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TK)의 민심이 심상찮다.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았다가 욕설 봉변을 당하더니, 최근 한 여론조사기관의 TK 지역 정당 지지율 조사에선 자유한국당이 민주당, 바른정당에 크게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TK에는 여전히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 여론이 남아있다’는 한국당의 희망 섞인 추측이 사실이 돼 가는 모양새다. 특히 대법원의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 생중계 허용 결정은 이 같은 ‘TK 發 동정 여론’에 방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선에서 한국당은 TK에서조차 50% 미만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는 ‘박근혜 쇼크’로 인해 ‘패닉’에 빠진 TK 정서를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그러나 이제 TK에서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그동안의 실망과 분노를 잠식할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펼쳐진 자유한국당-바른정당 간 ‘보수 적자 경쟁’이 한창인 가운데 ‘TK 發 동정 여론’이 이들 두 보수 야당의 혈투에 마침표를 찍어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TK 發 동정 여론’… 보수 야당 혈투 ‘마침표’ 찍는다
- 朴 재판 생중계 결정, TK “해도 해도 너무한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두 보수 야당의 ‘보수 적자 경쟁’이 사실상 최종전에 들어갔다. 두 지도부가 일 년도 채 남지 않은 2018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수의 심장’ TK에서 확실한 우위 확보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지난 18일 자유한국당은 ‘TK 발전협의체’를 창립해 ‘보수 본진’의 주도권 다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금까지의 지지율 지표에서 알 수 있듯, 지지기반으로 삼아온 ‘TK 민심’ 이반(離叛)의 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협의체는 한국당 소속 TK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 김관용 경북도지사, 권영진 대구시장 등 29명이 포함된 기구다. 홍준표 대표는 창립총회에서 “모두 힘을 합쳐 TK가 선진 대한민국의 중심지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구애했다. 이철우 사무총장도 같은 자리에서 “TK에서 한국당에 대한 내리사랑이 끊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다”며 “자식이 부모에게 잘 하듯 대구·경북을 위해 무언가 해야 한다”고 밝혔다.

바른정당, TK 찾을 때마다
선명해지는 ‘배신자 낙인’


바른정당 역시 TK지역 민심을 얻기 위해 당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혜훈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총출동해 TK 민심 훑기에 나섰다. ‘보수의 심장’인 TK를 자유한국당에 내줄 경우 바른정당은 존립을 걱정할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른정당은 현재 비유승민계 의원 12인의 집단 한국당 복당으로 20석만 남은 상황이 됐다. 이는 원내교섭단체 유지에 필요한 최소 의석수인 20석과 정확히 일치하는 수로 단 한 명의 이탈자만 발생해도 원내교섭단체로서의 지위를 잃게 됨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20석으로는 여당에 곧바로 과반수를 채워줄 수량도 아니어서 목소리를 내어도 뜻이 전달되기 어렵다. 여당 입장에서는 40석의 국민의당이 ‘캐스팅 보터’이자 협치 파트너로 더 손쉽다.

바른정당 이혜훈 대표가 자유한국당에 유난히 대립각을 세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에 내몰린 바른정당이 자칫 한국당과 어중간한 거리를 유지하게 되면 한국당으로 복당할 기회만 노리는 당내 일부 의원들에게 탈당 명분을 주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외치는 ‘새로운 보수’로 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바른정당 대주주인 유승민 의원에게 씌워진 ‘배신자 낙인’과, 이를 고리로 자유한국당이 바른정당에게 ‘배신파 프레임’을 씌우고 있는 탓에 당 지도부 기대대로 민심 회복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양상이다. 이들이 가는 곳에 언제나 ‘배신자’라는 분노 섞인 외침이 들린다.

실제로 지난 19일 이혜훈 대표와 주호영 원내대표, 유승민 의원 등은 대구 중심가인 동성로 대구백화점 앞 야외무대에서 ‘대구 바른 보수 찾기’ 행사를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수십 명의 보수단체 회원들이 ‘배신자’ 구호를 외치며 바른정당 지지자들과 마찰을 빚었다. 지난 20일에도 이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 방문했다가 50여 명의 시민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어야 했다. 

심지어 지난 12일 이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권양숙 여사를 예방했을 때도 ‘배신자’ 구호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한때 TK 지역 지지율 조사에서 자유한국당에 앞섰던 바른정당이다. 그런데 최근 유난히도 이들에 대한 ‘배신자’ 구호가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분노·실망→연민·동정,
급변하는 TK 민심


이 같은 분위기는 여론조사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대구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대구·경북 지역에 거주하는 남녀 17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자유한국당(43.7%)이 민주당(24.2%)과 바른정당(10.4%)에 큰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동안의 여론조사와는 확연히 다른 결과다.

