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 출입세·기생세·개(犬)세…시대의 창(窓) 세금 이야기

<뉴시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새 정부 출범 이후 인사와 추경 문제로 불붙었던 여야가 ‘세금 문제’를 놓고 2라운드를 펼치고 있다. 정부여당은 초고소득자와 초대기업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자는 ‘부자 증세’를 꺼내 들었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서민 부담 절감 차원에서 ‘담뱃세 인하’로 맞불을 놓았다.

이렇듯 세금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예민한 사안임에 틀림없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세원 발굴을 위해 과거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이색 세금이 존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심을 끈다.
 
일제시대부터 곳곳서 별별 세금…‘사회 흐름’ 반영 평가
건강·환경 시대 맞춰 호흡세·설탕세 등 도입…산소세 주장도

 
행정자치부가 발간한 지방세연혁집에 따르면 일제시대부터 사회 곳곳에 다양한 세금이 존재했다. 재정난에 허덕이던 지방자치단체들이 지방세목 신설 요구 등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흔적이 엿보인다.
 
일제강점기부터 도세로 가옥세, 호별세 등과 함께 입정세(入亭稅)라는 세금이 있었다. 입정세는 요정과 같은 유흥 음식점을 출입할 때 내는 세금으로, 업주들이 손님에게 1인당 일정액의 입정세를 받아 시장·군수에게 납부해야 했다. 입정세는 광복 직후 1인당 7원에서 30원으로 무려 4배 넘게 인상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요정 단골손님들의 조세 저항이 거셌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 일제강점기 때는 리어카와 인력거에 붙는 차량세도 있었다. 다만 입정세와 차량세는 6·25 전쟁 중인 1951년 6월 지방세법이 개정되면서 폐지되고 특별행위세로 대체됐다. 특별행위세에는 ‘접대부와 땐서(댄서) 또는 이와 유사한 자에 대해 부과한다’는 ‘접객인세’라는 세목도 있었다.
 
선풍기세·피아노세
“고가 물건에 부과”

 
일제시대 말기와 광복, 6.25전쟁 전후에는 지금은 생각하기 어려운 세금들이 많았다. 일제강점기 말부터 광복 직후까지 읍·면세로 ‘잡종세’라는 세금이 있었다.
 
이 세금에는 지금의 연예인들과 같은 업종에 종사하던 사람들에게 부과하던 배우세, 전봇대에 부과하는 전주세, 기생들이 납부하는 기생세, 피아노에 붙는 피아노세 등이 있었다. 선풍기에도 ‘선풍기세’라는 세목의 지방세가 부과됐다.
 
개(犬)도 세금을 피해갈 수 없었다. 축견(畜犬)세 또는 견(犬)세라는 이름의 지방세를 개를 상대로 부과했다. 1947년 당시 개 한 마리당 30원이 부과되던 견세는 이후 지방세법이 개정되면서 100원으로 급등하기도 했다. 이 같은 잡종세는 광복 이후 군정 및 과도 정부를 거치면서 모두 폐지됐다.
 
경기도 세제 담당 관계자는 “과거 세금 부과 대상을 보면 어디에 물리는 세금인지 알 수 없는 항목도 다수”라며 “선풍기와 피아노 등이 지방세 부과 대상이 되었던 것은 그 당시 흔하지 않은 고가의 물건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산소세 도입될까
시대 맞춰 이색 세금 부과

 
세금 연혁은 그 시절의 사회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기후 변화 등 환경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향후 깨끗한 공기에 세금을 물리는 날이 올 가능성도 점쳐진다.
 
칼럼니스트 하도겸 씨는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산소세’ 도입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한 언론사에 기고한 칼럼에서 “100여 ㎞의 거리를 자동차로 가면 그 대기오염을 해소하기 위해 45년생 나무 21그루가 필요하다고 한다”며 “그런 나무를 가장 많이 제공하는 곳 가운데 한 곳이 바로 강원도 평창군이다. 환경 보호와 동계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산소세 도입도 한번 고려해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세계 각국에서도 사정에 맞게 환경 개선과 건강상의 목적을 내세워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호흡세’를 매기고 있다. 모든 사람이 호흡세를 내는 것은 아니며, 베네수엘라 수도에 있는 국제공항을 이용하는 승객들에게 2014년부터 20달러의 세금을 부과한다.
 
‘공조설비 이용료’라는 이름으로 거둬들이는 이 호흡세는 공항 내 공기 정화 서비스를 제공해 승객들의 건강을 촉진시키고 환경 개선을 도모한다는 명분으로 부과되고 있다. 다만 환경과 위생 관련 시설이 좋지 않아 호흡세 부과가 적절한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설탕세’도 시대 흐름에 따른 대표적 이색 세금이다. 설탕은 비만과 당뇨, 고혈압 같은 현대사회 만성질환의 주범으로 거론돼 왔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10월 당류가 들어간 음료에 설탕세를 도입할 것을 공식 권고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 3월 ‘당류 저감 종합계획’을 발표했으나 설탕세 도입은 아직 본격 검토하지 않는 상황이다.
 
현재 설탕세를 도입했거나 도입할 예정인 나라는 영국·프랑스·멕시코 등 20여 개국이다. 멕시코에서는 2013년 말 설탕세 도입 이후 탄산음료 소비량이 7.6% 감소하는 등 도입국 대부분에서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버클리시에서도 설탕세 부과 이후 탄산음료 등의 판매량이 10%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