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 서남쪽 끝, 아기자기한 다도해의 풍경과 향긋한 문화 예술의 향기로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진도로 떠났다. 자연과 예술이 조화를 이루는 보배로운 정취들을 만나고 온 여름휴가.

 
더 이상 섬 아닌 섬이 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진도라면 쉽게 갈 수 없을 것 같은 거리감이 있었다. 차창 밖으로 안개가 내려앉은 바다가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몽환적인 풍경이 지나가고, 20여 년의 차이를 두고 지어진 두 개의 진도대교가 쌍둥이처럼 나란히 해남과 진도를 잇고 있는 모습이 펼쳐졌다.
바다 위로 서로 어깨를 포갠 섬들의 아기자기한 풍경과 위풍당당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바라보는 사이 진도에 들어섰다. 생각보다 진도는 가까이에 있었다.
 
울부짖는 거센 물살, 울돌목

진도타워와 승전광장은 이순신 장군을 도와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우리 조상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고자 조성됐다. 광장의 끝에 명량대첩을 상징하는 판옥선과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재현돼 있고, 광장을 지나 진도타워에 올라 내려다보니 섬과 섬 그리고 대교가 어우러진 경관이 아름답다.
        암초에 물살이 닿아 부서지는 소리가 마치 바다가 우는 것처럼 들린다고 해 이름 붙여진 울돌목, 그 유명한 명량해전의 장소다. 마침 세찬 물살이 울돌목을 흐르고 있었다. 빠른 물살을 거슬러 가려는 배는 좀체 앞으로 나아가질 못하는데 반대편에서 오는 배는 물살을 타고 날아갈 듯 시원하게 미끄러져 오고 있었다.

명량대첩의 현장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는 듯하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 12척의 배를 가지고 330여 척에 달하는 왜군을 상대했던 그때에도 울돌목에는 이와 같은 조수가 흘렀을 것이다. 그 이름만으로 왜군을 겁에 질리게 했던 충무공이 말한 ‘필사즉생’의 기개가 울돌목의 거친 물살에서 느껴지는 듯하다.
     울돌목을 더 가까이에서 느껴보고 싶어 대교 아래로 내려갔다. 성벽에 깃발이 펄럭이고 그 옆에는 판옥선 한 척이 자리하고 있다. 한쪽에는 유리로 된 전망대가 있어 발아래에서 거품이 일고 회오리치는 울돌목의 세기를 가늠해볼 수 있다.

가까이에서 보니 바다라기보다는 장마철 홍수로 불어난 강물에 가깝다는 생각마저 든다. 다리 아래에서 물살과 같은 방향으로 휘몰아치는 바람과 경쾌하게 부서지는 물소리를 듣고 있으니 더위가 절로 잊혀진다.

 
      구름숲에 안긴 명당, 운림산방

깊은 산골에 아침저녁으로 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마치 구름 같다 해 지어진 이름, 운림산방. 상록수림으로 덮여 있는 수많은 봉우리들 사이에 둘러싸인 운림산방에 안개가 내려앉은 모습이 포근하다.

이미 정오가 지난 시간, 오전에 내린 비 덕분에 안개구름에 떠다니는 운림산방의 풍경을 볼 수 있게 됐으니 생각지 못한 선물처럼 반갑다.  진도 출신의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이 여생을 이곳 운림산방에서 보냈다. 어린 나이부터 그림에 자질을 보였던 허련은 초의선사의 소개로 한양에서 김정희에게 그림을 배우며 그만의 화풍을 탄생시켰다.
      시, 서, 화에 모두 능했던 그에게 김정희는 소치(小痴)라는 호를 지어주었다. 원나라 사대 화백 중 한 사람인 대치(大痴) 황공망과 견줄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 조선을 대표하는 남종화의 대가로 명성을 떨치던 그는 스승 김정희가 세상을 떠나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 진도로 돌아와 첨찰산 아래의 명당인 이곳, 운림산방으로 돌아왔다.

운림산방 앞에 있는 연못 가운데에 돌을 쌓아 만든 섬이 있고 그 위에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 한 그루가 단아한 자태로 서 있다.  연못이 네모반듯하지 않고 특이하게 오각형으로 돼 있는데, 네모 안에 나무가 있는 것은 한자로 곤란할 곤자를 만들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전한다.
      연못을 한 바퀴 거닌 뒤 작은 다리를 건너 소치가 머물렀던 초가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잠시 마루에 걸터앉아 소치 선생의 시선을 그려본다. 보슬비를 머금은 정원과 산을 덮은 상록수림이 선명한 빛으로 여름을 채색하고, 상쾌한 신록의 향이 산방을 그득 채우고 있다.
 
