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꼭 예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이유를 동반하고 필연적으로 결과에 얽매인다. 개연성 사절. 감정의 흐름이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똑같이 흘러가야 할 필요는 없다. 좋아한다고 느낀다면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 그냥 당신이 좋아요 라고.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남프랑스에 가고 싶다고. 나는 ‘어째서?’나 ‘왜?’ 같은, 어정쩡한 되물음을 하지 않았다. 남프랑스에서 유추되고 환기되는 것은 처음부터 많은 것을 담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남쪽이 합쳐진 곳에서 떠올려지는 눈부시게 깊은 햇빛, 그런 공기에서 사락사락 새어 나오는 바람 또 그러한 향기. 파란 물감을 뿌려 놓은 하늘 아래에선 기분 좋은 비행을 하듯 제비가 날아다녔고, 하루 종일 뜨거웠던 해는 밤 열시가 넘어서야 서서히 분홍빛으로 물들다 졌다.

멀리서 어렴풋이 보랏빛 라벤더 향기가 났으며 곳곳에 붉은색을 띤 목수국이 풍성했던 남프랑스의 툴루즈와 몽펠리에. 또 알비와 님 그리고 퐁 뒤가르와 카르카손. 나는 그곳들이 있기에 조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고 그저 나직이 말했다. 그래, 그곳에서 조용히 걷다 보면 나는 당신이 진정 원했던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맞아 바로 그, 파란 안식 말이야.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툴루즈
 
이렇게 반짝거리며 빛나는 남프랑스에서 어울리는 말은 아니지만, 프랑스 여행에 만일 저평가라는 항목이 있다면 툴루즈는 바로 그런 분류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을 것이다. 툴루즈 여행을 마친 후 느끼는 감정.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는 곳 그리고 서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곳.
 
카피톨 광장
 
툴루즈는 흔히 ‘장미의 도시’라고 불린다. 장미가 많아서가 아니라 툴루즈에서 생산되는 붉은빛이 도는 점토로 건물을 지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실제 툴루즈의 건물은 다소 붉은 기운이 감돈다. 해가 뉘엿하게 지는 시간이면 그 장미는 더욱 진해져 발갛게 홍조를 띤다. 도시의 건물들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는 곳.

전체 인구의 25% 정도가 학생이라 어디든 젊고 밝은 에너지 또한 이 장미의 도시를 설명하는 데 충분한 이유일 것이다. 어디든 학생들이 넘치고 프랑스 특유의 자유와 활기가 가득한 곳, 카피톨 광장이 그 출발지점이다.

광장에 들어서 곧바로 툴루즈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서면 광장의 미덕인 왁자함과 분주함이 공간에 가득하고, 따뜻해진 돌바닥을 걷다 보면 그 땅에서 남 프랑스의 아늑한 온기가 전해져 온다. 그 느낌이 물론, 좋다.
 
       생 세르냉 성당
 
유럽 어디에나 종교적인 건축물들이 있지만 툴루즈가 프랑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주요 순례 도시인 까닭에 유독 고풍스럽고 동시에 아름다운 성당이 많다. Saint-Sernin, Saint Stephen’s Cathedrale 그리고 Couvent des Jacobins과 Notre Dame de la Dalbade, St-Nicolas Church. 물론 어려운 결정이지만 그 중 한 곳을 방문한다고 하면 카피톨 광장의 북쪽에 있는 생 세르냉으로. 순례길로 향하는 성당 중 가장 규모가 큰 성당인 까닭이다.
       생 세르냉의 내부는 외부에서 보이는 기하학적인 건축의 모습과 달리 놀랄 만큼 소박한 구성이다. 성당 천장 전체를 덮는 천장화도 없고 장식과 조형물도 과하지 않다. 벽은 아무런 꾸밈없이 오래전부터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듯 담담하며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빛도 유달리 엷다.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활용하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 자칫 성당의 외적 영향에 신앙심이 틀어질지도 모른다는 지도자의 엄중한 종교적 방향일까. 그래서인지 세르냉의 엄숙함은 다른 성당들과 무게감 자체가 다르며 온 공간에 경건함이 낮게 드리워져 있다.
       외부인은 미사 때 정해진 구역 이외에는 들어갈 수 없고 주변에서만 성당을 바라볼 수 있다. 테레사 수녀가 생전에 다녀갔으며 ‘죽기 전에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에 선정된 바 있는 생 세르냉. 순례자의 마음이 어린 곳.
 
      가론강
 
가론강은 피레네 산맥의 에스파냐령 아란 계곡에서 발원해 보르도를 지나 대서양으로 빠져나가는 거대한 강이다. 프랑스 4대 강 중 하나로 647km를 흘러 남프랑스와 서북 프랑스의 대지를 적신다.
      그 가론강이 처음으로 관통하는 대도시가 툴루즈로, 툴루즈의 모든 것에는 필연적으로 가론이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끼쳤음이다. 그래서 어쩌면 가론은 툴루즈와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강바람이 부는 강가는 툴루즈 사람들의 휴식 공간 그 이상이다.
      그들은 이 곳에서 무수히 많은 대화를 나누고, 서로 사랑을 전하며, 가론과 삶의 모든 것을 함께 한다. 그저 강가에 서서 가론을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의 삶이 마무리되는 곳. 밤 시간이 되면, 강가는 가론을 즐기려는 아니, 가론과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성지가 된다. 프랑스에서는 원칙적으로 길거리에서 술 마시는 행위가 금지돼 있지만 이곳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경찰들도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는다. 불상사는커녕 거대한 강이 중심이 되는 분위기에서는 모두 안전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위화감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강이 광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툴루즈의 가론강 주변. 시내 중심으로 각각 다른 모양의 교각이 운치를 더하고 다리 주변으로는 야경이 내려앉는다. 그 야경에 사람들이 포개지면서 그림을 완성한다. 이 그림의 제목이 바로 툴루즈이다.
 
