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또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곧 그곳을 다녀올 사람들까지. 호치민이야말로 가장 베트남을 닮은 도시라는 말, 베트남답고 베트남스러우며 끝까지 베트남처럼 살아가길 원하는 도시. 사이공의 다른 이름 호치민.

호치민은 베트남이 통일되기 이전 남베트남의 수도였던 사이공에서 바뀐 이름이다. 호치민은 서구의 침략을 받았지만 끝까지 버텨냈고 외부의 문물을 침착하게 잘 이식했으며 또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호치민 사람들은 모든 것을 아울러 호치민을 베트남 최고의 도시로 가꾸어 냈다.
그것은 아주 잘 자라고 잘 길러낸 자존심이었다. 많은 호치민 사람들은 이 도시가 사이공으로 불리길 원하며 끝까지 사이공 사람으로 남길 원한다. 호치민은 많은 영화와 소설, 뮤지컬로 자신들의 앞마당을 외국에 건네주었다.

언제든지 이곳으로 와서 우리를 표현하라고 했다. 자존감과 자부심, 호치민이 양손에 들고 있는 두 개의 정신. 메콩의 황톳빛 물결이 기슭에 닿고 그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호치민 거리를 스치듯 지나가면 사이공 훗날의 추억은 이제 시작.

참파의 흔적, 호치민 역사박물관

호치민 역사박물관은 타오 덴 문화 공원 내 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호치민 시내 주요 관광지 중 가장 북쪽에 있으므로 이곳을 제일 먼저 출발점으로 삼는다면 남쪽 방향으로 내려오는 효과적인 동선을 꾸릴 수 있다.
1929년 1월 1일에 개관한 역사박물관의 외관은 다소 중국풍. 북경의 이화원을 모델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내부에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베트남 땅에서 나고 사이공에서 자랐던 다양한 왕조의 유물들과 의복, 도구, 토기 등이 전시되고 있다.
1만7000여 점을 보관, 전시하고 있는 역사박물관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역시 참파 왕국의 유물들. 베트남 이전에 오랫동안 이 땅에 머물렀던 참파 왕국의 불상과 조각상들을 본다는 것은 또 다른 베트남의 과거 여행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힘이 넘치고 때론 과감하며 현시대의 극사실주의가 무색할 정도로 세밀하게 표현된 많은 석상과 조형물들. 과연 참파왕국이 과거 동남아시아를 호령했던 강성한 국가였음을 알 수 있는 이 흔적들은 힌두 영향을 받은 왕조답게 힌두 유물들이 주류다.

고대의 유적과 유물의 팬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방문지. 전시실 내부의 사진 촬영은 금지이므로 억지로 사진을 찍을 필요는 없다. 기억으로 담아두면 그만.
<tip> 참파 왕국
2세기 말부터 17세기 말까지 수백 년간 유지되었던 베트남 중, 남부의 힌두 왕조. 베트남 본토인이 아닌 인도네시아계인 참족이 세웠으며 캄보디아의 그 유명한 앙코르와트를 점령했을 정도로 강력한 왕조였다.
벤탄 시장

호치민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인 벤탄 시장은 시내 중심인 레 라이 거리와 레 러이 거리가 갈라지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해 있다. 1914년 프랑스인들에 의해 처음 문을 열었다고는 하지만 17세기 초에 사이공 강 근처 길 거리 상인들이 물건을 팔기 시작하면서 형성됐다는 유래가 있으므로 시장의 역사는 한참 길다.

