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법연구회’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 등 대표적 진보

인선 두고 엇갈린 반응…젊은 판사 ‘환영’ vs 기득권 ‘불편’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와 사법부 내부 반발 등 넘을 산 많아


[일요서울 | 오유진 기자] 양승태 대법원장의 뒤를 잇는 신임 대법원장 후보가 지명됐다. 진보적 판사들의 ‘대부’로 평가받는 김명수 현 춘천지방법원장(사법연수원 15기)이 그 주인공이다. 청와대는 “법관 독립에 대한 소신을 갖고 사법행정의 민주화를 선도해 실행했다”며 김 후보자의 인선 배경에 대해 밝혔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진보 성향 판사들이 만든 연구단체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그 후신의 성격이 강한 국제인권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지내는 등 법원 내 대표적인 진보적 인사로 분류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 신임 대법원장 후보로 김명수 현 춘천지방법원장을 지명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통해 “김 후보자는 소탈하고 부드러운 성품으로 자신에겐 엄격하고 청빈한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는 너그럽게 배려하고 포용해 주변으로부터 깊은 신망을 받고 있다”고 김 후보를 소개했다.

이어 “김 후보자는 춘천지법원장으로서 법관 독립에 대한 소신을 갖고 사법행정의 민주화를 선도해 실현했으며 공평하고 정의로운 사법부를 구현함으로써 국민에 대한 봉사와 신뢰의 적임자”라고 덧붙였다.

김명수 신임 대법원장 후보자는 부산 출신으로 부산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거쳐 현재 춘천지방법원장으로 근무 중이다.

특히 김명수 후보자는 서민적 삶으로 관심을 모은 인물이다. 김명수 후보자는 춘천지법원장에 발령난 뒤 지역과 동화되겠다며, 서울을 떠나 부인과 함께 춘천 관사로 이사했다. 하지만 법적 요건이 충족되지 못해 주소지는 이전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법원 고위공직자 재산 신고내역에 따르면 김명수 후보자 재산은 전세금 등 6억6000만여 원으로 재산 순위 하위법관에 속했다. 차량은 413만 원 상당의 2001년식 SM5로 알려졌다

사법민주화 주도 인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진보 성향의 법관으로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우리법연구회’는 1988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5공화국에서 대법원장을 맡았던 김용철 당시 대법원장을 유임시키려 하자 판사 430여 명이 서명운동을 진행한 일명 ‘제2차 사법파동’ 후 설립된 법관 모임이다. 대법원장 후보로 거론됐던 박시환 전 대법관은 우리법연구회 초대 회장을 지낸 바 있다.

김 후보자는 ‘유엔 국제인권법 매뉴얼’ 한국어판을 첫 발간한 법원 내 학술단체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초대회장을 역임했다.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와 함께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첫 학술대회도 개최한 바 있다. 이 연구회는 최근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독점 문제를 제기하며 8년 만에 전국법관대표회의를 개최하는 등 사법민주화를 주도하는 단체기도 하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민사조장을 역임하고 민사실무제요 발간위원으로서 원고를 집필하는 등 법원 내 민사재판의 전문가로 평가받는다. 특허법원 재판장도 2년 역임해 특허사건과 헌법재판제도에 대해 깊은 이해와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다.

또 그는 서울고법 행정부 재판장 시절, 군무원이 근무시간 중 동료 여직원에게 음란 동영상을 보여준 사건에서 상대방이 곧바로 거부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더라도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연합뉴스는 지난 21일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가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논란 당시 대법원을 비판하며 진상조사 여론을 주도한 고위 법관이라고 보도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는 김명수 후보자가 초대 회장이었던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학술 행사를 법원행정처 소속 고위 판사가 부당하게 축소하려 했다는 게 주 내용이다.

