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폐 위기’ 보수 단체, ‘완장 찬’ 진보 단체… 견제·균형 원칙 ‘흔들’

<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 | 고정현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시민사회단체의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보수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는 후원금이 끊겨 존폐 기로에 놓인 반면 진보 성향 시민단체는 ‘살아있는 권력’으로 비치면서 재정 후원과 가입 문의가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로 문 정부 출범 이후 사드 배치 환경평가, 탈원전, 최저임금 상승 등 보수 진영을 자극할 만한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보수단체들의 움직임은 미미한 상황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민주주의의 근간인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전 정부 때 후원금 100이라 하면 현재는 5 정도에 불과”
 
새 정부 출범 이후 보수시민단체들이 직원들을 명예퇴직시키고 문을 닫는 등 극심한 ‘보릿고개’를 겪고 있다. 전경련과 기업 등이 ‘탄핵 정국’ 이후 시민단체 지원을 사실상 중단하면서 보수 시민단체 후원금이 바싹 말라버렸기 때문이다.

한 보수단체 관계자는 “전 정부 때 받은 후원금을 100이라고 하면 현재는 5 정도에 불과하다”며 “완장 찬 ‘진보단체’의 위세가 워낙 드세다 보니 보수단체는 목숨을 부지하는 게 목표라는 말이 나돌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기업들 ‘밉보일라’ 후원 뚝…
혹독한 ‘보릿고개’

 
자유주의 이념과 민주질서 수호를 표방하는 바른사회시민회의(바른사회)는 최근 현직 상근직원 상당수가 퇴사했다. 바른사회는 보수 시민단체 중 상근직원을 두고 있는 몇 안 되는 시민단체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왔지만 정권 교체를 전후해 재정 상황이 어려워져 사무실 유지와 직원 급여 등 고정경비 부담을 줄여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바른사회 관계자는 “사무실 공간을 축소하고 상근인력을 줄이는 것이 불가피하다. 우리 단체는 기업 후원금이나 정부 지원금보다는 독지가들의 후원으로 운영되어 왔는데 후원금이 많이 줄었다”라고 말했다.
 
바른사회는 진보단체인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대척점에서 국내 간판급 보수 시민단체로 활동해 왔다. 지난 2004년에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행정수도 이전 반대, 북한 인권문제 제기 등에 앞장서며 보수세력 반대 목소리를 대변했다.
 
관제데모 의혹으로 지탄의 대상이 됐던 어버이연합은 현재 개점휴업 상태다. 어버이연합은 이화동 사무실에 입주한 지 1년 만에 또다시 다른 지역으로 사무실 이전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은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특검 조사까지 받았다.
 
지난 1997년 전경련 소속 자유기업센터로 처음 탄생한 자유경제원도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연 20억 원 지원금이 전액 삭감되면서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지난 정부에서 국정교과서 추진 등을 강하게 밀어붙이며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전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을 배출하는 등 정치권에 영향력을 끼쳐 왔지만 국정 농단 사태로 전경련 회원사가 대거 탈퇴한 데다, 현 여권에서 단체의 정치 성향을 두고 불만을 표하면서 후원금이 대폭 줄어들자 어려움에 놓였다.
 
자유경제원은 서울 마포구 마포동에 있던 사무실을 임차료가 싼 강서구 화곡동으로 규모를 줄여 이전 중이다. 직원 급여와 경비도 대폭 삭감되면서 지난해 13명이었던 직원은 5명만 남았다.
 
최승노 자유경제원장 대행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각종 사업 축소를 병행하면서 빠듯하게 연구소를 꾸릴 수밖에 없다”며 “당장 이용할 수 있는 예산은 재단 설립 때 조성된 기금의 이자수익으로, 연 2억~4억가량에 불과하다”고 푸념했다.
 
‘독기’오른 보수단체…
애국포럼 공동 개최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전 정권의 국정 농단 사태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는 평가도 있지만 건전한 비판을 제기해 온 곳들마저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견제와 균형 기능 상실을 염려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나마 대부분의 단체들이 최악의 자금난을 겪고 있음에도 기존의 활동을 이어갈 의지를 비치고 있어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제로 바른사회는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신고리 5·6호기 원전 중단, 최저임금인상 등에 대한 토론회를 잇달아 개최하며 존재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바른사회 관계자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우리 단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기존에 해왔던 활동은 계속할 것”이라고 의지를 내비쳤다.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 역시 “정부 지원이 끊긴 뒤 돈이 없으니까 활동을 접자는 얘기가 나왔지만 어르신들이 ‘10년 동안 해왔는데 무슨 소리냐. 이렇게 물러날 순 없다’. 끝까지 하자고 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지난 7일에는 애국단체총협의회, 자유회의, 나라사랑기독인연합, 국가안보포럼, 국가원로회의, 대한민국애국시민연합 등 보수 성향 시민단체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매화홀에서 애국포럼을 공동으로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북한이 불러온 한반도 전쟁위기, 내부 반미종북주의자들의 극성, 탈원전 선언, 한미·한중 외교의 긴박함, 포퓰리즘 정책의 남발로 인한 국가부채 증가, 귀족 폭력 노조의 노동시장 봉쇄 등 대한민국 정체성과 정통성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보수 단체에 지속적으로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는 시민 A씨는 “고려 말엽 포은 정몽주가 지은 시조가 생각난다”며 “비록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지만 버텨 냈으면 좋겠다. 뒤에서 응원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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