400년이 넘는 시장이라,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서로 간의 믿음 없이는 그런 긴 시간을 버텨내기가 쉽지 않다. 베트남 각지로 연결되는 시외버스 터미널이 바로 앞에 위치해 있고 어지간한 호치민의 유명 관광지와도 도보로 연결되므로 호치민 시내 여행의 중심점으로 삼으면 좋다.
벤탄 시장은 기본적으로 호치민 사람들의 삶과 생활을 책임져 주는 곳이기에 이곳에는 필연적으로 이들이 살아가는 것과 관계된 모든 것이 있다. 2000여 개가 넘는 상점들과 하루에도 수만 명의 오고가는 사람들은 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또 하루 종일 시끌벅적한 시장 특유의 분위기는 벤탄을 호치민에서 가장 활기찬 공간으로 이끄는 데 모자람이 없다.
호치민에는 빈떠이 시장과 안동 시장 등이 있지만 아무래도 호치민을 대표하는 곳은 벤탄. 시장 외관을 상징하는 시계탑은 호치민이 지금처럼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기 전까지 호치민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였다. 시장은 보통 저녁 여섯 시까지만 운영되는데, 이후의 북적거림은 시장 주변에 형성되는 야시장이 이어받는다.
태국만큼 길거리 음식이 발달한 베트남에서 야시장은 베트남 음식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 게다가 더위 가 가시고 난 밤의 정취까지 더해지니 이 시간이 바로 호치민 여행의 기간을 늘리게 되는 지점이다.
노트르담 대성당

예나 지금이나 호치민의 가장 아름다운 상징이자 호치민을 가장 경건하게 꾸며주는 곳은 바로 노트르담 대성당이다.

가톨릭 성당으로 19세기 프랑스 식민지 시절 건설된 이 성당은 건축기간이 1862년부터 시작돼 1880년까지 총 18년의 기간이 소요됐으며 외벽 자재인 붉은 벽돌을 당시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직접 가져올 정도로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
100m가 넘는 높이와 두 개의 곧게 솟은 40미터 높이의 첨탑 그리고 온도감이 느껴지는 붉은색의 벽돌은 단순히 외부에서 보이는 모습이지만 파리 근교 사르트르 지역에서 공수해 왔다는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성당 특유의 경건함은 바깥에서 바라보는 성당의 모습이 노트르담 대성당의 전부가 아님을 시사한다.

미사 시간이 아닌 경우 내부 방문은 일부로 제한되지만 성당에 들어서는 순간 내부의 웅장함과 엄숙함은 분명 동양권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정경이 아니다. 물론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도 그렇게 움직이고 또 그렇게 물러난다. 성당 정원 앞에 있는 마리아상은 2005년 여러 날 동안 눈물을 흘리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후문이지만 그런 기적의 소문과는 상관없이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고 마음의 평온을 주는 곳.
주말에는 순백의 웨딩드레스와 멋진 턱시도를 입은 호치민 신혼부부들의 웨딩 포토 스폿이 되기도 하는 노트르담 대성당. 밤 시간은 노트르담 대성당이 또 다른 옷을 입고 이 호치민에 은총을 내리는 시간이다.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하고 고요하게 주변을 밝히는 당신. 당신의 사랑으로 인해 호치민의 밤은 더욱 안전하게 깊어간다.
혹시 편지 보내도 돼요? 호치민 중앙 우체국

거창하게 말해서 모든 우체국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자 나아가 전 세계 우체국이 가야할 노스탤지어. 분명한 점은 이곳은 단순한 우체국 이상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호치민이라는 도시를 여행하기 위해 꼭, 이라는 단서를 붙여 들러야 하는 스폿 중 하나이며 지켜야 할 문화재, 호치민 중앙 우체국. 개나리색 벽과 초록의 창틀이 어우러진 유럽풍 건물은 그 유명한 에펠탑의 설계자 구스타프 에펠의 작품으로 1891년에 만들어졌다.
에펠탑이 1889년 발표됐으니 이 우체국 또한 그의 전성기 시절 작품인 셈. 노트르담 성당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성당에 들른 사람은 이곳을 지나칠 수 없고 우체국에 온 사람은 성당을 보지 않고 돌아갈 수 없다. 그야말로 호치민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커플이자 듀엣. 하나가 높고 가늘게 표현되는 소프라노라면 우체국은 폭넓게 퍼지는 바리톤이다.
내부에 들어서면 높은 천장과 아치형의 상층부 그리고 말끔한 대리석 바닥과 몇 가지의 색으로 처리된 공간이 차분하고 일정한 톤을 유지시켜, 보는 이로 하여금 기대 이상의 안정감을 준다. 완벽한 좌우 대칭으로 표현된 극도의 균형감은 내부 공간 자체의 중심을 잡아주고 천장 중앙과 양쪽 벽에서 빛이 들어선다.
만일 벽의 창문이 바로 옆 노트르담 성당처럼 스테인드글라스로 마감됐다면 이 우체국의 역할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휴일 없이 무척 바쁘게 돌아갈 정도로 실제 우체국 업무는 물론 환전과 당시에 쓰이던 앤티크한 해외 전화 부스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갖가지 기념품도 마련돼 있는 호치민 중앙 우체국. 우체국을 다 둘러보고 밖으로 나가기 전 잠깐, 편지든 전화든 사랑하는 사람에게 안부를 띄울 것. 이 우체국이 이토록 아름답게 남아 당신께 전하는 마음을 이해한다면.
힌두의 향기를 맡다, 마리암만 힌두사원