해당 사태는 일선 판사로 구성된 대의체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생기는 데 중요 역할을 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지난 3월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직후 대법원이 소집한 ‘전국 법원장 간담회’에 참석해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장 등에게 쓴소리를 한 비화가 있다. 김 후보자는 당시 법원행정처가 사태를 축소하려 하는 등 잘못된 대응을 하고 있다며, 사법부에 대한 외부의 비판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태는 행정처에 ‘판사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의혹으로까지 번졌다. 일각에서는 양승태 대법원장이 거부한 ‘판사 블랙리스트’ 실체 재조사 등 판사회의 측의 요구를 김 후보자가 취임 이후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법원과 다른 결정

김명수 후보자는 2015년 11월 서울고법 행정10부 재판장을 맡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합법노조 지위를 유지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당시 전교조는 해직교원이 가입됐다는 이유로 고용부로부터 법적 지위를 박탈하겠다는 통보를 받은 뒤 각종 소송전을 벌이던 상황이었다. 정식 재판이 끝날 때까지 통보의 효력을 중단해달라는 가처분(집행정지) 신청은 전교조의 승리로 대법원까지 갔지만, 대법원이 2015년 6월 2심을 깨고 고용부의 손을 들어 전교조는 위기에 봉착했다. 그러나 파기환송 재판장을 맡았던 김명수 후보자는 대법원의 결정과 달리 고용부의 법외노조 통보 효력을 중단한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그는 같은 해 삼성 에버랜드가 노조 활동을 위해 직원 개인정보를 외부 이메일로 전송했다는 이유로 금속노조 삼성지회 부지회장을 해고한 사건에서 해고 무효 판결을 내린 바 있다.

2011년에는 5공화국 대표적 공안 조작 사건인 ‘오송회’ 사건 피해자와 가족에게 국가가 150억여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난해에는 춘천지방법원장을 지내며 강원도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아 김진태·염동열 자유한국당의원을 법정에 세우는 데 관여했다.

법조계의 엇갈린 반응

김명수 후보자의 지명은 법조계에서 ‘파격 인사’로 불린다. 김 후보자는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던 박시환 전 대법관보다 더 강한 개혁 성향으로 알려져 사법부에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고 법조계는 입을 모은다.

그 첫 번째 이유는 김 후보자의 개혁 성향으로 인해 엇갈린 반응을 낳고 있는 점이다. 한 언론 보도에 의하면 ‘젊은 판사들은 대부분은 김명수 대법원장을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고법부장판사 이상의 ‘기득권세력’들은 매우 불편해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사법민주화를 바라는 젊은 법관에게는 지지를 받지만,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기득권 법관들에게는 강한 거부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이는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도·인사평정 폐지와 같이 법원 내 꾸준히 거론돼온 각종 개혁 과제도 김 후보자 체제에서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 후보자는 지난 3월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 행사에 참석해 “법관 독립을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연수나 교육을 통해 개인의 의지를 고양하는 것과 동시에 제도적 정비로 내·외부의 간섭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파격 인사로 불리는 이유 두 번째는 대법관을 지내지 않은 점이다. 김 후보자가 취임하면 초대 김병로 대법원장과 3~4대 조진만 대법원장에 이어 대법관을 지내지 않은 세 번째 대법원장이 된다. 대법관을 지내지 않은 판사가 대법원장에 임명되면 관행을 중시하는 보수적 법조계에서 리더십 발현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김 후보자는 1986년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판사로 임관된 후 31년째 법관 생활을 하고 있어, 대법관을 지내지 않았다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 더 많다.

세 번째는 전임자보다 연수원기수가 13기 낮다는 점이다. 그의 성향뿐만 아니라 그가 전임자인 양승태 대법원장보다 무려 13기수나 아래라는 점도 보수적인 법조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대법원장을 제외한 13명의 대법관 중 9명이 김 후보자보다 선배기수다. 15기인 김 후보자보다 기수가 높은 대법관은 김용덕(11기) 고영한(11기) 김창석(13기) 김신(12기) 조희대(13기) 권순일(14기) 박상옥(11기) 이기택(14기) 조재연(12기) 등이다. 이제까지 대법원장이 대체로 대법관보다 선배기수였던 관행을 깬 파격 인사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김 후보자 첫 번째 과제

박찬운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1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청와대가 정말 쎈 카드를 내놓았다”며 “제가 보기엔 물망에 올랐던 박시환 전 대법관 카드보다 법원에 훨씬 큰 충격파를 줄 수 있는 인사”라고 평했다.

국회 인준과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 지난 21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의원들은 김 후보자에 대해 ‘코드인사’라며 인선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이에 국회 인사청문회 통과와 사법부 내부 반발을 극복하는 일이 김 후보자의 첫 번째 과제가 될 전망이다. 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오는 9월 24일로 임기 만료되는 양승태 대법원장의 뒤를 잇게 된다.

오유진 기자  oyjfox@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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