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의 선승(禪僧)으로 선불교의 진흥을 위해 힘썼던 만공(滿空, 1871~1946) 스님이 1937년 마곡사(麻谷寺) 주지를 지낼 때 일화다. 조선총독부 회의실에서 열린 조선 31본산(本山) 주지회의에서 총독부가 조선불교의 일본 불교화를 주장하자 만공 스님은 한국인의 창씨개명과 일어상용 등 민족문화말살의 무단정책을 강행했던 미나미 7대 총독에게 호통을 치며 공박을 해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이 해방된 이튿날인 1945년 8월 16일. 만공 스님은 붓 대신 무궁화꽃송이에 먹물을 듬뿍 찍어 종이 위에 ‘세계일화(世界一花)’를 쓰고 제자들에게 깊은 뜻을 풀이했다. “세계일화는 한 송이 꽃이라는 말이니,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산천초목이 둘이 아니요,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인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이 조선이 세계일화의 중심이 될 것이니라.”

오늘날 세계 인류의 염원이자 소망인 지구는 한 가족, 인류는 한 형제라는 평화공존의 꿈을 71년 전의 만공 스님이 계시(啓示)했지만, 우리는 분단의 질곡(桎梏)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북핵과 미사일 앞에 국가존망지추(國家存亡之秋)의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다시 8.15 광복절을 맞으며 69년 전의 지난(至難)했던 건국 과정을 반추해 본다. 내년은 대한민국 건국 7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현재 대한민국을 떠받치는 근간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 그리고 한·미 동맹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만든 것이고, 우리는 싫든 좋든 그러한 ‘이승만 체제’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은 문화대혁명 과정에서 수천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고 나라를 파탄 낸 마오쩌둥(毛澤東)에 대해 ‘공칠과삼(功七過三)’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지금 전교조를 필두로 한 극좌파들의 ‘이승만 죽이기’ 교육의 영향으로 이승만은 폄훼 당하고 있다. 반드시 역사적 재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명지대 강규형 교수는 이승만에 대해 과보다 공이 큰 ‘공구과일(功九過一)’ 이라고 주장한다.

이승만이 우리 역사에 기여한 공(功)을 살펴보자. ‘정치 분야’에서는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대통령중심제 정부를 수립했다. ‘군사 분야’에서는 북한 침략군을 격퇴하고 국군의 규모를 ‘63∼70만 대군’으로 육성하는 데 성공했다. ‘경제 분야’에서는 농지개혁을 단행하고 한국 자본주의를 태동시켜 전후 경제 복구에 성공했다. ‘교육 분야’에서는 78%에 달하던 문맹률을 퇴치하기 위해 의무 교육제도를 도입했다. ‘사회·문화 분야’에서는 양반제도 타파, 남녀평등 교육기회 보장, 한글 전용 정책을 시행했다.

이승만은 자라나는 세대에 자유민주주의 정신을 심어주지 않으면 공산주의와의 싸움에서 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교육장전’이라 할 수 있는 ‘교육법’을 선포(1949.12.31)하고 ‘초등교육의 의무화’를 실시했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50달러 정도였지만, 이승만은 이 사업을 위해 문교부 예산의 70%를 할애했다.

무엇보다도 이승만의 업적은 ‘외교 분야’에서 그 빛을 발한다. 이승만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유엔과 미국 등 30여 개 국가로부터 승인을 받아냈다. 이후 6·25전쟁의 휴전 과정에서 미국 위정자들을 설득해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공노명 전 외교부장관은 “아이젠하워가 53년 휴전협상을 이승만에게 편지로 설득하자 그는 ‘휴전을 찬성하지는 않으나 묵인하겠다’며 세 가지 조건(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한국군의 현대화, 미 해·공군의 한국 잔류)을 내걸어 관철시켰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거저 얻은 게 아니다.”라고 증언했다.

이승만은 1965년 7월 19일 밤 하와이의 마우나라니 요양원에서 서거했고, 7월 23일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가족장’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4.19 의거로 그를 몰아낸 시민들도 시청 앞 거리로 몰려나와 울음바다를 이뤘다. 이승만은 쫓겨났음에도 “학생들이 정말 장해. 청년들의 의기가 없으면 나라가 망해”라고 했으며, 프란체스카 여사는 “내가 죽으면 태극기와 성경을 같이 관에 넣어 달라” 유언했다. 이승만은 이미 역사와 화해를 한 것이다.

한미동맹으로 자유통일의 기반을 만든 이승만은 우리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외교관이었다. 그러나 필리핀 마닐라에서 지난 6일 열린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북한의 책임에 대해서는 생략한 채 대한민국을 ‘모욕’하고 ‘협박’하는 외교적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그럼에도 강경화 외교장관은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무시하는 점, 사드 배치가 북핵·미사일에 대비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는 점을 반박하지 못했다.

중국이 사드 보복을 중단해야 한다는 말은 제대로 꺼내지도 못해 한국 외교의 무기력을 드러냈다. 북은 “천백배 보복한다”는데 문재인 정부는 대북제재는 국제사회에 맡기고 자신들은 남북관계 개선에 전력하겠다는 투 트랙에 집착하고 있다. 이는 한미동맹을 이완시키고 북·중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이다. 코리아 패싱이 점점 현실화하는 초미(焦眉)의 상황에 사드 전자파 측정도 못하는 안이한 안보의식의 정부와 무능외교의 강경화 장관은 8.15와 이승만의 건국정신을 되새겨 보길 바란다.

우종철 자하문연구소장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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