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사망은 기업의 구조적 살인…더 이상 책임 회피 못한다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문재인 정부가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발표하면서, 몇몇 대기업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돌고 있다.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으로도 불리는 정부의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은 위험 업무 도급 금지와 원청의 책임 강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당연히 하청 도급 업무가 많고, 하청노동자들의 산재 사고가 빈번한 기업들은 불안함을 감출 수가 없는 상황이다. 특히 하청 업체에 산재 밀어 넘기는 방법으로 그 책임을 회피하고, 보험료를 감면받는 등의 행태를 반복해오던 일부 대기업들은 향후 법의 심판과 여론의 비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건설업종 잇따른 사망 사고 하청노동자 비율 90% 넘나들어
경총 “지나친 규제, 기업 자유 침해이자 영업 활동에 심각한 타격”


정부가 유해·위험성이 높은 작업의 하도급을 금지하고 하청업체 산재사고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의 중대 산업재해 예방대책을 발표했다. 올해 하반기와 내년 상반기에 걸쳐 산업안전보건법을 비롯한 관련법을 개정해 내년 하반기에 시행한다는 목표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 “산업재해를 선진국 수준으로 감소시켜 ‘산업재해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운 일터’를 조성하겠다”고 천명했다.

우리나라의 산업재해 사망자수는 국제 사회와 비교했을 때 다소 높은 편이다. 2014년 기준 우리나라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사망자 비율)은 0.58명이다. 비교 가능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4개 회원국 중 멕시코(0.79명) 다음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하청 노동자들의 높은 산재 사망 사고 비율이다. 전체 산재사망자 중 하청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4년 39.9%에서 2015년 42.3%, 지난해 42.5%로 증가했다. 대기업 건설, 조선업 사업장으로만 따진다면 하청 노동자 사망 사고율은 훨씬 증폭된다.

지난 3년간 50억 원 이상 건설 공사 현장에서 산재사고로 숨진 노동자 100명 중 하청노동자는 무려 98%인 98명이었다. 300인 이상 조선업 사업장에서도 사망자 100명 중 88명(88%)이 하청노동자였다.

실제 하청 업체 근로자들의 사망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지난 20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같은 날 오전 11시 37분 STX조선해양 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7만4000톤급 화물운반선 내 탱크가 폭발해 도장 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직원 4명이 목숨을 잃었다.

3개월여 전 5월 1일에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타워크레인과 골리앗 크레인이 충돌하면서 구조물들이 지상으로 떨어져 현장 작업자 5명이 사망하고 26명이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상자의 대부분은 휴일에도 작업에 나선 협력업체 비정규직 직원들이었다. 현대중공업에서는 지난 3월과 4월 지게차, 굴착기, 사다리차 작업대 사고 등으로 원청 근로자 2명과 협력업체 근로자 3명이 숨을 거뒀다.

대우조선해양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해 9월 23일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조선소에서 선박 엔진룸 도장 작업 중이던 사내 하청업체 소속 50대 근로자가 H빔과 천장 크레인 사이에 끼는 사고로 사망했다.

반복되는 사망 사고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으로 구성된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 캠페인단’은 4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른바 최악의 살인기업 명단을 공개했다.

명단은 고용노동부의 중대재해 발생보고와 사망재해 발생현황 자료를 근거로 작성됐다. 명단에 따르면 1위의 불명예는 현대중공업이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하청업체를 포함해 모두 11명(7명 하청)의 근로자가 숨을 거뒀다.

대우건설 8명(전원 하청), 대림산업 7명(전원 하청), 포스코 7명(6명 하청) 등도 명단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또 다른 조사 결과에서도 조선업·건설업의 산재 사망자 중 하청업체 소속 비율은 다른 업종과 비교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정미 의원(정의당)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 9월까지 조선업 대형 3사(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에서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 37명 가운데 하청 노동자는 78%(29명)를 차지했다.

이러한 현실을 두고 노동자들은 산업재해 책임의 상당 부분이 안전 의무까지 협력업체에 떠넘기는 원청 업체에 있다고 비판한다. 기업의 안전조치 미흡으로 사고가 발생해도 개인 책임이 되거나 기업이 처벌을 받더라도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하청 노동자 산재사망에 대한 원청 처벌은 무혐의로 결론이 나는 일도 허다하다. 지난해 메탄올 중독 실명 사고 피해자는 삼성과 LG의 3차 하청업체 소속 불법파견 노동자였다.

원청인 대기업은 위험한 업무를 외주화해 산재예방과 보상, 처벌에서 손쉽게 빠져나간 것이다. 산업재해 발생 정도에 따라 보험률을 할인·할증하는 제도를 이용해 보험료를 감면받는 대기업들도 존재한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개별실적요율제적용 산재 보험료 감면현황’을 보면, 2015년 30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가운데 삼성이 1009억 원, 현대자동차가 785억 원, SK가 379억7000만 원, 엘지가 379억1000만 원을 할인받았다.

같은 해 하청노동자 6명, 원청노동자 3명이 산재 사고로 사망한 현대중공업도 228억 원을 감면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STX조선해양 폭발사고 희생자 빈소를 찾은 정동영 의원은 “대기업들은 산재발생률이 낮다는 이유로 매해 수백억 원 규모의 산재보험료를 돌려받는다”며 “하청 사고는 대기업 사고로 잡히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결국 사고가 이어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노동, 정치권 등 너나할 것 없이 ‘원청’ 대기업들의 목을 조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동안 책임을 회피하면서 혜택만 받아온 일부 대기업들은 비판 국면이 거세지자 눈치만 보고 있는 형국이다.

경영자들을 대표하는 집단인 한국경영자총회는 정부가 내놓은 ‘산재 예방정책’에 대해 “취지는 공감하지만, 지나친 면이 있어 기업의 영업 활동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하청 노동자들의 목숨을 원청 기업이 책임지라는 정부의 결정이 정말 대기업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지, 아니라면 원청 기업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규정하는 것인지는 대기업들 스스로가 책임을 회피해온 자신들의 과거를 통해 되돌아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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