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임명에 따른 논란은 임명된 지 사흘 만인 8월 11일 박기영 전 본부장의 자진 사퇴로 일단락됐다. 하지만 후폭풍은 여전하다. 한마디로 ‘황우석 사태’에 연루된 박 전 본부장을 누가 추천했느냐와 사전 검증과정에서 왜 걸러내지 못 했느냐는 점이다. 두 가지 의혹이지만 핵심은 누가 추천했느냐의 문제다. 추천권자의 권력 파워에 따라 사전 검증은 종속변수이기 때문이다. 최근 여의도에서는 문 대통령이 선호한 인사가 박 전 본부장이 아닌 ‘제3의 인물을 염두에 뒀다’는 말이 돌았다. 이에 청와대 인사를 둘러싼 측근 그룹 간의 권력 다툼의 산물이 아니냐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뉴시스>

- 文대통령 ‘의중’ 박기영 아닌 유웅환 前 삼성전자 상무?
- 참여정부 ‘3철’-안희정계-신친문 3인방 권력다툼 양상


“박기영 추천한 문재인 정부의 ‘최순실’ 누구인가?”

장재연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 청와대의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임명에 날린 일성이다. 장 공동대표는 8월11일 자신의 블로그에 “박 본부장의 사과 발언 직후에도 청와대는 적임자라며 강행할 뜻을 비쳤다. 적임자라는 말을 믿는 사람은 과학계에서도 찾기 힘들 것”이라며 “대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할 것이다. 도대체 어떤 힘쎈 연줄이 이처럼 말도 안 되는 인사를 가능하게 만들까”라고 의구심을 제기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최고 권력으로의 접근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그 줄을 찾을 수밖에 없고, 그 줄은 박근혜 정권에서의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출했다. 박 본부장은 2005년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 당시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으로 있으며 연구 윤리와 연구비 관리 문제에 연루됐던 전력으로 사퇴 압박을 받아왔다.

하지만 청와대는 10일 긴급브리핑을 통해 “대통령의 말로 보면 된다”며 “과(過)와 함께 공(功)도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적극 대응했다. 하지만 박 본부장은 11일 자진사퇴 형식을 빌어 자리에서 물러났다. 박 전 본부장은 사퇴 이후에도 “난 마녀사냥의 희생물”이라며 “황우석 논문 조작 사건과 무관하다”고 글을 남겨 억울함을 토로했다.

대통령 공약도 무색하게 만든 박기영 인사

박 전 본부장의 억울함 호소는 세간의 관심을 하나로 모아지게 만들었다. 대체 누가 박 전 본부장을 추천했느냐는 점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에서는 “누가 추천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지금은 누가 추천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만 반복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명박·박근혜 정권 인사실패에 따른 대책으로 ‘인사 추천 실명제’를 약속했다.

지난 3월 방송사 토론회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노무현 정부의 인사) 시스템을 따랐다면 인사 참사가 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저는 거기에 대해 인사추천실명제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은 “인사가 잘못됐다면 책임을 지게 청와대에 남겨서 후세까지 심판을 받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박 전 본부장의 사례를 보면 이 약속을 어긴 셈이 됐다.

‘문재인 정부 최순실은 누구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한 장 공동대표는 문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날인 5월10일, 출간된 박 전 본부장의 ‘4차 산업혁명과 과학기술 경쟁력’이라는 책에 문 대통령과 안희정 충남지사의 추천사가 나란히 게재된 배경에도 의구심을 보냈다.

또한 박 전 본부장이 지난 2016년 4월 총선에서 비례대표 순위 당선권 안에 있다가 후순위로 밀려난 일도 알려지면서 추천한 인사에 대한 관심은 더 고조됐다. 박 전 본부장은 당선 안정권인 23번에 들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공천안에 따른 순위였지만 실세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하지만 이후 ‘김종인 공천안’에 반발한 당 중앙위에서 순번이 바뀌면서 당선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에 박 전 본부장 임명과 관련해 야권에서는 문 대통령이 ‘셀프 추천’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보내고 있다. 문 대통령이 참여정부 시절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등을 지내며 당시 대통령 정보통신과학기술보좌관을 지낸 박 전 본부장과 같이 청와대에서 근무했다는 인연을 들었다.

그러나 여권 내에서는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추천한 인사는 박 전 본부장이 아닌 ‘제 3의 인물’이라는 주장이 나오면서 핵심 참모 그룹 간 인사를 둘러싼 파워게임이 아니냐는 시각이 대두됐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대통령 뜻은 아니라는 말은 들었다”며 “문 대통령은 박기영 전 본부장이 아닌 유웅환 박사를 의중에 두고 있었으나 엉뚱하게 박 전 본부장이 임명됐다는 말이 있다”고 귀띔했다.

文 대통령 ‘의중’ 삼성 최연소 유웅환 상무?