 툴루즈 히든 스팟 3

▲생 텍쥐페리 숙소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어린왕자의 소설가 생 텍쥐페리는 소설가가 되기 이전에 비행교관이었다. 툴루즈는 프랑스 내 항공산업으로 가장 활발한 도시였기에 그가 툴루즈에 머물렀던 것은 당연한 일정. 역시 광장 근처에 그가 머물렀던 숙소 Grand Balcon이 있다.
 

▲카를로스 가르드
 
‘여인의 향기’ 등으로 유명한 탱고의 황제 카를로스 가르델은 툴루즈 태생이다. 어린 시절에 아르헨티나로 이주했고 세계 탱고 역사에 가장 큰 별로 손꼽힌다. 카피톨 광장 아케이드 천장화에 그를 묘사한 그림이 있다.
 

▲아세자 저택
 
르네상스 양식의 대저택으로 16세기 툴루즈 출신의 대상인 피에르 아세자에 의해 지어졌지만 정작 자신은 건물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개인용 저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화려하며 현대의 건축 작품을 보는 것처럼 모던하다.
 

<Editor’s Choice>
Au Pois Gourmand
 
내놓는 플레이팅마다 거의 작품에 가까운 경지를 선보인다. 앙트레와 메인, 디저트까지 즐거운 경험. 프랑스 남부 지방이 오리가 유명해 오리고기도 훌륭하지만 고소하고 쌉쌀한 푸아그라 메뉴가 1순위 메뉴.
 

나의 프랑스식 정원, 카르카손
 
툴루즈에서 A61 도로를 타고 내려오면 두 곳으로 갈라지는 이정표가 나온다. 몽펠리에와 바르셀로나로의 선택. 그러나 그런 고민은 이곳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카르카손, 2500년이 넘는 역사적인 성채이자 견고한 요새이며, 궁전이자 하나의 작은 왕국인 곳.

유럽의 요새들 중에서 가장 오래됐다고 알려지는, 카르카손이라는 하나의 이름만으로 완성되는 남프랑스의 마스터피스. 카르카손은 예전에는 멀리 북대서양과 지중해를 연결하고 이베리아 반도와 나머지 동쪽의 유럽 지역을 연결하는 통로였다.
   중세에는 이곳을 지키는 2중 요새로 거듭 발전해 왔으며 현재에는 파리와 몽생미셸에 이어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찾고 싶어하는 여행지 3위에 올라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절정의 성채 앞에서 그런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사실은 조금 미뤄도 좋지 않을까. 이 아름다운 왕비의 프랑스적인 기품을 느낄 수 있다면 말이다.
   성안을 일컫는 라 시테로 들어서면 곧바로 중세시대로 안착한다. 그 시대의 돌담과 돌바닥 그리고 그 당시의 모습들이 마치 이 성의 미로처럼 어른거린다. 이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운 좋게도 그 시대로의 초대장을 받은 셈. 성벽을 따라 이어지는 망루와 외벽에 촘촘히 박혀있는 작은 문틀 그리고 뾰쪽한 첨탑의 모습 등 눈에 보이는 모든 장면이 중세시대의 동화처럼 그려진다.
   따뜻한 질감의 외벽과 파란 하늘이 맞물린 모습은 이곳이 어째서 유네스코에 등재됐는가에 대한 당연한 이유.

성채의 입구인 나르보내즈문에서 반대편의 콩탈성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성 안의 성’, ‘요새 속의 요새’ 라 불리는 콩탈은 원래 이곳을 점령하고 살았던 켈트족의 거처였지만 이후 로만의 영토로 재편성된 바 있다. 2중으로 쌓은 성 벽에 안쪽으로 다시 성벽을 증축한 것으로 세계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견고한 3중 성.
당시 적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주변으로 해자가 있었으나 현재 물은 흐르지 않고 있으며 견고한 아치형 돌다리를 건너야 콩탈성으로 들어설 수 있다.
   콩탈성의 맨 위에 오르면 오드 강 너머 서북쪽으로 주황빛 카르카손의 전경이 펼쳐진다. 멋지게 숨을 한 번 쉴 수 있는 지점. 카르카손의 완성은 바로 이곳이다. 카르카손의 모습은 낮과 밤을 동시에 양분한다.

어둠 속의 성을 다시 보고 싶어 성을 나온 저녁, 파란 하늘이 물러난 후 멀리서 따뜻한 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고 있는 카르카손. 너무 아름다워 서 감히 쳐다보거나 손끝 하나조차 댈 수 없는 그대. God Save The Queen.
 
<Editor’s Choice>
 
Hotel de la Cite
 
미슐렝 성벽 안에 위치한 고풍스런 호텔로 오랜 기간 동안 이곳을 대표해왔다.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카르카손의 전경과 요새는 적당한 표현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압권이다. 곳곳에 귀족적인 기품과 자신감이 배어있지만 오히려 편한 느낌.
   
Domaine d’Auriac
 
미슐렝 원스타에 빛나는 곳으로 남프랑스 특유의 초록풍경이 함께 하는 곳. 이곳에서의 식사는 만찬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품격이 넘친다. 중세의 느낌을 유지하고 있는 격조 높은 호텔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사진=여행매거진 G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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