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귀국해 교사 시절 그린 그림

고 천경자 화백의 '무궁화'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 그녀가 세상을 떠난 지 2년여가 돼 가지만 그녀를 향한 관심은 오히려 더 커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진품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된 ‘미인도’는 지난해 검찰이 진품 결론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위작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아직도 유족 측은 항고와 기각을 오가며 ‘미인도는 위작’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녀는 떠나갔지만 그녀가 남긴 빈자리 너무나 크다.
 
꽃 속의 붉은색 맥까지 사실적으로 표현
서숙양 작가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꽃으로” 

 
지난 2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는 고 천경자 화백의 차녀 김정희 미국 몽고메리칼리지 미술과 교수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그녀는 이날 “허술한 그림 하나가 한 작가를 큰 고통으로 몰았다”며 ‘미인도’가 위작임을 주장하는 내용을 담은 ‘천경자 코드’를 출간했다.
 
꽃과 여인의 화가
사후에도 관심 조고

 
‘미인도’를 둘러싼 위작 논란은 1991년 이래 26년간 계속되고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천 화백의 그림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결론 짓고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5명을 불기소했다. 이 처분에 반발해 천 화백 유족이 항고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올해 4월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인도’를 일반에 공개했다.

김 교수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사람의 에너지와 시간·정력을 앗아가는 사건으로 비화됐다”며 “총 8명의 공동 변호인단이 한 푼을 안 받고 심지어 사비까지 털어 이 사건을 인권 침해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지원해 줬다”고 털어놨다.

공동변호인단 대표인 배금자 변호사는 ‘미인도’ 위작 논란을 “국가 권력에 의한 인권 유린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배 변호사는 “위작을 폐기하는 것이 국가·공공기관의 의무이고, 작품과 관련해 작가 의견을 가장 우선시한다”며 “이 사건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아니었다면 작가 의견에 의해 벌써 (작품이) 폐기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작가 의견을 무시하고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가 10여 가지가 넘는 부분에 대해 날조를 하는 등 조직적으로 음해가 이뤄졌다”며 “우리는 그 진실을 밝히고 짓밟힌 명예를 회복하고자 한다. 미술계 적폐를 바로잡고자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경자 코드’에서는 홍채·인중·입술·스케치선·숟가락의 비밀을 소개했다. 천 화백만이 가진 특유의 미술기법을 분석한 것이다.

천 화백의 1977년도 작품 대부분에서는 홍채가 불규칙한 점으로 촘촘히 밝혀 있는 점, 코 아래 인중이 전혀 없는 점, 입술을 U자 곡선 모양으로 의도적으로 표시하지 않은 점, 스케치선이 없는 점이 확인됐지만 미인도는 그렇지 않다고 밝혔다, 또 이번에 새롭게 밝혀진 사실로 천 화백은 여인상의 특정 부위를 숟가락으로 비비고 문지른 뚜렷한 흔적을 남겼으나 미인도에는 숟가락으로 문지른 흔적이 단 한군데도 없다고 했다.

김정희 교수는 “어머니가 성취한 모든 것들에 관해선 그림자 자리에 서고 싶고, 못다 풀고 간 한은 풀어드리고 싶다”며 하루빨리 위작 논란이 명확히 밝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화려한 색 대신
평범한 옷 입은 무궁화

 
8월 6일 천경자 화백 2주기가 다가오는 가운데 일요서울은 천 화백의 미공개작 ‘무궁화’ 사진을 입수했다.

‘무궁화’는 33.3cm×44.0cm 크기의 지본담채화다. 천 화백 화풍의 특징으로 알려진 화려한 채색 대신 무궁화 특유의 은은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살리기 위해 자연스러운 색을 쓴 것이 눈길을 끈다.

무궁화는 흰색, 연분홍색, 분홍색, 다홍색, 보라색, 자주색, 등청색, 벽돌색 등으로 다양하다. 천 화백이 그린 ‘무궁화’는 흰색 내지는 연분홍색으로 보인다. 천 화백은 꽃 중앙에서부터 밖으로 뻗어 나오는 붉은색 맥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가지나 줄기를 다른 색으로 표현한 점도 눈길을 끈다. 대부분 밝은 겨자색이지만 일부를 싱그러운 녹색으로 표현해 그림에 생동감을 불어 넣었다. 총 10여 송이의 무궁화가 그려진 작품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천 화백은 채색화를 고집한다는 이유로 수묵화 중심의 동양화단에서 오랫동안 배척당해 왔다. 실제 천 화백은 이러한 당시 분위기에 저항해 1955년 대한미협전에서 작품 ‘정’으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후 1958년까지 3년간 작품을 출품하지 않았다.
 
장미·팬지꽃 많지만
무궁화는 찾을 수 없어

 
천 화백은 ‘꽃의 화가’로 불릴 만큼 작품 속에 많은 꽃을 등장시켜 왔다. 하지만 무궁화를 소재로 한 작품은 찾기 어렵다. 천 화백은 ‘장미와 여인’ ‘화병이 된 마돈나’ 등의 작품에서도 다양한 꽃을 그렸지만 무궁화는 보이지 않는다.

1997년 천 화백은 자식처럼 여기던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일요서울은 당시 맡긴 작품 중 무궁화가 들어간 작품이 있는지 서울시립미술관에 확인을 요청했다. 미술관 측 관계자는 “주로 장미를 많이 그렸고 나리꽃, 팬지 이런 꽃들은 있지만 무궁화는 눈에 띄지 않는다”며 “저희 미술관에는 무궁화 관련 그림은 별도로 없다”고 답변했다.

천 화백이 무궁화를 그린 이유는 뭘까. 서숙양 작가는 “(천경자 화백은) 1941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그 시절의 고충과 애환이 있었을 것”이라며 “유학을 다녀온 후 (일본에서 조선인으로서 겪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그녀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무궁화 꽃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무궁화’의 현 소유자는 고위공무원 출신인 A씨다. A씨는 천경자 화백의 작품을 작고한 부친으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A씨의 부친은 과거 충청도에서 군수로 재직한 바 있으며 전라도와 경상도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A씨의 부친은 천 화백의 ‘무궁화’를 1958년 광주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지인은 ‘무궁화’에 대해 천 화백이 전남여고에서 교사로 재직할 당시 그린 그림이라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A씨의 ‘무궁화’는 지난해 2월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으로부터 진품 인증을 받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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