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꼭 예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은 이유를 동반하고 필연적으로 결과에 얽매인다. 개연성 사절. 감정의 흐름이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똑같이 흘러가야 할 필요는 없다. 좋아한다고 느낀다면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 그냥 당신이 좋아요 라고.

차마 돌아서지 못한 이름, 몽펠리에

카르카손에서 나와 몽펠리에로 향한다. 프랑스 남부의 랑그독 루씨옹 지방의 주도로 좀 더 지중해성 기후와 가까운 곳. 그래서 볕은 유난히 좋았고,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맑고 맛있었다. 그래서 특별히 이곳에서는 저녁이 있는 시간을 보내야 할 것. 몽펠리에를 전부 다 담고 싶다면.
코메디 광장

몽펠리에의 중심인 코메디 광장에 서면 언젠가 파리에서 느꼈던 묘한 기시감이 얼핏 주위를 감싼다. 유독 파리를 닮고 싶어했다는 몽펠리에. 프랑스 내 리틀 파리가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파리의 낭만, 파리의 무드 그리고 파리의 풍경이 몽펠리에 시내 곳곳에 아련하게 남아 있다. 코메디 광장은 1755년에 조성된 광장으로 달걀 광장이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다. 18세기와 19세기 두 번에 걸친 대형 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됐지만 새롭게 다시 세웠다.

오페라 극장 앞에는 프랑스 어디에서도 만나볼 수 있는 회전목마가 서 있고 삼미신 분수가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삼미신 분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와 부인인 에우뤼노메의 딸들인 아글라이아, 에우프로쉬네, 탈리아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유쾌함과 환희, 아름다움과 눈부신 빛 그리고 풍요와 축제. 아마도 이것이 몽펠리에를 설명하는 중요한 단서의 전부가 아닐는지.
몽펠리에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카페 Grand cafe riche를 지나 광장에서 오른쪽으로 나가면 길게 펼쳐진 플라타너스 가로수 길로 샤를 드골 공원이 이어진다. 나뭇잎은 빛에 반사돼 반짝거리고 그 사이로 햇살이 투영된다. 분수에서 나오는 물에서도 그 빛이 여울져 보이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소음이 아닌 아름다운 화음으로 들리는 순간. 프랑스의 자유 그리고 몽펠리에의 여유가 단순한 길 위에 담긴다.
급할 것 없는 시간. 이러한 남프랑스의 정취를 느끼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파브르는 물론 쿠르베, 모네, 마네와 르느와르 등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미술관 파브르 미술관은 월요일이 휴관인 관계로 문을 열지 않아 아쉽다. 하지만 그 덕에 좀 더 몽펠리에를 감상할 수 있으니 오히려 Merci Beaucoup!

개선문 그리고 몽펠리에 대성당

리틀 샹젤리제라 불리는 포슈 거리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길 끝에 개선문이 보인다. 몽펠리에 법원이 바로 옆에 있다. 루이14세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파리의 개선문을 모델로 한 리틀 개선문.
크기는 파리의 것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충분히 몽펠리에를 상징하며 프랑스관광청에 미리 예약을 하면 개선문 옥상으로 오를 수 있다. 옥상에 오르면 파란 하늘에 프랑스 삼색기가 알맞은 속도로 펄럭인다. 바람은 아래보다 좀 더 세게 불고 그 속에 이른 여름의 라벤더와 아카시아 향기가 묻어난다.

대법원 너머 오른쪽으로 몽펠리에 의대가 보이고 정면에 페이루 공원이 크게 펼쳐진다. 1180년 설립된 몽펠리에 의과대학은 프랑스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프랑스 의학이 집대성 된 중심지로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최초로 발표된 졸업식도 이곳에서의 졸업식이었다고 한다.
개선문에서 나와 다시 골목을 거닌다. 코메디 광장 주변의 골목보다 좀 더 한적한 공간. 창틀에는 작은 화분이 하나 놓여 있고 현관문을 여닫는 소리는 삐걱대지만 신경질적이지 않다.

단테, 보카치오와 더불어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문학자 중 한 명이었던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가 몽펠리에에서 머물던 당시의 집을 들른 후 이번엔 유럽 최고의 해부학 관련 박물관으로 향한다.
현재는 일반인들에게는 개방하지 않고 있을 정도로 생생한 컬렉션을 지니고 있기에 더욱 아쉽지만 14세기 중반에 최초로 세워진 웅장미 넘치는 고딕양식의 몽펠리에 생 피에르 대성당이 함께 있어 그런 마음을 충분히 누그러뜨려 준다.
페이루 왕실 광장

