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지난 1일 낮 12시경 경남 창원시 진해구 한 농장 인근에 주차된 아반떼 승용차 안에서 마필관리사 A(36)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 오전 11시 50분경 행인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운 흔적을 발견했고 A씨의 핸드폰에서 가족에게 보내려고 했던 “미안하다”라는 내용의 미전송 메시지를 확인했다. A씨의 죽음은 지난 5월 27일 같은 한국마사회 렛츠런파크 부산경남지역 내 마사에서 숨진 B(38)씨와 6월 과천서울경마장에서 일하던 C씨에 이어 세 번째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 근무하는 마필관리사 노조는 이들의 죽음에 대해 열악한 근무 환경 때문이라고 비판하며 한국마사회의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주 6일 근무하는 마필관리사, 산재율 ‘평균 산재율의 28배’
정의당 경남도당 “마사회, 억압과 착취 구조 방관하지 말라”


마필관리사는 1980년대까지 마사회 소속 직원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초 경마 부정으로 사회적인 이목이 쏠리자 ‘개인마주제’로 변경했다. 개인 마주가 조교사에게 말을 위탁하고 조교사가 개인사업자로서 기수와 마필관리사를 고용하는 시스템이다. 다단계 구조다 보니 가장 밑에 있는 마필관리사들에 대한 노동착취가 심각한 수준이다.

마필관리사들은 마구간에서 배설물 청소, 먹이 주기, 말발굽 관리, 목욕, 훈련 등 많은 일을 담당하고 있다. 말을 다루다 보니 사고도 많이 발생한다. 마필관리사의 산재율은 평균 산재율의 28배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필관리사들은 주말 경주일정 때문에 주 6일 근무를 하는 경우가 많고 사고 위험성도 높다. 렛츠런파크 부산경남 마필관리사들은 기본급 135만 원 등과 경기 성적에 따른 인센티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승 상금 분배는 개별 조교사의 판단에 따라 다르게 지급돼 급여가 불안정하다. 반면 렛츠런파크 서울 사업장의 경우는 우승 상금 중 마필관리사의 몫이 일정 비율로 정해져 있어 차별 소지도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해 달라”


마필관리사들의 잇단 죽음은 다단계 고용구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이들을 관리하고 있는 한국마사회는 마필관리사들을 직접 고용에 회의적이다. 세계적인 추세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B씨 사망이후 마필관리사 노조와 마사회 측은 ‘마필관리사 처우 개선’ 등에 대해 13차례 협상을 벌여 왔으나 지난달 30일 협상은 결렬됐다.

한국마사회는 8일 ‘경영쇄신 TF’를 발족하고 한 달간 경영현안 해결책 마련과 경영쇄신을 도모할 방침이라 밝혔다. 이들은 최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이슈를 포함해 공익성·레저스포츠성 강화라는 방향에 따라 경마구조 개선, 장외발매소 운영제도 혁신, 말산업 육성 등 주요 사업 자체를 돌아보고 쇄신책을 마련한다.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마필관리사들의 죽임이 이어지자 시민단체와 정치권 등에서도 한국마사회와 고용노동부 등에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부산경실련은 지난 8일 ‘마필관리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다단계 고용구조, 즉각 개선하라’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는 “지난 1일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일하던 한 마필관리사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며 “하지만 한국마사회는 마필관리사의 잇단 죽음 앞에서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려는 의지보다, 사건을 축소하고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비판했다.

이어 “마필관리사 세 명의 안타까운 죽음은 불합리한 고용구조, 고강도와 저임금, 임금체불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기안하는 바가 크다”고 진단하고 “‘개별마주제’는 마사회, 마주, 조교사, 기수·마필관리사로 이어지는 다단계 고용구조이기 때문에 맨 아래에 있는 기수와 마필관리사는 착취를 당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부산경실련은 한국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이 270건에 달하는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을 위반했다고도 지적했다. 또 마필관리사 등 394명에게 1억 1,400만원의 임금체불을 했으며 대부분의 조교사들이 법정 연장근로시간인 주 12시간을 넘기면서까지 일했다고 밝혔다.

“마사회 구조 개혁”
“특별 감독 나가야” 목소리


정치권에서는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마필관리사 처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일 한국마사회 소속 마필관리사의 연이은 사망과 관련 “마사회의 책임을 엄하게 묻고 진상을 분명하게 밝힐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부산·경남 경마장 마필관리사 사망 사건 경과 및 정부의 대책 촉구 기자회견’을 갖고 “정권을 바꾸고 광화문에서 촛불을 든 이유는 노동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었으나 현장은 아직 차갑기만 하다. 집권여당 원내대표로서 참으로 송구하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또 우 원내대표는 “새로 출발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게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했다”며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으로서 2013년부터 마필관리사가 처한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개선하고자 노력했지만 여전히 노력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문제를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며 “우리 사회에 안타까운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문제 해결을 위해 집권당 원내대표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정의당 경남도당은 “지난 1일 부산경남 경마공원(렛츠런파크)에서 일했던 A 마필관리사의 극단적인 선택과 두 달 전 B 마필관리사의 주검이 경남 김해시청 인근 병원에 안치되어 아직까지 장례도 못 치르고 있다”며 “연이은 마필관리사의 극단적 선택과 죽음의 책임은 마사회에 그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마사회는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다단계로 구조화된 경쟁체제를 도입해 80%가 넘는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억압하고 있다”며 “말단에 있는 마필관리사가 가장 큰 부담을 질 수 밖에 없는 억압과 착취의 구조를 방관하지 말고 타 산업대비 산재율이 25배나 되는 현재의 마사회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11일 인사청문회에 나선 김영주 고용노동부 후보자도 “마사회 근로자 2명이 자살하는 사태를 보며 마사회에 특별(근로)감독을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는 자유한국당 문진국 의원의 질의에 “사회 혼란을 야기하거나 중대재해 사업장에 대해서는 반드시 특별근로감독 제도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우리나라가 그동안 산업국가 위주로 발전하다 보니 사업장의 근로감독에 대해 소홀한 측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 “부당노동행위는 근절되어야 하고 근로감독관제도로 사전예방을 하며 법을 위반하면 형사고발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김 후보자는 “일반근로감독을 못 하는 곳, 위중한 사업장은 특별감독을 해서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며 “장관이 되면 특별근로감독 제도를 활용해 노동법을 위반하거나 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올해 2월 기획재정부가 공시한 ‘2016년 공공기관 경영정보’에 따르면, 한국마사회의 연봉은 9,503만 원으로 공기업 연봉 1위였다. 하지만 마사회 직원 중 약 80% 정도가 비정규직으로 알려지면서 마필관리자 등 비정규직 해결에 소극적인 마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오두환 기자  odh@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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