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임금은 전분6등법과 연분9등법 등 백성들에게 유익한 조세제도를 만들기 위해 5개월 동안 무려 17만 국민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거쳤다. 중요한 국가정책, 그것도 백성들의 생활과 밀접한 정책을 시행함에 있어 서둘지 않고 신중에 신중을 기했던 통치 사례다. 왕조시대에서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 그런 세종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세종과 똑같지는 않아도 적어도 닮아가고 있다는 인상을 국민들에게 보였으면 했다. 그런데 그렇지가 못해 보여 안타깝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일시 중단 결정 과정만 봐도 그렇다. 이 원전은 36개월간의 심의 끝에 착공에 들어갔다. 착공하기까지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린 것은 그것이 국민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국책사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중대한 사업을 문 대통령은 일시 중단시키기로 결정했다. 명분은 국민 안전이었다. 일리는 있으나 문제는 그런 결정을 단 20분 만에 내렸다는 점이다. 
그 후유증이 금방 나타나 공사 중단을 의결할 이사회가 신고리 주민과 노조의 극렬 반대로 열리지 못했다. 정상적인 의결이 힘들어지자 이사회는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호텔에서 기습 의결하는 구태(舊態)를 답습하고 말았다.
인사청문회 과정 역시 다르지 않다. 세종의 부친 태종은 1415년 장진을 사헌부 5품 관리에 임명했다. 그러나 사헌부는 그의 서경(署經)을 끝내 거부했다. 서경이란 왕이 관리를 임명할 때 대간들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 제도다. 지금의 인사청문회 격이었다. 이들의 서경을 받지 못하면 제아무리 왕이 임명해도 관리에 오를 수 없었다. 대간들은 관리 후보자의 문벌과 품행, 경력 등을 철저히 검증한 뒤 임명장 서명 여부를 판단했다. 장진은 부를 좇아 조강지처를 버리고 병든 부자집 딸에게 다시 장가를 들었다는 이유로 서경을 받지 못했다. 이에 태종은 능력이 중요하지 집안이 무슨 문제냐고 화를 냈지만 어쩔 수 없이 그의 임명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세종도 예외가 아니었다. 1420년에 세종은 이발을 대사헌에 임명한 바 있다. 이발은 태종 때에도 대사헌으로 임명됐으나 사절단으로 명나라에 가 대량의 포물을 파는 물의를 일으킨 전력 때문에 사헌부 관리들이 그의 출근을 저지하는 투쟁 끝에 임명이 취소된 바 있다. 그런 인물을 세종이 또 임명했으니 대사헌 관리들이 그대로 받아들일 리 없었다. 또 출근 저지 투쟁이 벌어지고 세종 역시 뜻을 접어야 했다. 세종의 고집도 대단해 6년 뒤 이발을 다시 병조판서에 임명했지만 이 역시 시간원의 서경 거부로 임명을 철회해야 했다.
서경은 이처럼 왕의 독주를 견제하는 수단으로 조선 500년을 지탱할 수 있게 한 건강한 시스템이었다.
반면 왕조시대도 아닌 자유민주주의 시대에서 문 대통령은 국회 인사청문회의 부적합 지적을 받은 인물들을 “급하다”는 이유로 임명을 강행하고 있다. 그 과정에 여권 내 “교수들이 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는 덜하다”는 식의 맹랑한 후보자 감싸기 발언까지 있었다. 더욱이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에서 가장 위협이 되는 존재가 누구인지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는 인사를 야당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임명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욕속부달(欲速不達) 욕교반졸(欲巧反拙)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너무 서두르면 도리어 일이 진척되지 않고 너무 좋게 만들려다가 도리어 그대로 둔 것만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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