글쎄, 이곳을 단순한 광장이나 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데 만족해야 할까. 몽펠리에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딱히 로맨틱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프랑스의, 그러니까 몽펠리에식 낭만이 이토록 넘치는 곳을. 낮 시간에 개선문을 지나 잠시 들렸던 페이루 광장을 저녁 시간에 다시 찾았다. 공원을 나올 때까지 뒤를 돌아보며 남았던 아쉬움이 오래도록 진하게 배었기 때문이다.
늦은 저녁시간이 돼 어스름해지면 남프랑스의 하늘은 유독 분홍빛이나 보랏빛으로 물든다. 보통 이 시간에 보이는 붉은 석양과 오렌지빛 선셋 무리는 이곳에서 다른 색깔을 낸다. 몽펠리에에 내렸던 따뜻한 온도 때문에 하늘이 스스로 농도를 낮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허공에는 말끔하게 차려입은 제비 신사가 원을 그리며 활공하고 어디에서나 풍요로운 몽펠리에 사람들은 각자의 시간을 충만하게 채운다.
루이 14세 동상 뒤, 해가 지는 쪽에 물의 성이 보인다. 그리 크지 않은 크기라 성이라는 표현이 조금 과한 것도 같지만 석양이 넘어가며 드리운 빛깔이 물의 성에 닿고, 성을 무대로 사람들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번지면 지금부터 몽펠리에 야간극장은 시작. 순간적으로 모든 것이 사무치게 다가서는 순간이다.
이곳에서 할 일이란 그저 이 언덕에서 몽펠리에를 온 감각으로 느끼는 것. 바람, 석양, 이때의 향기 그리고 저녁 시간의 쓸쓸함과 동시에 저녁시간의 온화함이 모두 들어있다. 물의 성 뒤, 식수용으로 건축됐다는 생 끌레망 수로교를 넘어 완전히 해가 져서 사위가 어두워져 고요해지면 나지막하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이곳이 좋아.

샤또 드 플뢰제르그

몽펠리에는 일 년 내내 날씨가 좋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땅에 300여 일 동안 내린 축복. 프랑스 와인의 1/3은 이곳 랑그독 루씨옹에서 생산된다.
게다가 남프랑스에 왔으니 와인을 한잔 경험하는 것은 남프랑스 여행의 축복 중 하나. 샤또 드 플뢰제르그는 몽펠리에 와인의 자존심으로 오래전부터 몽펠리에의 와인을 대표해 왔다. 한국에도 진출해 있는 이 와인 생산지는 몽펠리에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위치해 있다.
자체 레스토랑을 지나면 널다란 정원을 두고 남프랑스 귀족의 저택이 자리하고 있다. 내부에는 오랜 세월 동안 내려온 가문의 문장을 비롯해 조상의 초상화 등이 이 샤또의 권위를 설명해 주지만 귀족이 흔하게 지닐 법한 허세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루이 15세와 루이 16세 시절의 웅장한 가구들과 무수한 앤티크 소품들, 일본과 중국 등지에서 콜렉팅한 도자기 그리고 입체적 이미지를 보는 데 사용되는 ‘Zograscope’라고 불리는 흥미로운 광학 장치 등이 빼곡하게 전시돼 있어 마치 하나의 개인 박물관에 들어온 것 같다.
전 세계 포도의 종류를 꼼꼼하게 그림으로 기록해 놓은 포도학 관련 책자도 이 작은 박물관의 하이라이트. 와이너리 투어를 마치고 이곳의 대표인 앙리 콜베르(Henri DE COLBERT)씨를 통해 시음회도 할 수 있으니 몽펠리에 와인을 경험해 보고 싶은 와인 애호가라면 반드시 들러야 할 중요 포인트이다.

물이 전하는 신화, 퐁 뒤 가르

몽펠리에에서 두 시간 남짓, 님을 지나 북서쪽으로 작은 마을들을 따라가다 보면 퐁 뒤 가르라는 거대한 고대 로마의 수로교를 만날 수 있다. 석회암으로 건조됐으며 50여km 떨어진 님 지역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기독교가 전파되기도 전 시기에 지어졌다.
높이 49m, 길이 275m의 3단 아치로 겹쳐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물의 다리. 우선은 이 다리를 직접 보기 전에 현실적으로 알 수 있는 간단한 설명이다. 퐁 뒤 가르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입구에 위치한 전시장에 들릴 필요가 있다.
복합관(콤플렉스)는 영상을 보여주는 멀티미디어관과 퐁 뒤 가르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 그리고 안내시설 등으로 구성돼 있어 이해를 돕는다. 전시장에서 나와 잠시 강을 따라 걷다 보면 모습을 드러내는 퐁 뒤 가르. 몽펠리에에서 본 수로는 어쩌면 퐁 뒤 가르를 위한 예고편이자 희생이었는지도 모른다.
희생이라는, 다소 무겁고 종교적인 표현을 쓴 이유는 아무래도 이 퐁 뒤 가르가 지니고 있는 건축학적, 역사적 위대함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퐁 뒤 가르의 모습은 현재 지구상에 남아 있는 다른 거대 건축물과 비교해도 전혀 그 아름다움이나 기능적인 면에서 밀리지 않는다.
고대 로마인들이 이 절정의 건축물을 짓는 데 단 5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했고, 200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거의 원형 그대로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다는 설명을 듣는다면 퐁 뒤 가르에 대한 인식은 어느새 신화로 바뀌어 곧바로 믿음이 되며, 아마 수천 년의 세월이 지난 후엔 분명히 종교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야트막한 동산을 따라 3층 높이로 오른 후 수로를 통해 반대편으로 나가면 퐁 뒤 가르 일대의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길고 어두우며 낮고 좁은 3층의 수로를 지나가는 것은 마치 피라미드를 탐험하는 것처럼 분명히 신비하고 놀라운 경험이다.

