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공사 중단’ 통보에 분열되는 국론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선언 후폭풍이 거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부산시 기장군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원전 중심의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며 “원전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 후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대립하며 국론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 신고리 5·6호기 공사 손실 규모 약 2조6000억 추정
‘탈원전 정책’ 반대 측, 하청업체 위기·해외시장 진출 타격 주장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원전 선언과 함께 신규 원전 건설계획 전면 백지화, 원전 설계 수명 연장 중단도 선언했다. 결국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도 공사를 일시 중단했다. 하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공사 중단 여부를 둘러싸고 사회적 갈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는 문 대통령의 공약이다. 탈원전 정책은 정책소개 사이트인 ‘문재인 1번가’에서 최다 지지를 받을 만큼 인기있는 공약이었다. 특히 지난해 9월 12일 경주를 강타한 규모 5.8의 지진으로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됐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경주 일대가 지반이 불안정한 양산단층에 속해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활성단층인데 이 단층에 인접한 고리 일대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이미 고리 일대에는 고리 1∼4호기와 신고리 1·2호기 등 원전 6기가 운영되고 있다. 내년부터 상업운전에 들어갈 신고리 원전 3·4호기와 공사 중인 5·6호기까지 포함하면 한 지역에 원전 10기가 운영된다.

현재 신고리 5·6호기 공사는 작년 6월에 건설 허가를 취득한 이후에 건설 공사가 진행됐고 5월 말 기준 종합공정률이 28.8% 정도다. 지금까지 집행된 공사비만 약 1조6000억 원에 달한다.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공사가 중단될 경우에 총 손실규모가 집행된 공사비 1조6000억 원에 보상비용까지 합쳐 약 2조6000억 원일 것으로 추정했다.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중단하고 예정된 신규 원전과 석탄 화력발전소 건설을 전면 중단할 경우 27.5GW(기가와트)의 전력 설비 용량도 줄어든다.
 
공사대금 포기에
직원들 일자리 잃어

 
정부의 탈원전 정책 선언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곳은 국내 원전 관련 업체들이다. 특히 국내 원자력발전 설비시장을 이끌고 있는 두산중공업 등과 2~3차 협력사들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는 반응이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결정은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두산중공업, 삼성물산, 한화건설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전망이다. 두산중공업의 경우 발전 부문 매출이 총 매출액에서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직접적인 타격을 피할 수 없다. 또 신고리 5·6호기 공사대금 2조3000억 원 중 이미 받은 1조1000억 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포기해야 할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원전 사업이 2~3개 대기업을 필두로 수 많은 하청업체들이 참여하고 있는 사업이라는 점이다. 원전 공사 중단 결정으로 하청업체도 위기를 맞을 수 있고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가능성도 있다. 원자력 업계에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이들은 원전이 40년간 안전한 운영을 통해 값싸고 친환경적인 전력 에너지를 공급해왔고 국가 산업 발전과 수출 경쟁력 제고 등에 기여해 왔다고 역설한다. 또 신규원전 건설 중단 시 다수의 중소기업 인력 유지 및 공급망이 붕괴될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특히 세계적 원전 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국내업계가 원전 중단으로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상실할 가능성과 함께 해외시장 진출에도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파장은 더 커지고 있다.

지난 13일에는 국내 원자력산업 설계와 주기기 및 보조기기, 시공사 등 700여 원자력 공급업체들이 ‘문재인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를 통해 “중소기업만이 해낼 수 있었던 성과와 노력, 앞으로 비전을 보고 중소기업인들에게 탈원전 정책과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신규 원전 건설 계획 전면 백지화와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에 따라 기업의 불안한 미래와 회사 종사자들의 일자리 박탈 우려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충분한 공론화 과정 필요
전문가 의견 경청해야

 
원자력학계도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고 나선다. 60개 대학교 공과대학 교수 중심의 전임교수 417명이 참여한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은 지난 5일 “값싼 전기를 통해 국민에게 보편적 전력 복지를 제공해온 원자력 산업을 말살시킬 탈원전 정책의 졸속 추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숙의되지 않은 탈원전 정책 추진은 향후 민생부담 증가, 전력수급 불안정, 산업경쟁력 약화, 에너지 국부유출, 에너지 안보 위기 등을 야기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이미 2008년에 수립되어 매 5년마다 보완되는 국가 에너지 기본계획과 매 2년마다 수정되는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숙의를 통해 수정하지 않고 대통령의 선언 하나로 탈원전 계획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제왕적 조치”라고 비판했다.

