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0억 시세 차익’ 수사 8개월째 표류…檢 ‘기소 의지’ 있나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주가조작 혐의로 해외 도피생활을 하다가 자수한 김석기 전 중앙종금 대표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돌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16년 동안 검찰의 수배를 받아온 그가 지난해 말 귀국해 자수한 뒤 갑자기 말을 뒤집은 셈이다. 이 때문에 수사는 장기간 표류가 예상된다. 확실한 범죄 혐의가 있어 빠른 시일 내에 기소가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많았지만, 기대와 달리 현재까지 수사는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애초에 검찰이 기소 의지를 갖고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마저 제기된다.
 
검찰에 따르면 현재 김 전 대표는 자신의 주가조작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관계자는 “본인이 자수를 하긴 했지만 현재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며 “금방 어떤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해 말 귀국한 김 전 대표를 조사한 뒤 곧바로 풀어줬는데, 이에 대해 검찰은 “도망치려고 굳이 자수서를 쓰고 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라 판단한다”며 “신속하게 수사해서 혐의에 맞는 적절한 처리를 할 예정”이라고 자신한 바 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김 전 대표의 혐의 부인으로 수사는 벽에 부딪혔다. 지난해 12월 첫 조사를 받은 후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기소 여부는 물론 구속영장 청구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 기간 검찰은 김 전 대표의 혐의 입증을 위해 한 제약사를 압수수색했다. 하지만 해당 사건과는 무관한 업무상 배임에 관한 조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에서는 기소 여부 결정이 지연되는 것을 두고 검찰의 수사 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구속수사를 하지 않은 바람에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준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기소 여부는 계속 수사 중에 있으며 신병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며 “여러 가지로 확인할 사항이 더 많다. 수사가 조금 더 길어질 것 같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김 전 대표의 신병 확보를 위해 출국금지 연장 신청을 해둔 상태다.
 
김석기 전 대표의 도피생활은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16년 동안 이뤄졌다. 그는 1999년 4월 중앙종금 대표로 선임된 지 10일 만에 인터넷 벤처기업 골드뱅크가 발행한 해외전환사채(CB)를 해외 투자자가 인수한 것처럼 속여 주가를 조작, 660억 원 상당의 시세 차익을 거둔 혐의(증권거래법 및 주식회사 외부감사법 위반 등)를 받았다.
 
이듬해 초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김 전 대표는 홍콩으로 출국했다. 검찰은 사건을 기소중지하고 수배를 내렸다. 이후 16년이 지난 지난해 8월 영국 체류 중 국내 사법당국에 의해 소재가 드러난 김 전 대표는 변호인을 통해 검찰에 자수서를 제출하고 같은 해 12월 귀국했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김 전 대표는 공항에서 바로 검찰에 체포돼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에서 수사를 받았다.
 
당시 김 전 대표는 확실한 범죄 혐의가 있는 데다, 자수 의사까지 밝혔기 때문에 곧바로 구속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현실화되진 않았다. 남부지검은 48시간 동안 조사를 마친 후 신병을 서울중앙지검으로 넘겼고, 중앙지검은 업무상 배임 등 2개 혐의로 발부받았던 체포영장을 집행해 김 전 사장을 조사하고 귀가시켰다. 검찰 수배를 받던 해외 도피자가 16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는데도 구속하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봐주기 수사’ 논란이 일었다. 김 전 대표가 검찰과 불구속 수사를 조건으로 미리 말을 맞추고 자진 귀국한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이를 의식한 검찰은 ‘봐주기는 절대 없다’며 빠른 시일 내에 기소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당시 검찰은 “체포영장 인신구속 한도인 48시간 안에 김 씨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기가 어렵고 오래된 사건이라 보완 수사의 필요성도 커 일단 돌려보냈다”며 “수사 기록을 면밀히 살펴본 뒤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이뤄지진 않았다.
 
김 전 대표에 대한 검찰의 ‘봐주기 의혹’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 외화 밀반출 혐의로 1년 동안 조사를 받았는데, 당시 검찰의 판단으로 벌금 1억 원의 약식기소에 그쳤다. 당시 검찰이 김 씨를 구속 3일 만에 풀어주고 이후 사건을 해를 넘겨 끌다가 약식기소한 것은 ‘지나친 선처’라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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