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의 일환으로 재벌 개혁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재벌 관련 역대 정권에서 특혜와 부정부패 청산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정경유착 근절’에 대한 의지가 단호하다. 하지만 국회는 문재인 정부의 정경유착 근절 의지와는 달리 2004년 정치개혁 일환으로 폐지된 정당후원금 제도를 부활시킴으로써 사실상 기업의 정당 후원의 길을 터줬다. 이로써 여야는 국고보조금, 국회의원 후원금에 이어 정당후원금까지 국민혈세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과 기업들로부터 정치자금을 합법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됐다. 새 정부가 ‘정경유착의 근절’을 추진하고 있는 사이 여야 정치권은 스스로를 ‘정경유착의 유혹’에 노출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11년만에 여야 담합 부활, 연50억 최대100억원 모금 가능
- 시민단체 “찬반토론 5분만에… 합법,불법 다받겠다는 심산”


‘정치자금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해 중앙당 후원을 가능하도록 한 국회의원은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다. 이 법안에 서명한 여야 정치인은 김종훈(무소속)·추혜선(정의당)·이정미(정의당)·김종대(정의당)·김종민(더불어민주당)·서형수(민주당)·심상정(정의당)·윤소하(정의당)·이종걸(민주당)·김영춘(민주당) 의원 등이다. 위 법안은 6월22일 국회본회의에서 상정돼 재석의원 255명 중 찬성 233명, 반대 6명, 기권 16명으로 압도적으로 가결됐다.

노 의원은 제안 배경으로 “정당에 대한 정치자금 기부는 국민이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요한 방법으로 정당정치에 참여하고 정치적 견해를 형성·표명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자 정치적 자유권을 행사하는 주요한 수단”이라며 “하지만 현행법에는 국민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에 재정적으로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정치적 자유권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회찬, “정당 후원 금지 국민 정치적 표현 자유 침해”

이어 노 의원은 “정당이 국민들의 의사와 이익을 대변하고 국가에 전달하는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재정적으로도 국민의 동의와 지지에 의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노 의원은 헌법재판소가 지난 2015년 12월23일 정당후원회 금지는 “정당 활동의 자유와 국민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17년 6월30일까지 새 입법을 마련하도록 했다는 점도 들었다.

이에 안전행정위원회는 6월14일 노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의 정당 후원금이(연간 60억, 1인당 1000만 원) 커 자칫 정경유착의 우려가 제기되자 ‘노회찬안’을 폐기하는 대신 안행위 위원장 안으로 대체해 정자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통과된 개정안에는 창당준비위원회를 포함한 중앙당은 연간 50억 원까지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고, 선거가 있는 해는 두 배인 100억 원까지 모금할 수 있게 됐다. 한 사람당 후원금은 500만 원으로 낮췄다.

하지만 중앙당 후원금의 부활이 헌재의 불합치 판결에 따른 입법개정일 안에 법 개정이 필요했다고 하더라도 정한 기일에 임박해 그것도 정국이 인사청문회로 어수선한 가운데 ‘구렁이 담 넘어가듯’ 통과시킨 것에 대해 ‘신중하지 못했다’, ‘여론 수렴과정이 부족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개정안이 주무 상임위인 안행위에 상정돼 찬반 토론이 벌어질 당시 김부겸 안행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진행되는 도중에 이뤄져 제대로 된 찬반토론이 이뤄지기 힘들었다.

또한 6월 14일 안행위 회의록을 보면 17시3분에 개정안이 상정돼 박남춘 소위원장의 심사결과를 발표하고 유재중 위원장이 반대 토론의 시간을 줬지만 참석한 여야 의원들은 ‘없습니다’라며 이구동성으로 밝혀 찬반 토론없이 신속하게 끝났다. 개정안이 상임위 통과하는 데 걸린 시간은 6분으로 17시09분에 끝이 나고 바로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속개됐다.

무엇보다 6월 말에는 20대 국회가 역대 최악의 식물국회라는 비판이 쏟아지던 시기였다. 6월25일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에 5917건의 법안과 57개의 결의안 등 총 5999건의 안건이 상임위별로 쌓여 있었다. 여기에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추경안을 비롯해 정부조직 개편을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 재벌개혁 등을 위한 각종 경제민주화 법안이 총망라돼있다.

그러나 6월 임시국회를 열고 2번의 본회의에서 통과된 법안은 중앙당 후원회 부활을 담은 정자법 개정안이 유일하다. 국회가 파행되는 가운데에서 정당은 자기들 밥그릇 챙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나아가 정당 후원금이 폐지된 사유를 기억하고 있는 일부 여야 의원들은 “2002년 대선 때 당선 가능성이 높은 한나라당 후보에게 기업들이 줄서서 기부하는 것을 봤다”며 “줄세우기 정치나 다름없어 정당에 대한 후원금이 필요하다고 해도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오세훈법’ 역사 속으로… 여야 빈익빈 부익부 ‘심화’

정당 후원회는 1965년부터 40년 이상 운영되다 지난 2002년 16대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대기업들로부터 선거비용 명목으로 800여억 원의 돈을 받은 ‘차떼기 사건’으로 인해 2006년 폐지됐다. 정당 후원회 폐지의 근거는 일명 ‘오세훈법’으로 기업 등 법인의 정치 후원금 기탁 금지 등을 골자로 한 법을 내면서다.

한나라당 오 전 의원은 기업이 정당에 검은돈을 건네는 비리의 온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취지에서 중앙당 후원회를 폐지했다. 이로 인해 오 전 의원은 국민들로부터 ‘정치개혁의 선구자’로 인식돼 상당한 인기와 지지를 받았고 2006년 6월 서울시장선거 나서 경선과 본선에서 거물급 여야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정당 후원이 부활한 이상 오세훈법은 ‘역사 속으로’ 묻히게 됐다.

한편 이번 개정안으로 정치권은 국고보조금에다 국회의원 개인후원금 그리고 정당 후원금까지 받게 돼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총선이 있었던 2016년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 내역을 보면 자유한국당 전신인 새누리당은 171억, 민주당은 146억, 국민의당 73억, 정의당 31억 원 순이었다.

여기에 국회의원별 1인당 선거가 없는 해 1억5천만 원, 있는 해는 3억 원까지 후원금을 모집할 수 있다. 또한 정당후원금까지 받게 될 경우 정부, 국민, 기업 등 정치권에는 돈줄이 메마를 일이 없게 됐다.

특히 이번 개정안에 노회찬 의원을 비롯해 정의당 의원이 다수 참여하게 된 배경 역시 소수정당의 주머니 사정이 나아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한몫했다. 실제로 의석수별로 나눠주는 국가보조금과는 달리 진성당원이 많은 정의당이 중앙당 후원금을 많이 받은 것으로 선관위 조사결과 나타났다.

정당후원회가 폐지되기 직전인 2005년 정당 수입구조를 보면, 정당 후원금은 열린우리당 6억6000만 원, 한나라당 2억7000만 원이었던 데 비해 민주노동당은 무려 55억 원이었다.

무엇보다 친기업 성향의 자유한국당과 집권여당인 민주당에 후원금이 집중돼 소수정당과 거대정당 간 재정 격차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특히나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새정부가 적폐청산 일환으로 전정권에서 벌어진 정경유착 고리를 끊겠다고 하는 데 여야는 오히려 담합해 중앙당 후원회를 부활시켰다”며 “이는 기업들로부터 합법적으로 불법적으로 돈을 다 받겠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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