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공작·4대강·제2롯데까지…사방팔방에서 조여온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4대강 감사에서부터 시작된 구 정권 정조준이 제2롯데월드 인허가 문건, 국정원 댓글 부대 파문까지 거치면서 이 전 대통령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폐 청산’을 제1국정과제로 삼은 새 정부 기조에 따라 MB 정부 시절 여러 사건과 정책에 대한 고강도 조사가 진행되면서 이 전 대통령이 최대 위기에 빠진 형국이다.

특히 수년간 지속되던 국정원 댓글 사건 판결이 선고만 남겨두고 있는 가운데 최근 ‘원세훈 녹취록’과 ‘민간인 댓글 부대’ 운영 사실이 드러남에 따라 ‘윗선’인 이 전 대통령이 수사를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간 댓글 부대·원세훈 녹취록’ 파문…‘MB 책임론’ 고조
정치권, ‘윗선’ 李 전 대통령에 “검찰 수사 받아야” 공세
공영방송 관계자들도 ‘정권 홍보방송 전락’ 책임 MB 지목
李 전 대통령 측 부글부글 “나올 것 없다…예의 주시 중”

 
오는 30일 서울고등법원은 국정원 댓글 사건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릴 계획이다. 2013년 6월 원 전 국정원장이 기소된 지 4여년 만이다. 국정원은 2012년 18대 대선을 불과 8일 앞두고 심리전단국 직원들을 동원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게시판에 특정후보에 유·불리한 댓글을 쓴 ‘선거 개입 의혹’이 불거져 일대 파장을 일으켰다.
 
향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숱한 파장이 이어졌다. 당시 사건을 수사하던 윤석열 특별수사팀장과 이를 지휘하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돌연 좌천되거나 사퇴하는 논란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검찰이 국정원의 혐의를 입증할 주요 문서를 확보하고도 당시 수사팀에 전달하지 않고 청와대에 반납했다는 사실까지 불거진 상태다.
 
이 사건에 대한 재판 결과도 엎치락뒤치락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국정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 전 국정원장에 대해 1심은 2014년 9월 원 전 원장의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하고, 선거 개입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항소심은 2015년 2월 국정원법 위반과 함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유죄로 판단해 원 전 원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015년 7월 핵심 증거들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사건의 핵심 쟁점인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여부에 대해 ‘무죄→유죄→증거 불충분’으로 재판부의 판단은 엇갈렸다. 이런 가운데 지난 3일 국정원 적폐 청산 TF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온라인 여론 조작을 위해 최대 3500명 달하는 민간인 댓글 부대를 운영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혀 파장이 커지고 있다.
 
최근 국정원의 ‘SNS 장악 보고서’와 ‘원세훈 녹취록’이 드러난 데 이어 선거 개입 혐의를 뒷받침할 ‘결정타’가 터졌다는 분석이다. 다만 선고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이번 재판에 직접적인 증거가 되지 않더라도, 검찰이 향후 새로운 혐의 사실로 관련 수사를 진행하고 추가 기소할 경우 광범위한 국정원의 ‘불법 공작’ 행태가 나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번 국정원 적폐 청산 TF의 발표로 검찰 수사가 불가피해진 가운데 국정원이 대통령 직속기관인 만큼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수사선상에 오를 가능성이 거론된다. <세계일보>는 국정원의 ‘SNS 장악 보고서’를 보도하면서 해당 문건이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 보고됐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도 ‘MB 책임론’을 거론하며 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세금으로 민의를 왜곡하기 위한 ‘反국민’ 댓글부대를 운영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검찰의 신속한 수사를 촉구했다. 국민의당 김유정 대변인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여론 조작사건의 몸통은 이명박 청와대인 셈”이라며 이 전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천정배 국민의당 의원은 최근 YTN 라디오에 출연해 “당시 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의 개입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며 “국회 국정조사 등 국회에서 먼저 이 문제를 따져야 할 것 같고, 또 검찰 수사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4대강 ‘예비타당성 조사’
집중 감사 中

 
‘4대강 사업’도 이 전 대통령을 둘러싼 대표적 의혹 중 하나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이 사업을 ‘치적(治積)’으로 평가하지만, 최근 한 여론 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8명가량이 4대강 사업 감사를 찬성할 만큼 이 사업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감사원의 4대강 감사는 사업 당시 예비타당성 조사가 면제된 과정을 집중 감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2조 원이 투입된 4대강 사업은 핵심인 보의 설치, 준설사업 등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없이 이뤄진 바 있다.
 
