‘검찰 스스로가 적폐’라는 지적이 계속된다면 수사 의지가 꺾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윤 지검장으로서는 내부적으로 가장 시급한 문제로 분류할 만 한 사안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윤 지검장이 평검사 출신인 만큼 검찰 조직의 ‘국민적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검찰총장의 임명이 마무리되면 대대적인 이미지 쇄신 작업에 들어갈 태세”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점에서 대형 비리 수사를 통해 대중적인 관심과 신뢰를 끌어 올릴 수 있고, 나아가 국방개혁에 검찰이 힘을 보태주는 모양새를 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검찰의 신뢰에 대한 윤 지검장의 고민은 그간의 행보로 가늠해볼 수 있다. 취임 두 달째를 맞은 윤 지검장은 앞선 서울지검장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여 왔다. 그는 첫 공개수사 대상으로 4대 그룹이 아닌 프랜차이즈 업체 ‘미스터 피자’의 갑질을 선택했다.
 
창업주인 정우현 전 MP그룹 회장이 자신의 가족이 운영하는 업체를 유통 과정에 끼워 넣어 가맹점에 치즈를 비싸게 공급하고, 가맹점에서 탈퇴한 점주가 운영하는 매장 근처에 직영점을 내 영업을 방해한 혐의다.
 
윤 지검장이 ‘특수통’으로 불려온 만큼 임명 당시만 해도 어떤 기업이 수사망에 걸릴지 촉각을 곤두세우던 터였다. 업계 등에선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수사 1호’ 기업치고는 존재감이 약한 기업이란 게 이유다.
 
이는 ‘민생과는 거리가 멀다’는 검찰 이미지를 바꾸려는 시도로 읽히는 대목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역대 서울중앙지검장들은 ‘대기업 수사’와 ‘청와대 하명수사’로 첫 시동을 걸어왔다.
 
지난해 이영렬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취임하자마자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특별수사팀을 편성해 옥시와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유통 기업을 정조준했다. 같은 해 6월부터는 롯데그룹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벌인 바 있다.
 
2015년 박성재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취임 한 달 만에 해외 자원외교 비리와 포스코 비리 등 이명박 정권과 관련된 부패 사건을 첫 타깃으로 삼고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당시 이를 두고 하명수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런 점에서 보면 윤 지검장 임명 후 행보는 검찰의 대외적인 이미지에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었다.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건 정부의 모습과도 어울리며, 하명수사 지적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방산비리 수사로 ‘검찰은 민생을 돌볼 뿐 아니라 최대 적폐로 꼽히는 방산비리를 척결하는 데 앞장 선다’는 긍정적 여론을 형성할 수 있다”며 “검찰의 수사는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취임 일성으로 내건 ‘국방개혁’ 분위기를 고조 시킨다. 검찰과 국방부의 협업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