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략적 인내’를 더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
- ‘전쟁’과 ‘평화협정’ 양극단 길 사이에 무엇이 있을까

 
북한이 또 문제다. 연일 미사일 실험을 하면서 미국 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는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을 확보했다고 주장한다. 군사전문가들은 북한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지만, 대체로 북한이 곧 그 기술을 가지게 될 거라 추측한다. 이제 북한은 핵도 가지고 있고, 그 핵을 멀리 날릴 수 있는 기술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는 북한 문제를 잊어버리고 싶어 한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란 것은 풀어 쓰자면 ‘아무것도 안 하고 기다린다’였다. 미국의 논의 테이블에 북한은 중요하게 올라오지 않았다. 심지어는 위협을 코앞에 두고 살아가는 남한사람들조차 북한을 ‘없는 것’처럼 취급하고 싶어 한다.
 
‘관심종자’ 北 ‘자해공갈 인질쇼’ 벌이다
 
북한은 그렇게 잊히지 않기 위해 골치 아픈 일들을 벌여 왔다. 의인화하면 아무에게도 관심을 못 받고 방치될 바에야 옆 테이블의 주목을 요구하며 제 손목을 긋는 관심종자와도 같다. 그러나 의인화한 비유엔 한계가 있다.
 
정치체제인 북한에겐 무기가 있기에 이 상황은 ‘자해공갈’보다는 ‘인질극’에 흡사하다. 북한은 먼저 북한인들을 인질로 잡고 있고, 무력충돌이 있을 경우 사실상 남한인들과 일본인들의 목숨도 위협할 수 있다.
 
그렇다면 ICBM의 함의는 무엇일까. 북한이 ‘북한인’과 ‘남한인’과 ‘일본인’의 목숨만 인질로 삼은 상황으로는 미국과 협상을 하기 어렵다고 보았다는 것이다. 미국은 그저 상황을 방치해왔다. 일각에선 미국에게 북한이 ‘자신들에게 무해한 군사적 핑계거리’가 되어 왔다고 분석한다.
 
중국과 러시아, 특히 중국과 동아시아에서 체스를 두는 미국은 북한 문제를 핑계로 두 군사강대국에 대한 봉쇄망을 구축해왔다고 볼 수도 있다. 요즘 문제가 되는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역시 그렇게 북한 위협보다 폭넓은 용도를 가진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북한은 이 상황을 벗어나야만 했다. 미국에게 ‘무해한 군사적 핑계거리’에서 ‘실질적 위협’으로 격상되어야 체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핵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미사일의 사거리를 늘리는 것이다. 경제력이 없는 북한은 가용자원을 극단적으로 편재하여 목표를 추구한다.
 
북한 실상을 아는 과학자들은 엉망진창인 북한의 실태에 한숨을 쉬면서 “(군사적으로 가장 첨단기술을 사용하는) ICBM을 만들 때라도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그물도 만들지 못하는 나라”라고 표현한다. 어민들에게 양질의 그물을 줄 기술도 없이 미사일 사거리란 목표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명중률도 형편없다. 2010년 북한의 대남도발인 연평도 포격 사건 등에서도 보았다. 일각에선 민간인이 아닌 군사시설을 노리려고 했는데 예전 지도를 보고 쏘았다고 옹호했지만, 북한 무기에 대해 그런 평가를 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다.
 
애초 군사시설을 정밀타격하면서 상대방의 군사력을 무력화시켜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겠다는 전술은 사실상 포기한 무기체계다.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전쟁이 날 경우 장사정포나 미사일이 날아가서 어딘가엔 떨어져 민간인을 죽일 수 있다는 엄포를 위한 무기다. 그 엄포의 범위에 미국인들을 추가하겠다는 것만이 북한의 목표다. 그러니 어딘가 우스꽝스럽고, 다시 한 번 비유한다면 ‘자해공갈’과 ‘인질극’ 사이 어딘가가 되는 것이다.
 
전쟁은 어려운 길, 평화협정엔 딜레마

 
우스꽝스럽다지만 위협은 현실이다. 가장 괴로운 게 남한 사람들이다. ICBM 정국의 결말로 사람들은 흔히 두 극단의 결말을 상정한다. 먼저 미국이 선제전쟁, 예방전쟁을 치를 거란 주장이다. 미국 상공에 핵미사일을 띄울 수 있는 무력 집단을 용납하지 않고 타격할 거란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미국을 호되게 겪은 북한은 김정은과 미사일을 각지에 산개한 지하벙커에 숨길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설령 미국이 남한인과 일본인의 목숨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지라도, 국제사회에서 일본과 남한의 경제규모는 그들이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는 결단을 쉽게 내리지 못하게 한다.
 
미사일에 굳이 핵이 실려 있지 않더라도 한국 동남해안권의 원자력발전소에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도 있고, 그리 될 경우 편서풍은 방사능 물질을 일본으로 배달한다. 사상자가 수천일 수 있지만 수십만 수백만일 수도 있고, 경제적 타격이 어느 정도일지도 쉬이 계산이 안 된다. 절대 안 된다는 장담은 못 하지만 여하간 어려운 길이다. 다만 이 경우 중국이 북한을 도와 미국과 충돌할 거란 추측은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
 
그걸 못 하니 결론은 미북 협상을 통한 평화협정일 뿐이란 사람들이 있다. 북한이 기술은 유지한 채로 핵과 ICMB을 폐기 내지 동결하며, 미국은 체제 보장을 해준다는 식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게 북한의 목표라고 한다. 북한이 IS처럼 ‘예측 안 가는 미친 사람’이 아니라 ‘합리적 정책목표를 가지고 미친 척하는 사람’이란 것이다.
 
그런데 여기가 딜레마다. 북한이 그저 ‘미친 척하는 사람’일 뿐이라면 미국에겐 평화협정이 아니라 ‘전략적 인내’의 지속이 더 낫다. 미국을 선제공격하지 못할 ICBM과 핵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굳이 평화협정이란 당근을 줄 이유가 없다.
 
그러니 북한은 미국에게 ‘실제로 미친 사람’처럼 굴면서 협상장에 끌어내야 하는데, 미국이 또 그걸 심각하게 믿으면 예방전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종종 자신이 ‘협상 가능한 합리적 대상’이란 사인도 줘야 한다. 복잡하게 꼬여 있다.
 
따라서 ICBM이란 변수가 미국의 대북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꿀지 그러지 못할지도 유동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후자로 결론 난다면 북한은 그걸 용납하지 못하고 자원을 극단적으로 편재하여 그 다음 뭔가를 하려 들 것이다.
 
그물도 못 쓰는 북한사람과 코앞의 ‘자행공갈 인질극’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남한사람이 제일 불쌍하다. 남한도 제재파와 협상파의 국내정치를 위한 무의미한 대립을 끝내고 사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실리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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