      <Info> 진도의 예술로 승화된 유배의 한
순천에 가서는 인물 자랑하지 말고, 여수에서는 돈 자랑하지 말고, 벌교에서는 힘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진도에 와서 자랑하면 안 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서화가무다. 진도는 예로부터 완도와 함께 조선의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진도로 유배 온 선비들 중에는 학식이 뛰어나고 예술적 조예가 깊은 인사들이 많았다. 이들은 진도의 보배로운 자연 속에서 사무친 한과 외로움의 정서를 서화가무로 풀어내고 한편으로는 후학을 양성해 오늘날 진도가 예술의 고장으로 거듭나게 된데 큰 영향을 미쳤다.

주변의 또 다른 볼거리들

<남도전통미술관>
운림산방 앞에 위치한 남도전통미술관은 상설 및 기획 전시실, 글씨 및 그림 체험실 등을 갖추고 있다. ‘남도예술은행 미술품 토요경매장’이 함께 마련돼 있으며 남도예술은행은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엄선해서 매입하고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에 경매에 내놓는다.

<진도역사관>
진도 지역 고유의 역사유물을 보존하고 있는 진도역사관은 삼별초실, 유배문화실, 기획전시실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운림산방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섬 문화와 유배 문화가 어우러진 진도의 독특한 민속유산을 보존하고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조성됐다.

<삼별초공원>
삼별초공원은 자주국방의 기치를 높이고 몽골과 맞서 싸웠던 삼별초를 주제로 조성됐다. 첨찰산과 운림산방 자락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전통한옥 숙박 등 휴양·레저·체험을 함께할 수 있는 전원 공간이다. 삼별초홍보관에서는 삼별초의 활약상과 역사적 의의 등을 흥미롭게 배울 수 있다. 공원 내에는 한옥 민박 체험관과 오토캠핑장도 마련돼 있어 첨찰산의 고즈넉한 밤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다.

<소치기념관>
운림산방 한편에 있는 소치기념관으로 걸음을 옮긴다. 진도의 아름다움을 담은 소치 허련의 그림과 시는 물론 그 후손들의 작품과 업적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다. 간결해 보이지만 남종화는 그 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수묵과 여백으로 채워져 있을 뿐이지만 화폭에 담긴 인상은 깊고 넓다. 수묵으로 그린 산과 산 사이의 여백은 계곡 사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피어오르는 폭포수로, 때론 안개구름이 돼 그림 속을 흐르고, 대나무 잎의 방향은 비를 내리기도 하고 바람의 방향을 결정짓기도 하며, 죽순이 올라오는 계절을 그려 내기도 한다. 이곳에서 진품은 아니지만 추사 김정희가 그린 세한도도 감상할 수 있다.

싱그러운 상록수 향, 쌍계사

운림산방과 이웃한 쌍계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울창한 상록수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동백나무, 후박나무, 차나무 등 50여 종에 달하는 상록수와 덩굴식물들로 이루어진 상록수림은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우거져 있는데 마침 비를 맞으니 밀림 속을 연상시킨다.
    초록으로 그늘진 숲길을 따라 걷는 길에 은은하게 퍼지는 상록수의 싱그러운 향을 들이켜 본다. 쌍계사라는 이름은 절 양쪽으로 계곡이 흐른다고 해 지어진 이름. 진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쌍계사 대웅전을 지나 스님들이 참선하는 진설당과 생활하는 요사채 그리고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원통전을 차례로 둘러본다.
    한 스님이 유유히 범종각으로 걸음을 옮겨 타종을 준비한다. 절간의 종소리는 중생을 구제하는 소리로 듣는 순간 번뇌는 사라지고 지혜가 생겨나게 한다고. 종소리가 조금이라도 멀리 퍼져 나가라는 뜻인지 평지보다 높게 석축을 쌓아 그 위에 종각을 세웠다.

스님이 타종을 하는 나무를 가볍게 뒤로 당긴 뒤 무심하게 손을 놓으니 나무가 묵직하게 종을 때리며 온 산에 낭랑한 자비의 소리를 메아리치게 만든다.
 