우리가 베트남에 대해서 간과하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점들 중 하나는, 베트남이 종교에 대해서 상당히 유연하고 개방적이라는 점이다.

베트남이 오랫동안 사회주의 국가의 노선을 견지해 왔고, 종교는 아편과 같다며 거리를 두어 왔음을 감안할 때 그것은 온전히 베트남 사람들의 성품에 관련된 문제이다. 도교와 불교, 천주교와 기독교 그리고 여기에 이슬람과 토착 종교인 까오다이교까지 수많은 종교를 아우르고 있는 베트남에 다소 의아하고 이색적인 힌두교까지 뿌리를 내렸다.
아직까지 정부가 종교에 대해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렇게 수많은 주요 종교가 별다른 분쟁 없이 공생하고 공존하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베트남 말고는 없다. 힌두교는 예전 중부 베트남에서 융성했던 참파왕국의 국교가 힌두교였기에 아직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으며 힌두교 사원과 유적은 호치민 말고도 나뜨랑과 다낭 등 중부지역에 다수 남아 있다.
마리암만 힌두사원은 통일궁에서 도보로 5분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있다. 남인도에서 건너온 타밀나두 출신의 상인들이 만든 마리암만 힌두사원은 마리암만이라는 힌두교의 여신을 모시고 있는데 마리암만은 남인도의 수호여신이자 질병과 비, 보호의 여신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무래도 힌두사원에서는 갖가지 향과 양초 그리고 불을 밝히는 기름과 제단에 바치는 꽃들, 각각의 석상에서 풍기는 물감 냄새가 어우러져 힌두 특유의 격한 냄새가 진동하기 마련인데, 잘 정돈된 사원 내부는 그런 힌두의 냄새가 다소 정리돼 있었다.
힌두 고유의 정취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아쉽지만, 인도에서 느꼈던 힌두의 그 묘한 분위기가 끌리는 사람이라면 그나마 마리암만이 아쉬움을 크게 덜어줄 것이다.

호치민에는 마리암만 외에도 보다 더 큰 스리 덴다유타파니 사원도 있다. 마리암만과는 멀지 않으니 힌두 문화가 그리운 사람들은 시간을 내서 찾아갈 것. 그리고 그곳에 가서 마음껏 힌두를 탐하고 마시라.
호치민 인민위원회 청사

1975년 베트남이 통일된 이래 인민위원회 청사로 이용되고 있으며 길 건너 건물 정면에 호치민의 동상이 있어 노트르담 성당, 우체국과 함께 호치민의 3대 주요 스폿으로 여겨진다.

연한 아이보리색과 흰색의 외관, 초록의 창틀 그리고 주황색의 지붕이 조화를 이루고, 마침 파란 하늘 아래에 베트남의 빨간 국기마저 어우러지면 비로소 동양의 파리라는 호치민의 닉네임이 완성되는 순간.
지난해 호치민시 인민위원회는 본 청사를 국보급 건축 유적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보존하고 있어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금지돼 있다. 호치민 전체가 건물 자체를 무척이나 아끼고 있다는 느낌. 외관만으로도 충분히 그리고 넘치게 아름다운 곳.
후엔시 성당

호치민에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지어진, 건축 시기가 백 년이 넘는 유달리 아름다운 성당들이 많다.
노트르담 성당이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까닭에 여행자들은 대부분 노트르담으로 향하지만 후엔시 성당은 호치민 천주교인들만의 오롯하고 성스러운 공간이라 미사가 열리는 시간에 방문한다면 어느 곳보다 경건하고 엄숙하며 또 정결한 종교 활동을 하고 있는 호치민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프리랜서 이곤 기자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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