성명에 참여한 교수들은 충분한 기간 동안 전문가 참여 등 공론화를 거쳐 전력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왜곡이 많은 대통령 연설문에서 드러나듯이 에너지 문제에 관해 해당 전문가들의 의견도 경청해야 한다”며 “국회 등 국가의 정상적 의사결정체계를 작동시켜 충분한 기간 동안 전문가 참여와 합리적인 방식의 공론화를 거쳐 장기 전력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자력 공학도들도 반대하기는 마찬가지다. 전국 13개 대학 원자력 관련학과 학생회가 모인 전국원자력대학생연합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탈원전 정책은 졸속 행정이 아닌 정상적인 공론화를 통해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탈원전 선진국인 독일은 원전 폐지에 대한 논의에서 탈핵을 선언하는 데까지 25년이 걸렸다”며 “스위스도 33년의 공론화 과정과 5차례의 국민투표를 거쳤다”고 말했다. 이어 “그 긴 여정에서 원자력은 물론, 각 분야 전문가들의 충분한 정보 전달이 있었기에 심층적인 담론 형성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무개념 탈원전 정책’
자유한국당 비판

 
자유한국당은 지난 13일 문재인 정부의 신고리원전 5, 6호기 공사 일시중단이 결정된 국무회의를 거론하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한국당은 ‘반헌법적 행위’라고 비판하는 동시에 졸속 원전중단 관련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현재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어제 언론에 당시 국무회의에서 원전을 일시중단 하는 데 단 3마디 말뿐이었다고 한다”며 “특히 주무장관인 산업부, 미래부 장관이 한마디도 없었다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고 말했다.

이 정책위의장은 “우리 당의 탈원전 특위 위원들은 어제 국무총리를 항의 방문했다”며 “원전중단 국무회의 결정은 위법이라는 서한을 전달하고 국회차원에서도 진상조사 필요성을 촉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 오전 국회도서관에서 에너지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졸속원전 중단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한다”며 “특히 좌파시민단체가 주장하는 탈원전 정책을 법적 근거도 없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결정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부당한 결정을 지적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태흠 최고위원도 “원전 건설은 원자력 안전법에 따라 허가 절차상 문제가 없는 한 취소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대통령의 건설 중단 지시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서 공사업체에 공사 중단을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것은 사기업침해, 헌법위반”이라고 비판했다.

김 최고위원은 “권력자인 대통령이 이런 지시를 하는 건 권력남용죄에도 해당된다”며 “한수원 사장이 법적 근거 없이 사업을 중단함으로써 기업에 손실이 발생하는 것은 배임죄에 해당하고 대통령도 배임방조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스스로 원전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한 것이고 신고리 5, 6호기 중단 결정을 할 위원회에 원전을 중단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우리 당은 국민의 이름으로 무원칙, 무개념적 탈원전 정책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탈원전·석탄 시행 시
온실가스↓ 전력수급 OK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석탄 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온실 가스는 큰 폭으로 줄어들지만 발전 비용은 약 20%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특히 태양광과 풍력 비중이 늘면서 공급 예비력이 줄어드는 등 전력 수급이 불안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정책 기조대로 원전과 석탄 비중이 대폭 줄어들고 신재생 발전량이 20%를 차지한다고 가정해 각 부분의 영향을 분석한 ‘신정부 전원구성안 영향 분석’ 보고서를 지난달 20일 펴냈다.

보고서는 신고리 5·6호기 공사가 중단되고 모든 신규 원전 건설 계획 백지화,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금지하는 등 문 대통령의 공약이 현실화된다는 가정 하에 작성됐다.

앞서 문 대통령은 공정률 10% 미만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과 수명 30년 이상 노후 석탄 조기 폐쇄, 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상향한다고 공약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원전과 석탄 비중이 대폭 줄어들고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20%로 확대될 경우, 발전 비용은 2016년 실적치 대비 약 21%(약 11조6000억 원) 증가한다.

유가가 상승할 경우 발전 비용은 큰 폭으로 늘어난다. 유가가 배럴당 70달러일 경우에는 24.2%, 100달러에서는 28.4% 증가했다.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로 치솟을 경우에는 발전 비용이 30.8%나 증가한다.

박찬국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발전비용이 20% 상승할 경우, 산업 연관분석 이용 시 물가는 1.16% 상승하고 국내총생산(GDP)은 0.93% 감소한다”고 설명했다.

전력 수급은 비교적 안정적인 공급 상황을 유지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새로운 신재생 공급 환경에서는 설비 예비력은 15%, 공급 예비율은 10.6%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태양광과 풍력 전원 비중이 높아질수록 전력 수급은 불안정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박 부연구위원은 “신재생에너지 구성이 태양광과 풍력으로만 구성될 경우 공급예비율이 6.4%까지 하락하면서 수급 불안전성이 증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온실가스 배출은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원전 발전량이 줄지만 재생에너지 발전이 증가하고 석탄발전이 대폭 줄면서 2016년 실적치 대비 4912만톤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신재생에너지의 현실적 보급 속도를 고려하고 다양한 가치들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차원에서 탈원전-탈석탄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