그러자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그동안 일부 관제 여론조사가 얼마나 조작되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결과라고 아니할 수 없다”며 “대선 때부터 계속된 여론조사 조작 기관의 횡포는 앞으로도 계속 기승을 부리겠지만 우리는 묵묵히 민심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갈 것”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장성호 건국대 국가정보학과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심판을 받았다는 자체가 (국면이)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TK 보수 유권자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 여론이 강할 것이라고 본다”며 “바른정당이 새로운 보수 가치를 세우려면 몇 년은 흘러야 될 것”이라고 최근 현상을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의 박근혜 전 대통령 선고 생중계 허용 결정은 TK에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연민의 정서가 급속히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TK 지역 정치권 관계자들과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를 취재한 결과에서도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원망이 주를 이루었다.

기자가 만난 TK 출신 정치권 관계자는 “인민재판으로 탄핵시킨 것으로는 분에 차지 않는 것인가”라며 “보수를 불태우겠다던 현 정권의 발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지금까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TK의 감정은 복합적이었다. 연민과 동정의 정서도 물론 있었지만 반대로 보수가 궤멸되며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킨 데 대해 분노하고 박 전 대통령이라는 사람 자체에 실망한 정서도 있었다”라며 “그러나 박 전 대통령 선고 생중계 결정으로 ‘연민’의 감정이 강하게 생길 것이다. 현 정치에 개탄하고 실망해 뒤로 물러나 있던 TK 유권자들이 정치 전면으로 나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TK 출신 관계자 역시 “정책으로 보수 적자 경쟁에 임해야 하는 게 정답이고 이상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경쟁은 ‘박근혜와 反박근혜 대리전’의 성격이 짙다”라며 “결국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여론 형성이 어떻게 되느냐가 보수 적자 경쟁의 승부처”라고 전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은 곧 있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재판 판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만약 이 부회장이 무죄 선고를 받게 되면 박 전 대통령 역시 무죄 판결까지는 아니더라도 형량이 줄어들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TK 發 동정론’은 더욱 확산될 것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文 정부의 ‘TK 홀대’,
자유한국당 집결 원동력


한편 박 전 대통령 선고 생중계 결정 외에도 최근 문재인 정부의 연이은 TK 홀대 정책은 TK 유권자들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문 정부가 공항 정책에서 TK를 완전해 배제했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고 있다. 

지난 19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대구 지역 공약 중 하나로 발표한 ‘지역사회 공동체의 합의를 통해 대구공항을 지역 거점 공항으로 육성’이라는 공항 정책에서 ‘TK를 배려하는 의지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TK 지역 정치권의 관계자는 기자에게 “지역 염원인 통합 대구공항의 성공적 이전과 관문 공항으로의 건설을 위해 대구·경북이 수차례 요구해온 ‘통합 공항’·‘이전’·‘지원’·‘관문 공항’등의 표현이 이번 발표에서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날 정부가 밝힌 부산의 공항 관련 지역공약에는 ‘동남권 관문 공항과 공항 복합도시 건설’이 포함됐다. 광주의 경우도 ‘광주 공항 이전 지원과 종전 부지에 스마트시티 조성’이란 문구를 적시했다. 명백한 지역 차별이다. 형평성에 어긋난다”며 “결국 공항 정책 분야만큼은 새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부산과 더불어민주당의 텃밭인 광주 눈치를 많이 본 것으로 읽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밖에도 문 정부의 인사에도 TK가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단적으로 국세청의 요직인 이른바 ‘빅 4’로 불리는 국세청 차장, 서울지방국세청장, 중부지방국세청장, 부산지방국세청장과 핵심 보직으로 알려진 본청 및 지방청 조사국장 자리에 TK 출신은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부자 증세’로 야당과 설전을 벌이고 있는 시점에 이 같은 문 정부의 편향된 인사는 곧 정부·여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7월 17일부터 21일까지 5일 동안 성인 25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7월 3주 차 정당 지지율 주간집계 조사 결과 문 대통령 지지율이 2주 연속 하락해 72.4%를 기록한 가운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정당 지지율도 2주째 하락하면서 50.4%의 지지율로 50%대 초반까지 떨어진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1주 만에 다시 15%선으로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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