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 취하다 ‘역할론’ 대두하면 전면 나설 예정

<뉴시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한국 여성 최초로 국무총리를 지냈으나 전직 총리 중 유일하게 옥살이를 한 인물. 한명숙(73) 전 총리가 지난 23일 만기 출소했다. 2015년 8월 24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수감된 지 2년 만이다.

당시 숱한 논란을 뿌리며 수감된 그가 다시 돌아오자 정치권 공방이 재점화되는 모양새다. 그는 당분간 건강을 돌보면서 휴식을 취할 계획으로 알려진 가운데 향후 어떤 정치적 역할을 하게 될지 세간의 관심이 쏠린다.
 
김상희 의원, “복당 하면 상임고문 맡게 될 듯”
당시 사법 판단 놓고 정치권 공방 재점화

 
한 전 총리는 형량을 채운 뒤 막 출소한 만큼 당분간 건강을 추스르면서 정치권과 거리를 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이후 행보에 대해선 정치권 안팎에서 여러 가지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정권이 교체되면서 정치적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 임기 내에는 전면에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서양호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반대 진영에서 정권을 잡았다면 정치적 희생양이나 탄압의 상징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지금은 그런 시기가 아니다”라며 “현안과 거리를 두고 정치적 원로로서 상징적 역할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엄경영 데이터앤리서치 소장은 “곧바로 활동을 재개하면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정권 차원에서 부담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적극 행보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한 전 총리 측 주변에서는 그의 정치적 역할론이 대두하면 한 전 총리가 ‘결심’해 전면에 나설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문희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향후 당이나 국정 전반에 걸쳐 차출될 기회가 올지는 모르겠으나, 꼭 나와야 된다고 판단하면 그 분은 들어앉을 분은 아니다”라며 “지금까지 치열하게 현대사에서 중심적으로 무슨 일이던지 다 했기 때문에 해야 될 일이 있으면 나가서 할 분”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을 탈당한 한 전 총리가 복당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상희 의원은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가 (앞으로) 어려운 시기가 생길 텐데 정치적으로 이 같은 국면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많은 역할이나 조언 등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혹은 당정 관계에서도 집권여당 총리를 지낸 당의 선배로서 역할을 해 주실 것”이라며 “복당은 하셔야 되고, 하시면 상임고문 등을 자동적으로 맡게 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장관 두 차례 女총리까지 ‘비상’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추락’

 
한 전 총리는 여성운동을 하다 199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16대 비례대표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2001년 여성부 초대 장관에 오른 한 전 총리는 호주제 폐지와 육아휴직 급여 도입 등을 주도했다.
 
2003년 참여정부 출범 이후엔 환경부 장관을 지냈고, 2006년 3월 한국 여성 최초로 총리직에 올랐다. 1년 뒤인 2007년 3월 총리직에서 내려온 그는 17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면서 당시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경선에 나섰다. 하지만 친노 진영에서 정동영·손학규 후보에 맞서 단일화해야 한다는 압박이 거세지자 한 전 총리는 후보직을 사퇴한 뒤 이해찬 후보를 도왔다.
 
이후 그는 서서히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거듭된 낙선과 검찰 칼날이 들이닥친 것이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경기 고양 지역에 출마했으나 고배를 마셨으며, 2010년 6월엔 민주당 후보로 서울시장직에 도전했지만 오세훈 후보에 0.6%(2만표) 차이로 석패했다.
 
한 전 총리는 정치자금 수수와 관련해 두 건의 재판을 받았다. 총리 시절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에게 인사청탁 대가로 5만 달러를 받았다는 뇌물 혐의로 2009년에 기소됐고, 이 재판이 진행되던 도중 건설업자 한만호 씨로부터 9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10년 재판에 넘겨졌다.
 
곽 전 대한통운 사장 사건은 1,2심에 이어 2013년 대법원에서도 무죄 판결이 났다. 그러나 두 번째 사건은 1심에서 무죄가 나왔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하며 뒤집혔다. 2015년 8월 대법원도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고, 한 전 총리는 같은 달 24일 구치소에 수감됐다. 실형 선고로 피선거권이 박탈된 한 전 총리는 복권되지 않는 이상 향후 10년간 공직을 맡거나 선거에 나설 수 없게 됐다.
 
“정치 탄압 vs 新적폐”
논란 계속 이어질 듯

 
당시 한 전 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를 둘러싸고는 논란이 존재했다. 특히 두 번째 사건의 수사가 시작된 시점이 첫 번째 사건의 1심 무죄가 선고된 2010년 4월 9일 바로 직전이었다는 점에서 검찰의 표적 수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명박 정권이 노무현 전 대통령 추도식 때 추모사를 낭독한 한 전 총리에 대해 정치보복을 했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기도 했다.
 
한 전 총리가 지난 23일 만기 출소 후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당시 검찰과 사법부의 판단을 두고 정치권에서 다시 날선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여당에서는 한 전 총리가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재판부의 잘못된 결정으로 인해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재심’ 이야기도 나오는 상황이다.
 
김상희 의원은 “재판 과정을 쭉 지켜봐왔던 사람으로서 (한 전 총리가) 결백하다고 생각한다”면서 “항소심에서 1심을 뒤집을 만한 어떠한 증거도 없었다. 왜 그런 판결을 내렸는지 납득이 안 된다”라고 했다.
 
반면 야당은 이에 대해 사법부 판단을 불복하고 불신을 조장하는 ‘후안무치’한 발언이라며 이를 ‘신(新)적폐’라고 규정했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24일 오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사법부의 권위와 법을 무시하는 염치없고 부끄러움 없는 후안무치한 태도가 바로 신적폐”라고 비난했다.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기소도, 재판도 잘못됐다”고 비판한 데 대해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무책임한 발언으로 구악 중의 구악”이라고 일침을 날렸다.
 
한 전 총리 재판을 둘러싼 논란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 사건과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등을 계기로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재판부 독립 등에 관한 본격 사법 개혁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김현 민주당 대변인은 통화에서 “검찰의 기소 독점 및 남용으로 인해 억울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 장치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는 “정말로 한 전 총리의 재판이 잘못된 것이라 믿는다면 (여당이) 국정조사를 제안하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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