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공’ 스타일 감추니 우승이 눈앞에…6개월간의 실수를 자극제 삼아 진화
-태극낭자의 맹공 톱10에 8명 진출…준우승한 아마추어 최혜진 차기 대세 예약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를 휩쓸었던 박성현이 미국진출 6개월에 만에 잭팟을 터뜨리며 대세로 떠올랐다. 특히 그는 박세리로 시작된 US여자오픈 우승의 9번째 주인공이 돼 후반기 돌풍을 예고했다. 더욱이 그간의 아쉬운 플레이를 틈틈이 점검하고 보완해 반복되는 실수를 줄였다는 점이 주목되며 현재보다 미래가 더 궁금해지는 선수로 등극했다.
 
올 시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진출한 박성현은 좀처럼 우승을 차지하지 못해 안타까움을 샀다. 매번 우승을 코앞에 두고도 부족한 세밀함으로 놓친 적이 여러 번이다. 실제 박성현은 드라이버 비거리 5위(274.20야드)를 차지하며 장타에서 인상적이지만 정확도에서는 66.77%로 125위권인 최하위에 그쳤다. 더욱이 박성현에게 필요한 건 우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이 같은 설움을 지난 17일(한국시간) 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서 정상을 차지하면서 모두 날려 버렸다.

박성현은 이날 미국 뉴저지 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열린 US여자오픈(총상금 500만 달러) 최종 4라운드에서 버디 6개와 보기 1개를 묶어 5언더파 67타를 기록, 최종합계 11언더파 277타로 펑산산을 제치고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그는 우승상금 90만 달러(약 10억2000만 원)의 주인공이 됐다.

하지만 당초 박성현의 우승을 예감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1, 2라운드까지만 해도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1라운드는 1오버파 73타로 출전선수 156명 가운데 중위권인 공동 58위에 머물렀다. 2라운드는 2타를 줄이며 공동 21위에 그쳤다.

그러나 박성현의 승리욕은 3라운드에 접어들며 활활 타올랐다. 그는 전반 9개 홀에서 1타를 잃었지만 후반 9개 홀에서 버디만 6개를 몰아쳤고 마지막 라운드에서도 전반 2타를 줄인 뒤 후반 12번 홀(파4)에서 2m짜리 버디를 성공시키며 9언더파로 펑산산, 아마추어 최혜진과 함게 공동 선두를 달렸다.

이후 박성현의 운명은 16~18번 홀에서 갈렸다. 그는 17번 홀에서 17번 홀에서 타수를 줄인 반면 최혜진은 16번 홀(파3)에서 티샷을 물에 빠트려 더블 보기를 범했고 펑산산은 마지막 18번 홀(파5)에서 트리플 보기를 기록해 공동 5위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박성현 역시 18번 홀에서 위기를 맞았다. 세 번째 샷이 그린을 넘어가면서 타수를 잃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악몽은 그에게 약이 됐다.

박성현은 지난해 같은 대회 18번 홀에서 1타 뒤진 상황에서 무리하게 승부수를 띄웠다가 공이 물에 빠져 결국 보기를 기록 최종 3위로 대회를 마감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그는 침착히 네 번째 샷을 홀 45cm에 붙인 후 파를 성공하며 대단원의 역전극을 완성했다.
랭킹 5위로 껑충…
3연 연속 신인왕도 노려


 
박성현은 이번 우승으로 스스로도 “아직 믿기지 않는다”는 말로 기쁨을 만끽했다.
그는 이날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 2라운드가 잘 안풀렸는데 3, 4라운드에서 제 샷이 나와줄 거라고 믿었다. 그 덕분에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성현은 또 “그제까지만 해도 상위권과 많이 멀어졌는데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해보다 나은 성적을 목표로 했는데 우승으로 마칠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그는 자신의 캐디 데이비드 존스에게 감사를 전했다. 박성현은 “네 번째 샷을 남기고서 머릿속이 하얘지고 긴장을 많이 했는데 데이비드가 ‘항상 연습하던 거니까 믿고 편하게 하라’고 한 게 도움이 많이 됐다. 연습하던 대로 샷이 나와서 저도 깜짝 놀랐다”고 웃음을 지었다.

이 같은 박성현의 우승에는 그간의 고집을 버리고 방향을 전환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박성현에게는 여러 애칭이 따라다니지만 ‘닥공(닥치고 공격)’으로 불리며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보인 바 있다.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그는 ‘무조건 닥공’에서 ‘따박따박샷’에 집중했다.

이에 비거리는 259야드대로 줄어든 반면 페어웨이와 그린 적중률이 모두 75%에 가깝게 나오면서 정밀한 경기력을 높였다.

