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미국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되자 미국이 난리다. 군사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매파’와 그래도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비둘기파’가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다. 언론들은 한 술 더 뜨고 있다. 아예 한국이 스스로 자국을 보호할 수 있게 내버려둬야 한다는 논조를 펴고 있다. 이른바 한국의 핵무장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한국은 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나”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을 비교적 자세하게 조명했다.

  그런데 정작 그런 북한을 코앞에 두고 있는 우리는 놀랍도록 조용하다. 그저 사드를 조기 배치하겠다느니, 핵잠수함 도입을 검토할 수 있다는 말들만 있을 뿐이다. 실제로 그렇게 할지 는 의문이다. 국민들도 안보불감증에 걸려있는 듯 북한의 핵 위협을 남의 일 보듯 한다. 그들이 ICBM을 쏘아대든 말든 아무 생각도 없는 듯하다. 걱정하는 사람만 걱정하는 것 같다. 오해하지 마시라. 그렇다고 우리 국민 모두가 그렇다는 말이 아니다. 말만 하지 않을 뿐이지 걱정하는 국민들이 많을 것이다. 다만, 겉으로 드러난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뿐이다. 

  필자는 드러내놓고 걱정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미국의 ‘호들갑’이 심상치 않다는 느낌이 든다. 괜히 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분명 이유가 있지 않을까. 

  불현듯 프랑스가 떠오른다. 1961년 프랑스는 첫 번 째 핵실험을 하려고 했다. 이 때 미국은 미국의 핵으로 안전을 보장해줄 것이라며 프랑스를 설득했다. 당시 프랑스는 핵으로 무장한 구 소련의 위협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자신들의 안위를 미국에 의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을 향해 “미국은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포기할 수 있나”라는 논리를 펴며 핵무장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미국은 프랑스의 핵무장을 용인할 수밖에 없었다. 뉴욕을 희생시키면서까지 파리를 보호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프랑스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북한으로부터 핵위협을 받고 있다. 미국은 핵으로 우리를 보호해주겠다고 늘 말해왔다. 그러나 과연 북한이 미국 본토를 때릴 수 있는 ICBM을 개발한 상황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미국이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뉴욕을 포기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자국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미국이 그럴 리 만무하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들이다. 미국이 제아무리 북한의 핵미사일이 본토에 도달하기도 전에 요격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을 갖고 있다 해도 구태여 북한 핵미사일로 미국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겠는가. 미국 국민들의 40%가 북한이 미국에 가장 위협이 되는 나라로 꼽았다는 여론조사가 이를 방증한다. 결국 우리도 프랑스가 폈던 논리대로 스스로 핵무장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WP도 지적했듯, 우리가 핵무장을 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핵무기 개발에 나서려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해야 하는데, 국제사회가 용인할지 의문이다. 더욱이 우리가 핵무기를 개발할 경우 핵 도미노 현상이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일본, 대만 등도 핵무기를 가지겠다고 아우성댈 것이고, 중국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더욱 확대할 것이다. 동북아의 군비경쟁이 그야말로 가속화될 것이 뻔하다. 미국이 이를 용납할 리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옵션은 무엇일까? 현실적으로 핵무장이 어렵다면 미국의 핵무기를 다시 한반도에 불러들이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또 미사일 방어망을 하루 빨리 구축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옵션들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국민적인 컨센서스가 필요한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안보와 관련된 문제를 놓고도 국론이 분열되어 있지 않은가. 핵무장을 해서도 안 되고, 핵미사일을 방어할 수 있는 사드를 배치해서도 안 된단다. 이것은 이래서 안 되고, 저것은 저래서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옵션은 무엇이겠는가. 적국의 핵 위협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 가만히 앉아서 그저 적국의 자비만을 바라는 것 말이다.        

  “여해(충무공 이순신의 자), 참 멀고도 험한 길이었네, 우리 백성들, 그 불어터진 발로 피 흘리며 겨우 살아서 여기까지 왔네 그려. 이제는 후학들이 그 상처 난 발을 닦아 주고 감싸 줘야 할 텐데, 또 다시 언제?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자신의?길만?보고?걸어갈까 봐?걱정일세.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어찌 오늘만의 길이겠는가.?내일의 백성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기도 한데. 가다 보면?거친 산길도?깊은 물길도?마주쳐야?할 텐데. 오늘의 길?위에서 겪은 일들을?잊지는 않을까?걱정일세.?여해,?먼 훗날?우리의 백성들이 우리가 고단하게 걸었던 이 길을 걷게 되면,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무슨 생각을 하며 걸을까.” 드라마 ‘징비록’ 마지막 회에서 류성룡이 읊조린 회한의 독백이다. 우리 정치인들, 그리고 우리 국민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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