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초 독점자본주의 체제로 넘어가면서 제국주의 대열에 합류한 일본은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공급과잉 문제가 발생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품의 판매처와 값싼 원료의 공급지로서의 역할을 할 식민지가 필요했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하는 데 성공하자마자 쌀값을 내리기 위해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했고 우리나라 기업을 엄격히 통제하기 위한 회사령을 공표했다.

이후 일본은 1914년에 발발한 세계 제1차 대전의 영향으로 연 20%가 넘는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세계 대국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1929년 미국 발 세계대공황이 터지자 일본도 직격탄을 맞았다. 타개책은 식민지를 넓히는 길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일본은 1931년 만주를 공격한 뒤 1937년에는 중국까지 침공했다.

당시 일본은 중국을 쉽게 항복시킬 것으로 낙관했다. 중국에 비해 50여년 차가 나는 압도적인 국방력 때문이었다. 일본이 보유한 전투기와 군함들은 세계수준급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의 도시들은 대부분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농촌을 먹는 데는 실패했다. 여기다 서로 다투고 있던 중국 내 두 세력, 국민당과 공산당이 합작해 게릴라전을 펼쳤다. 금방 끝낼 수 있을 것으로 믿었던 전쟁이 장기전으로 접어들자 일본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군수물자의 필수품이었던 목재와 석유마저 떨어져가자 일본은 이들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인도차이나반도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필리핀이 도사리고 있었다. 필리핀은 미국의 식민지였다. 일본은 잔꾀를 부렸다. 필리핀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들을 철수시키기 위해 미국 본토와 필리핀을 연결해주는 중간 기착지인 하와이를 습격한 것이다. 일본의 예상대로 필리핀에 주둔하고 있던 맥아더 장군은 하와이로부터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어쩔 수 없이 필리핀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결국 일본은 필리핀을 손쉽게 점령했다.

그러나 일본 군부는 돌이킬 수 없는 오판을 하고 말았다. 미국이 자국과의 전면전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당시 미국은 세계 제2차 대전에 참전하지 않으면서 비(非)전쟁주의로 일관했다.

이 오판은 일본의 대재앙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일본과의 전면전을 선포하고 일본에 총공세를 퍼부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항공모함 야마모토호가 미드웨이 해전에서 침몰하면서 일본은 힘을 잃기 시작했다. 중국과의 전쟁과 미국과의 전쟁 등 전선을 2중화한 일본은 결국 미국의 나가사키,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로 항복하고 말았다.

북한군이 최근 미국령인 괌 포격시위를 하겠다고 위협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미국 본토 시험 발사 성공 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이 나오자 한반도 유사시 북한이 전쟁을 다시 일으키거나 도발을 할 경우 즉각 증원할 수 있는 전략자산들이 배치되어 있는 괌을 공격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일본이 필리핀을 점령하기 위해 하와이를 공격한 전략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북한도 한반도 유사시 미군이 즉각 증원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 괌을 포격하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이 고립되어 철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그러나 북한의 김정은이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오판할 리 만무하다. 또한 미국이 우리나라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군을 철수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점 또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괌에 대한 공격은 미국에 대한 선전포고와 같기 때문에 미국이 북한을 그냥 두지도 않을 것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왜 미국을 자극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상 우리나라의 ‘핵’ 구실을 하고 있는 주한미군의 철수를 위한 것이다. 미국을 끊임없이 자극해 핵보유국임을 인정받은 후 현재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꾼 다음, 주한미군을 철수케 하려는 것이다.

이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우리 국민들이 북한의 계속되는 핵 위협에도 무덤덤한 까닭이다. 주한미군을 우리나라의 '핵무기'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장성훈 국장  seantlc@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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