    <Infor> 진도자연휴양림
복합 휴양시설인 진도자연휴양림이 7월 오픈했다. 거북선과 판옥선의 외관을 본뜬 숙박시설은 지역적, 역사적 특성을 반영한 것. 주요 시설물로는 아리랑고개 및 아라리터널, 숲속의 집, 야외공연장, 수생생태원, 아라리테마로드, 숲속 수련장, 탐방로 등이 있으며 산림욕장과 생태체험활동, 명상, 산책, 숲 체험활동, 테마산책 등의 프로그램이 숲과 어우러진 웰빙 휴양을 제공한다.

다도해가 빚어낸 작품, 세방낙조 전망대

중앙기상대가 ‘한반도 제일의 낙조 전망지’로 선정한 세방낙조. 진도행에 앞서 가장 기대했던 장면이 단연 세방낙조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일몰 풍경이었다.
   전망대 앞 바다에 흩뿌려져 있는 섬들 사이로 붉은 해가 넘어가는 풍경을 마주하고 싶었지만 자욱한 구름이 세방낙조를 막아섰다. 다음 날 오후 다시 세방낙조 전망대를 찾았다.

해질 무렵의 풍경은 아니지만 오밀조밀 모인 다도해가 빚어내는 풍경은 그 자체로 작품이다. 청록색의 바다 위로 섬들이 떠 있고 그 위로 흰 구름과 파란 하늘이 이어지는 대낮의 풍경. 손가락 섬, 발가락 섬, 사자 섬 등 특이 하고 재미있는 모양과 이름을 가진 섬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일도 재미있다.
   전망대에 올라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릴 적 보고 자란 동해바다와는 참 다르다. 시원스럽게 펼쳐진 동해바다가 가슴 속 답답함을 꺼내 놓도록 해준다면, 섬들로 수놓아진 이곳 바다는 허전한 가슴에 무언가를 채워주는 듯하다. 낙조는 아니었으나 다녀가지 않았더라면 후회를 남길 뻔했다.

진도의 맛

맑고 깨끗한 진도 바다에는 맛과 품질이 뛰어난 수산물이 가득하다. 진도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싱싱한 수산물로 요리한 진도 향토음식들을 소개한다.

<듬북국>
듬부기는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주로 자라는 해조류로 특히 진도에서 많이 채취된다. 진도에서는 예전부터 듬부기를 재료로 국을 즐겨 먹었으며 제사상에 올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예전만큼 수확량이 많지 않아서 손님이 오면 내놓는 귀한 음식이 됐다. 여름 듬부기는 억센 느낌이 있고 봄 듬부기가 가장 맛이 좋기 때문에 봄에 채취한 듬부기를 말려서 보관하다가 필요할 때 물에 불려 먹는다. 오돌오돌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인 듬북국은 깨끗이 손질한 듬 부기를 소머리 고아낸 국물 또는 쌀뜨물에 넣고 끓이다가 다진 파, 마늘 등의 양념을 넣고 소금 간을 해 한소끔 끓여 내 먹는다.

<간장게장과 꽃게비빔밥>
진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꽃게를 일 년 내내 잡을 수 있는 곳이다. 꽃게가 자라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꽃게의 품질도 뛰어나다. 게장은 살아 있는 암꽃게로 담근다. 암게는 살이 부드럽고 비린내가 적으며 알이 차 있어 맛이 좋기 때문. 간장게장은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살만 살살 발라서 비벼 먹으면 순식간에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울 수 있다. 꽃게비빔밥은 간장게장을 좋아하지만 딱딱한 게 껍데기와 다리 때문에 살을 발라 먹는 것을 번거로워 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추천할 만한 음식이다.

<간재미무침>
간재미무침은 얇게 저민 간재미를 막걸리나 식초로 씻은 다음 무, 오이, 미나리 등 여러 가지 야채와 함께 초고추장 양념에 버무린 향토음식이다. 간재미는 진도 근해에서 특히 많이 잡히며 청룡리 서촌에서 나는 간재미를 최고로 친다. 간재미는 홍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맛과 질감 그리고 조리법도 다르다. 가장 큰 차이점은 홍어는 숙성시켜 먹는 반면에 간재미는 신선한 상태로 조리한다는 점이다. 간재미무침은 막걸리나 진도 특산물인 홍주와 곁들여 먹으면 궁합이 좋다.

<사진=여행매거진 Go-On / 진도군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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