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듦새와 대중성은 별개의 영역으로 봐야
- 흥행 여부 정치적 요인 갈리는 한국 영화산업 특수성


영화 <군함도>와 <택시운전사>의 희비가 엇갈린다. 역대 최고 수준의 스크린독점 논란을 일으키며 야심차게 출발했던 <군함도>는 650만 관객을 간신히 넘었고 손익분기점이라 알려진 700만 달성이 사실상 어려워 보인다. 반면 <택시운전사>는 주말 1000만 관객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택시운전사>가 천만 관객을 돌파하면 ‘역대 15번째 천만 영화’가 된다.

두 영화의 시사회 즈음을 돌이켜보면 이와 같은 격차가 발생하리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기자와 평론가들은 두 영화 모두 만듦새에 일정한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실제로 기자와 평론가 평점에서 두 영화는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다. 시사회에 나온 관객들도 일반 관객들보다는 영화를 많이 보는 층인지라, <택시운전사> 시사회 이후 반응을 보면 영화에 대한 찬탄보다는 영화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는 이들이 많았다.

‘대중에게 얼마나 먹힐까’라는 원초적 질문 필요

어쩌면 이제 영화평론가들은 비평적 시선으로 만듦새와 문제의식을 평가하는 점수 이외에도 ‘대중에게 얼마나 먹힐 것으로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별도의 점수를 매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후자의 질문에 천착한 이들이 있었다면, 두 영화의 분기점 이전에 <택시운전사>를 <군함도>와 구별해서 보는 평문이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존에 나온 비평문 중에서는 씨네21에 실린 허지웅 평론가의 글 정도가 사람들이 <택시운전사>에 눈물 흘린 이유를 정치·사회적 맥락을 보강하여 서술한다. 그러나 허지웅은 본인 역시 대중의 감수성에 공명한 것으로 보인다. 비록 다른 평론가들은 그처럼 공명하지 못할지라도, ‘대중에게 얼마나 먹힐 것으로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는 습관을 들였다면 조금 다른 글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는 영화평론가들에게만 의미를 가지는 질문은 아닐 것이다. 이를테면 정치·시사평론가들도 문재인 정부의 정책 중에서 원자력발전소 건설 중단을 제외한 나머지 정책들이 대략 60%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니 말이다. 해당 전문가집단에게 받아들여지는 것과 식자층에게 받아들여지는 것, 대중에게 받아들여지는 것들이 모두 다를 수 있는데, 이를 어떤 방식으로 예측할지를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할 수 있다.

<택시운전사>의 흥행과 별도로 <군함도>의 참패 원인을 찾는다면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군함도>의 관객 동원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이유는 영화 내적인 면에만 있는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두 영화는 출발점부터 보수 성향 시민들에게 비토를 당했다. 일부 보수 성향 시민들은 <택시운전사>엔 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한 ‘왜곡’이 있고, <군함도>엔 촛불시위 장면이 나온다며 보지 말자는 글을 퍼다 날랐다. 첨예한 정치의 시대에 두 영화 모두 극장 개봉 전부터 정치적 해석의 대상이 됐다.

정치적 해석, 그리고 우연으로 요동치는 세상

물론 그들의 비토는 <군함도>의 주요한 참패 원인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보수 성향 노년층 시민들은 영화를 자주 보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까지 극장으로 몰려 나오면 역대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순위 1,2위에 해당하는 <명량>(1761만명)과 <국제시장>(1425만명) 수준의 흥행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들의 조력 없이도 천만의 고지를 넘은 영화는 많았다. 특히 <괴물>(1301만명, 역대 4위), <광해, 왕이 된 남자>(1231만명, 역대 8위), <변호인>(1137만명, 역대 13위) 등은 맥락상 본격적으로 개혁 성향을 표방하거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결부되어 있는데도 천만을 넘었던 영화들이다.

무엇보다, <군함도>의 류승완 감독 역시 전작 <베테랑>을 통해 역대 흥행 3위의 성적인 1341만 명을 기록한 바 있다. <베테랑> 역시 앞서 언급한 영화들에 비하면 좀 더 대중적인 오락영화에 가깝지만 굳이 내용으로 정치 성향을 따지자면 개혁 성향 시민의 환상에 부합하는 바가 있었다. 

따라서 <군함도>의 하강은 보수 성향 시민의 비토가 아닌 개혁 성향 시민의 비토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봐야 한다. 개봉 초기 2000개가 넘는 상영관을 확보해서 발생한 ‘독점’ 논란은 <군함도>에 ‘기득권’의 이미지를 씌웠다. 사실 <군함도>로서는 억울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7월 26일에 개봉한 <군함도>는 일주일 후인 8월 2일에 개봉할 <택시운전사>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택시운전사>가 개봉한다면 <군함도> 및 성수기용 해외영화와 함께 ‘BIG3’를 형성하게 될 거라 봤을 것이다. 손익분기점인 700만을 넘기 위해선 <택시운전사>를 개봉하기 전 일주일 동안 최대한 관객을 끌어 모아야 한다는 판단을 했을 법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독점’ 논란 때문에 영화 외적 논란을 일으켰고 이미지를 훼손했다.

그와 동시에 내용적 측면에서도 논란이 됐다. 예고편의 욱일승천기를 찢는 장면은 ‘화끈한 반일영화’를 기대하게 했지만 이에 충분히 부합하지 못했다. ‘나쁜 조선인’의 등장은 한국인들이 혐오하는 친일파의 존재를 암시한다고 볼 수도 있는 부분이었지만 한번 개혁성향 시민들의 심기를 거스르니 “왜 ‘나쁜 일본인’을 그리지 않고 ‘조선인의 적은 조선인’으로 상정하느냐”라는 볼멘소리를 듣게 됐다.

심지어는 그간엔 젊은 층의 인기가 높은 배우였던 송중기가 탄핵 국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좋아하던 연예인으로 알려졌다는 사실조차 영화에 악재가 됐다. 이런 부분들은 <군함도>의 감독이나 제작자, 투자사 등이 예측할 수 없었던 ‘우연적 요인’으로 봐야 할 것이다.

제법 규모가 큰 영화산업조차 여러 환경적 요인들 때문에 이와 같은 우연에 큰 영향을 받는 것이 한국 사회의 실정이다. 이 역시 비단 영화산업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정치와 담론의 문제를 성찰하게 만든다. 대중의 기분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사회, 그에 따라 여러 가지가 요동치는 사회에서 여론조사 기관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한윤형 데이터앤리서치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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