유 박사는 인텔 수석매니저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최연소 상무를 지낸 인사로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캠프에 합류했다. 문 대통령은 2월23일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실리콘밸리 혁신 현장과 국내 대기업의 현실을 모두 경험한 유웅환 박사를 영입했다”며 “4찬 산업혁명 선도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영입 배경을 밝힐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

만 35세에 인텔 수석매니저에 올랐고 매킨지, 보스턴컨설팅 등 월스트리트의 여러 투자회사의 기술 자문을 해왔다. 2011년 한국으로 돌아와 삼성전자에서 모바일용 반도체 시스템 개발에 참여했고,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최연소 상무를 역임하면서 화제에 올랐다. 유 박사는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선대위 ‘새로운 대한민국위원회 4차산업 혁명분과 공동위원장’과 ‘일자리 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이에 유 박사는 새정부 초기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기도 했지만 민주당 비례대표 출신인 문미옥 전 의원에게 ‘물’을 먹으면서 야인으로 남았다. 그러다 이번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서도 박 전 본부장에게 자리를 내주게 됐다. 하지만 박 전 본부장이 ‘자진사퇴’를 한 이상 차기 후임으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문 대통령이 직접 영입한 인사가 두 차례나 물을 먹으면서 세간의 의혹처럼 측근 그룹 간 권력다툼의 산물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 됐다. 일단 박 전 본부장 추천에 영향력을 행세할 실세 그룹은 크게 3그룹으로 나뉘어진다. 1그룹은 신친문 그룹으로 임종석 비서실장,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김경수 의원이 다.

임 비서실장은 장하성 정책실장과 정의용 안보실장과 함께 장관급 최측근 인사로 정부·정책·안보 전면에 나서고 있다. 특히 임 비서실장은 청와대의 공식적 인사 추천위원회 위원장이다. 아울러 조현옥 인사수석과 조국 민정수석이 고정적인 인사추천위 멤버다.

윤 실장은 청와대 내 ‘왕비서관’으로 불릴 정도로 파워맨으로 유명하다. 특히 청와대에서는 ‘막히는 게 있으면 윤건영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나올 정도.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을 지낸 윤 실장은 2012년 대선 때부터 문 대통령 곁을 지켜온 핵심 측근이다. 국정상황실장으로 검찰·경찰·국정원 등 권력 기관의 각종 주요 정보를 매일 취합해 문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입’으로 통하는 김경수 의원은 초선이지만 역시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민주당 협치부대표를 맡아 당과 청와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당이 정부보다 큰 목소리를 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제2그룹으로 안희정 충남지사의 사람들이 박 전 본부장 인사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특히 안 지사는 지난 민주당 경선이 치열할 당시 박 전 본부장의 책 출간에 문 대통령과 함께 추천사를 써준 인연이 근거가 되고 있다. 5월10일 책이 출간됐는데 이럴 경우 통상 추천사는 탈고 후 받는다는 점에서 각별한 애정이 엿보인다. 청와대에 대표적인 안 지사 사람으로는 경선 캠프에서 대변인을 지냈던 박수현 대변인이 눈에 띈다.

박 전 본부장 인사 추천에 개입할 수 있는 제3그룹으로는 외형상 ‘2선 후퇴’한 ‘3철’을 정치권에서는 꼽고 있다.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문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린 5월10일 “제가 할 일은 다 한 듯하다”며 국내를 떠났다가 지난 6월 말 귀국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노무현 재단 부산지역위원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이 전 수석은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사업 마무리를 위해 귀국했다고 밝혔지만 그 존재감만으로도 여권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뉴질랜드로 출국한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역시 지난 7월초 아들의 군 입대를 이유로 잠시 귀국했다. 양 전 비서관은 새 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5월15일 “그 분과의 눈물나는 지난 시간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이제 저는 퇴장한다”며 국내를 떠났었다. ‘변호사 문재인’을 ‘정치인 문재인’으로 만든 ‘1등 공신’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문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박기영 사퇴, ‘책임지는’ 사람 없고, ‘쉬쉬’만

3철 중 유일하게 국회의원인 전해철 의원은 조용하게 당과 청와대의 ‘가교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도지사 출마를 준비 중이다. 문 대통령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정치적·인간적 연을 맺고 있는 3인방은 여전히 청와대 핵심 인사들과 수시로 메시지를 교환하며 막후 조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이들 3인방은 부산 출신 윤건영 국정상황실장과 ‘일정’을 담당하는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과 수시로 연락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민주당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한 관계자는 “박 전 본부장 임명에 대해 청와대 핵심 라인에서 추천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특히 참여정부 시절 근무한 인연에다 과학계 마땅한 인재가 없어서 박 전 본부장을 추천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 인사는 “하지만 인사 추천 과정에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모습은 아쉽다”며 “이는 문 대통령이 직접 인사 추천을 했거나 아니면 측근 그룹간 인사를 두고 벌어진 권력다툼이 알려질까 쉬쉬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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