기획재정부가 4대강 사업이 검토되던 2009년 3월 ‘재해예방 지원을 목적으로 시급하게 추진될 필요가 있는 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에 추가하도록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4대강 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일부러 예비타당성 조사를 생략하도록 조치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감사원은 지난달 중순 무렵 기재부로부터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당시 관련 자료들을 대거 확보하는 한편, 4대강 사업의 세부계획 수립과 설계 등 절차적인 부분에 큰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린 전 감사관들도 조사하는 등 감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감사원은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사업과 관련해 관계 부처들에 탈법·편법을 지시하는 식으로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는지 들여다볼 예정이다. 특히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손질하는 과정에서 ‘윗선’의 개입은 없었는지 등을 관계자들에게 집중 추궁할 계획이다.
 
한편, 최근 공개된 제2롯데월드 인허가 관련 문서는 이 전 대통령을 다시 의혹 대상으로 상기시켰다. 새 정부 청와대는 캐비닛 일제 점검 도중 국가안보실에서 이명박 정부 문건을 확보해 지난달 25일 공개했다. 이 중에는 2008년 서울공항 이·착륙 전투기의 안전성 문제로 논란을 빚었던 제2롯데월드 인허가 관련 문건도 포함돼 있었다.
 
국내 최고 555m 높이의 제2롯데월드타워는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숙원사업이었으나, 인근에 위치한 성남 서울공항의 전투기 이·착륙 안전 문제로 십수 년간 허가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서울공항 활주로 각도를 3도 트는 조건으로 전격 신축허가를 결정했다. 이 같은 결정이 내리지자 정경유착 의혹이 제기됐으며, 이 과정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던 공군참모총장은 임기 8개월을 앞두고 석연찮은 이유로 경질돼 논란이 불거졌다.
 
청와대는 해당 문건 이외에도 양이 많아 검토에 시간이 걸린다고 밝혀 향후에도 민감한 내용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원본은 국가기록원으로 이관하되 불법적인 내용이 나올 경우 사본을 검찰로 넘긴다는 게 청와대의 방침이다. 다만 문건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밝혀야 한다는 쪽과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변화의 바람이 닿지 않는 곳에서 ‘MB 그림자’와 싸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목을 끈다. 바로 공영방송 관계자들이다. 이들은 KBS·MBC가 추락하는 데 이 전 대통령을 ‘일등공신’으로 꼽는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 후보 시절 언론 특보를 지낸 김인규 전 KBS 사장을 비롯해 길환영 전 사장, 고대영 현 사장을 KBS를 ‘정권 홍보 방송’으로 만든 주범이라고 지목한다. MBC에 대해선 김재철 전 사장을 비롯, 안광한 전 사장, 김장겸 현 사장을 정권의 거수기 역할을 한 인물이라고 비판한다.
 
지난달 31일 KBS 14년차 이상 기자 118명은 “고대영 사장이 임명하는 보직을 전면 거부한다”는 성명을 내면서 고 사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이들은 “고대영은 사장으로 있으면서 권력에 KBS를 통째로 상납했고, 민주적 공영언론을 만들고자 헌신하는 KBS인들을 짓밟았다”며 “고대영 체제의 KBS는 정권의 애완견이 되었으며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빼앗겼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앞으로 진행할 파업과 제작 거부 등에도 적극 동참해 고대영의 퇴진과 KBS 정상화를 앞당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MBC 사정도 다르지 않다. 시사제작국 PD와 기자 30여 명은 지난달 26일 성명을 통해 “우리는 공정방송을 말살하려는 경영진의 만행을 더 이상 지켜보지 않을 것”이라며 제작 거부를 선언했다.
 
또 MBC 해직 PD 출신인 최승호 뉴스타파 앵커는 공영방송이 10여 년간 어떻게 추락했는지를 폭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을 제작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는 최근 자신의 트위터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진이 그려진 영화 메인포스터를 게재하며 “(영화를) 대박내서 KBS, MBC를 되찾고 이 분(MB)도 보내드려야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때 되면 입장 밝힐 것”
보수 야당, “정치 보복” 반발

 
이 전 대통령 측과 보수 야당은 이 같은 각종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며 정치 공세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새 정부가 임기 초 적폐 청산이란 이름으로 전방위적 조사에 착수하자 대응을 자제하면서도 강한 불쾌감을 내비치고 있다.
 
이 전 대통령 핵심 측근은 통화에서 “속으로 부글부글하지만 임기 초반이고 이후 상황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기 때문에 아직은 지켜보자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이어 “실제 조사해서 나올 게 없다고 보고 있다”면서 “지금 나서서 밝힐 단계는 아니지만 적절한 때가 되면 입장을 표명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정용기 원내수석대변인은 이날 “국정원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과거정권 파헤치기로 국정원을 정치화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국정원이 본연의 역할은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정치 보복 쇼’에 개입하는 ‘국정원의 정치화’는 안 될 것이다. 필요하다면 검찰이 수사하면 될 일”이라고 밝혔다.
 
바른정당 전지명 대변인은 “국정원의 적폐청산 의지는 환영하지만 그 미명하에 전임 대통령을 겨냥한 정치 보복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 만큼 오해를 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경고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