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군함도가 흥행하면서 일제의 강제 징용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최근 관련 기록물 수천 점이 공개됐다. 이는 그동안 ‘강제 징용은 없었다’는 일본 측의 주장이 거짓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15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군함도는 일본 정부의 조선인 강제 징용에 대한 사실은 감추고 자국에 유리한 부분만 부각하면서 역사를 왜곡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아베 정부가 집요한 시도 끝에 결국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데 대해 아베 신조 총리의 속내가 따로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도 제기된다.
 
지난 13일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일본 서남한국기독교회관으로부터 군함도 사진 등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 관련 기록물 사본을 기증받아 공개했다. 이 기록물은 일본 내 강제 동원 연구자로 알려진 하야시 에이다이가 수집 또는 직접 생산한 것이다.
 
그동안 일본 아베 신조 정부는 군함도의 강제동원 사실을 부인해왔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015년 군함도의 유네스코 등재 직후 “1944년 9월부터 1945년 8월 종전 때까지 사이에 ‘국민징용령’에 근거를 두고 한반도 출신자의 징용이 이뤄졌다”며 “이런 동원이 ‘강제 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은 (일본) 정부의 기존 견해”라고 말했다.
 
당시 이 같은 발언은 침략과 식민지배가 합법이었다는 일본 측 기존 주장과 왜곡된 역사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침략과 식민지배가 합법이었으므로, 그에 따른 조선인 징용이 강제노동은 아니라는 논리다.
 
스가 장관이 언급한 1944년 9월 이전에도 조선인 강제징용은 있었다.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한일 간 입장차는 1965년 체결된 기본조약에서도 해소되지 못했다. 한일 기본조약 2조는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두고 한국은 강압·불법에 의한 일제의 조약이 체결 당시부터 불법·무효라고 해석하는 반면, 일본은 ‘이미’라는 조항을 근거로 체결 당시에는 합법이었으나 ‘국교정상화 시점’부터 무효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이번 기록 공개로 ‘강제 징용’이라는 객관적 자료를 얻게 됐다. 국가기록원이 기증 받은 기록은 강제 동원된 조선인의 피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6000여 점의 문서와 사진 기록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1944년 8월~1945년 9월에 걸쳐 메이지광업소 메이지탄광(후쿠오카)이 생산한 ‘노무월보’는 당시 조선인이 처한 혹독한 노동 상황 등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된다. 1944년 8월 누계 자료는 탄광에 도착한 광부 1963명 중 1125명(약 57%)이 도주한 것으로 기록돼 강제노동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짐작케 한다.
 
하야시 에이다이가 직접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군함도 관련 사진도 여러 점 공개됐다. 군함도는 미츠비시가 1890년 사들여 개발한 해저 탄광으로 혹독한 노동조건 탓에 ‘감옥섬’, ‘지옥섬’으로 불렸다.
 
공개된 사진은 군함도 전경, 신사 및 초소, 세탄장(洗炭場), 조선인이 수용되었던 시설 등이다. 하야시 에이다이가 강제동원 피해 유족 등을 직접만나 촬영한 사진과 면담 내용도 함께 공개됐다.
 
미츠비시 사키토 탄광(나가사키) 피해자의 유족 사진에는 “부친이 면(面)순사에게 체포돼 연행된 후 1944년 병사했다는 통지를 받았다. 모친은 갑자기 가출하고 나는 친척집에 맡겨졌다. 부친의 유골은 전후(戰後) 동료가 가지고 돌아왔다”고 기록돼 있다.
 
2015년 군함도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이는 민간이 아닌 아베 총리실에서 직접 나서 추진한 일로 알려져 있다. 지난달 방영된 MBC PD수첩은 ‘강제 동원과 같은 부정적인 일을 숨기면서까지 오랫동안 철저하게 준비하고 관철시킨 진짜 이유’를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산업시설도 아닌 군함도가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는 아베 정부의 결정이 때문이었다. 아베의 정치적 고향이자 지역구인 야마구치 현에는 ‘쇼카 손주쿠’가 있다. 군함도와 함께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쇼카 손주쿠는 일종의 서당 같은 곳으로 요시다 쇼인이 야마구치 지역의 젊은 인재를 불러 모아 ‘부국강병’의 사상을 가르친 곳이다.
 
요시다 쇼인은 19세기 중엽 일본 개혁의 선봉으로, 제자들에게 ‘부국강병을 위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을 주장했다. 그 제자 가운데 한 명이 이토 히로부미다. 아베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요시다 쇼인을 지목했고, 이토 히로부미에게도 공공연하게 존경의 뜻을 밝힌 바 있다. 아베는 이들과 같은 야마구치 출신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아베의 가문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 아베의 고조부인 오오시마 요시마사는 요시다 쇼인의 제자였고,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는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내각 장관이었다. 즉 아베 정부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정치적 이념을 ‘아시아 강국 실현’으로 포장해 과거 저지른 만행을 덮으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김승은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킨 메이지의 산업 시설들은 단순히 한 사건이 아니라 아베 정권 집권 이후에 더 노골화되고 있는 일본의 아시아 침략전쟁, 아시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역사들을 지워내는 과정의 일환”이라며 “더 강한 일본, 동아시아를 지배할 수 있는 일본, (이런 식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이 되기 위해 지금 이 모든 것들이 잘 짜여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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