아레나 님

님에 도착해서 거리를 걷다 보면 그리고 님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고 오지 못한 사람이라면 어느 지점에서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추고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경이와 찬탄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흐름. 로마에만 있었다고 생각한 바로 그 세계인류문화유산인 콜로세움, 본토인 로마의 것보다 보존 상태가 훨씬 좋은 것을 넘어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고 있다는 님의 아레나이다.

과거 로마제국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던 남프랑스 지역에는 유난히 그 시대의 유적들이 많고 이곳 사람들 또한 자신들의 역사 속 일부라고 생각해 보존과 유지에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육중한 벽들과 돌기둥이 늘어선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입구로 들어가 콜로세움을 직접 경험하는 시간. 경기장 안에서 밖으로 이어지는 유난히 많은 출입구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보다 빠르게 드나들기 위해 고안한 디자인이었다니, 그 당시 이미 시스템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를 갖춘 그들의 아이디어에 역시 또 한 번 경이와 찬탄을 보낸다.

과거에는 물론 이곳에서 검투사들끼리 결투를 벌였다. 패배한 자가 현장에서 왕의 지시에 의해 바로 죽임을 당하는 것은 상업영화가 지닌 왜곡된 정보라는 설명이 곁들여진다. 투우의 종가인 스페인, 특히 바로 옆에 이웃한 카탈루냐 지방이 투우를 법적으로 금지시키고 있는 데 반해 아를과 이곳 님에서는 아직도 투우를 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1년에 2차례 정도 열린다.

메종 카헤 & 카헤 시립 현대 미술관

아레나에서 내려와 작은 도시 님의 골목을 따라 걷는다. 사람도 많지 않고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도시가 아니라서 한적한 공간은 오로지 걷는 사람의 몫이다.
될수록 천천히 걸어야 이 작은 도시 님의 정서를 이해할 수 있을 듯. 시내 중심인 마르셰 광장에는 님의 상징인 야자수와 악어 조형물이 있다. 과거 로마가 이집트의 나일 지역을 정복하고 난 후 나일의 대표적인 두 상징을 새긴 지폐를 발행했고, 이후 님의 상징은 악어와 야자수가 됐다.
님의 대표적인 공원인 라 퐁텐느 공원을 향해 걷다 다시 맞닥뜨리게 되는 지점. 메종 카헤라고 불리는 고대 로마의 또 다른 유적. 그 유명한 파리의 마들렌 성당에 영감을 준 건축물로 보존 상태가 너무나 좋아 2000년 전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아우구스 트 황제가 자신의 두 손자에게 주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이른바 ‘미’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이 생긴다면 ‘완벽한 보존미’라는 칭호를 받기에 조금도 아깝지 않은 신전. 하얀 대리석을 입고 말갛게 서 있는 메종 카헤의 모습은 아레나에서 느꼈던 왕의 기품이 조금 다른 형태로 표현된 그야말로 어린 왕자의 모습이다.
메종 카헤의 반대편에는 극적으로 대비되는 현대적인 모습의 카헤 시립 현대 미술관이 위치하고 있다. 현대 세계 하이테크 건축의 시초이자 세계 유수의 건축물을 도맡아 진행해 온 건축의 대가 노먼 포스터의 초기 작품으로 이 건물 이후 그의 건축 철학이 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던한 인테리어의 미술관 옥상 카페에 올라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있는 메종 카헤를 보는 시간. 남프랑스 특유의 온화한 햇빛이 메종 카헤의 대리석에 반사되어 내려앉고 님의 현대와 과거는 이 지점에서 동시에 손을 맞잡는다.

<사진=여행매거진 Go-On>

프리랜서 이곤 기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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