이런 전략은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됐던 벙커샷 문제까지 자연스럽게 해결했다. 이번 대회에서 벙커에 공을 빠뜨린 건 딱 두 번에 불과했고 이중 한 번은 파세이브를 기록하며 귀중한 1타를 지켰다.

이번 대회로 박성현을 향한 현지 골프팬들의 관심은 확 달라졌다. 우선 박성현은 11위였던 세계 랭킹을 5위로 끌어올렸다. 또 신인상 포인트도 997점을 쌓아 ‘올해의 루키’를 예약했다. 2위인 에인절 인(미국)과는 638점 차이다.

여기에 올해의 선수 포인트는 3위, 시즌 성적을 포인트로 환산해 순위를 매기는 레이스 투 CME 글로브는 4위로 수직 상승했다. 평균 타수 역시 2위에 이름을 올랐다.

특히 유력한 신인상 후보가 되면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3년 연속 신인상을 배출할 것으로 보여 새로운 타이틀도 거머쥘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간 10명의 신인왕을 배출했지만 2년 연속은 딱 3회뿐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
주연보다 눈길 끈 조연,
몸값 수직 상승

 
이번 US여자오픈은 박성현 만의 무대는 아니었다. 한국선수들 모두의 잔치였다.

우선 성적으로는 톱 10중 8명이 한국 선수였다. 2위를 차지한 아마추어 최혜진을 비롯해 허미정과 유소연이 공동 3위, 이정은이 공동 5위, 김세영, 이미림, 양희영이 공동 8위에 이름을 올리며 한국 선수들이 US여자오픈을 점령했다.

특히 아마추어 신분으로 출전해 준우승을 차지한 최혜진에게도 세계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최혜진은 마지막 라운드를 선두에 1타 뒤진 공동 2위로 시작해 공동선두에까지 올랐지만 16번 홀에서 공을 물에 빠뜨리면서 결국 단독 2위로 대회를 마쳤다.

이번 대회에서 그는 그린 적중률 공동 5위(75.0%), 평균 퍼트수 공동 8위(1.58개),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 12위(245.96야드)에 오르는 등 프로 골퍼 못지않은 플레이를 펼치면서 돌풍을 예고했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최혜진의 플레이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아마추어 선수가 수십 년 만에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다. 무척 흥미롭다”는 글을 남겼다.

그러나 최혜진의 깜짝 놀랄 성적은 우연이 아니다. 부산 학산여고 3학년인 그는 한국 여자골프 국가대표 에이스로 중학교 3학년 때 태극 마크를 달았고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2015년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개인전, 단체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2관왕에 올랐고 아마추어 세계랭킹 2위 올해 LPGA 투어 호주 여자오픈 7위, KLPGA투어 E1 채리티여자오픈 2위, 이달 초 열린 초정탄산수 용평리조트 오픈에서 우승하는 등 유력한 한국여자골프를 이끌어갈 차세대 주자로 여겨진다.

오는 8월 23일 만 18세가 되는 최혜진은 오는 9월 프로로 전향할 예정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아마선수여서 준우승 상금(54만 달러·약 6억1000만 원)을 못 받게 됐지만 몸값은 치솟고 있다.

최혜진은 “앞으로 LPGA 투어에 진출하려면 체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느꼈다. 그린 위주 쇼트게임이나 트러블샷에 대해 연습도 더 해야 할 것 같다”면서 “한국과 미국 여자프로골프 투어를 거쳐 박세리, 박인비 선배님처럼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선수가 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
  한편 박성현의 우승으로 후원사의 웃음꽃도 활짝 폈다. 먼저 LG전자는 후원 계약 5개월 만에 박성현이 메이저대회를 우승하면서 적지 않은 홍보효과 누렸다.

박성현은 대회 기간 내내 LG의 프리미엄 브랜드가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다녔고 우승까지 거머쥐면서 올 하반기 시장 확대를 준비하고 있는 LG전자로서는 브랜드 인지도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또 메인 스폰서인 KEB하나은행도 이번 박성현의 우승으로 스포츠계 ‘금손’으로 통하는 KB금융그룹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2월 박성현과 계약하면서 기존의 박희영 이민지와 함께 LPGA 투어 정상급 선수단을 갖추고 향후 단순한 홍보 효과를 넘어 상품과 연계한 마케팅도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실제 KB국민은행의 경우 2015년 박인비 선수의 커리어그랜드슬램 달성과 연계한 상품으로 2220억 원 유치에 성공한 바 있다.

<사진=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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