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안철수, 지지 기반 ‘호남­청년’ 와해 제3의 길 모색 불가피
- 유승민 대선에서 TK 미온적, 통합으로 선회하나


정치지도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명분과 원칙 고수 이미지 이외에도 고도의 책임성과 공공성이 필요하다. 일종의 필요조건이다. 이러한 자질은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갖출 수 있다. 노력만으로 갖출 수 없는 충분조건이 하나 더 있다. 언더독(Underdog) 효과를 유발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이다.

한국인들은 대부분 약자 동정심리를 갖고 있다. 한반도 역사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고구려 말고는 남의 나라에 위세를 부려본 적이 없다. 안으로 가렴주구(苛斂誅求) 등살에 기 한번 펴고 살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요즘 쟁점이 되고 있는 ‘갑’질 청산은 국민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安­劉, ‘을’ 이미지 쌓은 정치적 자산 대선 주자로 ‘갑’의 나라에 ‘을’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많은 한국인들은 정치적으로 약자를 동정한다. 약자동정심리 때문에 덕을 본 대통령도 여럿 있었다. 1997년 국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화려한 법조 엘리트 이회창은 국민 정서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

2002년 대선에서 수천억 원대 부자 정몽준이 단일화를 파기하고 나서자 의리의 선남선녀들은 자동차로 반나절을 달려 투표장에 갔다. 지금은 수감되어 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굴곡진 현대사를 관통한 데다가 구부정한 어깨, 조금은 촌스러운 올드 패션, 미혼이라는 약자 이미지가 있었다. 안철수와 유승민은 여로 모로 닮은꼴이다.

이들은 언더독 효과로 정치적 자산을 축적했고 결국 유력 대선 주자가 됐다는 점도 그렇다. 안철수의 정치 입문은 청년 멘토에서 시작됐다. 균형이 맞는 않는 외모에 어눌한 말투, 뭔가 집어줘야 할 것 같은 동정심을 유발하는 이미지가 국민 속에 먹혀들었다. 유승민은 박 전 대통령과 맞서면서 ‘을’ 이미지가 극대화됐다.

많은 국민들은 2016년 총선에서 중앙당의 공천 소식을 기다리던 초췌한 얼굴의 유승민을 기억한다. 금수저 출신인 유승민은 하루아침에 ‘지못미’의 상징이 됐다. 지난 5월 대선에서도 바른정당 의원들이 대거 탈당하면서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특히 언더독 효과가 유난히 큰 20대에서는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를 앞지르기도 했다.

최근 한국의 대선을 보면 정치 신인이나 깜짝 스타가 대선 후보가 되거나 대통령에 당선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국민 검증을 여러 차례 통과했거나, 지난 대선에서 선전했던 정치인이 유력 주자가 되고 또 대통령에 당선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2위로 낙선했다. 박 전 대통령도 당내 경선에서 한 차례 떨어진 적이 있다.

이렇게 본다면 안철수와 유승민은 홍준표와 더불어 다음 대선에서 유력 주자는 물론 대통령 당선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지기반 와해 안철수­유승민, 통합 돌파구? 유력한 차기 주자인 안철수와 유승민은 지금이 위기의 시간이다.

안철수는 지난 대선에서 제3의 후보로 21.0%를 득표하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지지기반의 와해도 동시에 겪어야 했다. 안철수는 청년과 호남의 지지로 대선 후보까지 움켜쥐었다.

그러나 청년의 지지는 초라해졌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20대 17.9%, 30대 18.0%, 40대 22.2%를 얻는 데 그쳤다. 더 이상 청년의 대표주자라고 보기 어려운 득표 수준이다. 호남에서도 광주 30.1%, 전남 30.7%, 전북 23.8%에 그쳐 전국 평균 21.0%와 큰 차이가 없었다.

유승민은 전체 득표에서 심상정을 앞서는 성과를 내기는 했지만 홀로 설 만큼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유승민은 대구에서 12.6%를 얻어 유일하게 1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했을 뿐 전국적으로 특별한 강세 지역이 없었다. 세대별 득표율에서도 19세/20대에서 13.2%를 기록했을 뿐 다른 세대에서는 10%를 넘어서지 못했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유승민은 지지기반이 없는 것을 되새긴 대선이었던 셈이다. 안철수에게 더 뼈아픈 것은 호남과 청년이 쉽게 돌아오기 어려운 여건이라는 것이다. 유승민도 마찬가지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어떻게 내려지든 간에 배신자 프레임을 쉽게 걷어 낼 수 없다.

당연히 대구·경북의 지지율 상승도 어려울 것이다. 동병상련의 안철수와 유승민의 돌파구는 과연 무엇일까. 8월 27일 국민의당 전당대회가 끝나면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논의가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들의 통합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안철수는 호남과 청년 대신 수도권 중도 보수를 선택해야 한다. 유승민도 대구·경북 대신 수도권 중도 보수로 타깃을 재설정해야 한다. 중도 보수로 두 정당 기조가 재설정되어도 여전히 남는 과제가 하나 더 있다. 국민이 안철수­유승민 정치연대에 대해서 납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국민의당은 지난 총선에서 국민의 선택으로, 바른정당은 지난해 탄핵국면에서 촛불 민심으로 생겨났다. 국민의 선택과 촛불 민심은 두 정당의 통합을 바라고 있을까. 두 정당이 또 안철수와 유승민이 위기라고 통합한다면 국민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안철수와 유승민은 이러한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설사 통합에 성공한다고 해도 결국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